절망을 지나

재능VS노력

by kim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재능과 노력, 참 오랫동안 비교를 당해왔다. 근데 지금 누군가 나에게 만약 "모든 것은 재능의 영역이다"라고 한다면 반은 맞다 느끼고 반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에는 재능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재능이 필요하긴 하다. 부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노력이 평균선 이상을 따라잡게 하는 것도 나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예로 들어보고 싶다.


나는 지구력이 거의 없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구보(뜀뛰기)를 할 때면 그 시간만큼 괴로웠던 적이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달렸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로 갔을 때 내가 가장 걱정한 건 구보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나는 놀랍게도 자대의 달리는 환경이 훈련소보다 좋았던 덕분인지 여유롭게 달렸다. 겨우 4주 만에 말이다.


그 이후에 나는 달리기를 연습했고 부대에서 오래 달리기를 꽤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나의 노력이 부대에서 평균 이상으로 잘 달리는 능력을 가지게 만든 거다. 나는 내가 재능이 있어 잘 달렸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일과 이후에 연변장을 10바퀴씩 뛰었던 나의 노력의 성과라 생각한다.


노력조차 재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저 나는 나에게 이기고 싶었고, 당시에 좋아하던 사람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였다. 이런 아주 작은 동기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성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부대 1등을 하진 못했다. 체대를 나온 병사들이 많았기에 그들이 언제나 1등이었지만 나는 그게 실패라 보진 않는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 거고 나는 그게 자랑스러웠다.


나는 사실 모두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부족한지 아니면 많은지, 순도와 깊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위 0.1%의 싸움도 분명히 존재한다. 0.1%냐 0.01%냐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하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한 재능을 가진 자가 언제나 패배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 딱 하나의 재능만이 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재능이 결합하여 꽃을 피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세대에서는 여러 가지를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재능이 노력을 바탕으로 특정한 영역에서 남들보다 앞서는 순간 타인들은 그 사람의 부족한 재능을 엄청난 재능이라고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노력이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다. 가장 잔인한 말 중에 하나가 나는 "노력이 부족한 거 아냐?"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는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정말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럴 때는 포기하는 것이 용기이다. 그때의 좌절감과 실망과 분노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노력의 시간들이 그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 좌절은 절망이 된다.


실패 이후의 좌절과 절망은 우리를 고통으로 떨어트린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 기분일것이다. 침대에 누워만 있을수 있지만 그 순간조차 고통일것이다. 그러나 그 빛하나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절망을 직면했을 때 나는 극복하기 위해 나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그 한계를,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쇠렌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나온 주제 이다. 키르케고르는 신앙에서 그 힘을 얻는다 하였지만 나는 신앙이 있든 없든 개인에게는 절망을 벗어날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은 절망을 위기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기에서 우리는 벗어나 다시 도전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더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눈치를 채게 된다. 어느새 우리에게는 능력이 하나 생긴 것이다. 바로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노력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재능의 영역이라고 사람들이 말할 만큼 정말 엄청난 능력이다. 노력한 시간들은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길다. 그리고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렵다. 그러나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고 정답을 찾으려는 본능이 있다.


재능이라는 녀석이 만든 절망이라는 두려운 벽이 있을 때 나는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그러나 부딫히면 훨씬 약하고 작은 벽일때가 많다. 지금 바로 부딪히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꽃을 피울 수 있는 꽃봉오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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