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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Nov 12. 2022

아줌마 Ajoomma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관람작 #3

국가 : 싱가포르, 한국

감독 : 허슈밍     



코믹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최초의 한국–싱가포르 합작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는 다국적의 감독, 배우, 제작자가 어울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서로 믿고 밀어주는 촬영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싱가포르란 나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허슈밍 감독에게서는 지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감독의 어머니도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 자주 드라마의 내용을 들려주곤 했는데, 듣다 보면 드라마 얘기인지 실제 얘기인지 헷갈릴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고. 영화의 출발점이 감독의 어머니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K-드라마 팬에게 ‘아줌마’라는 단어는 친숙하다고 한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단어를 발음할 때의 어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데, 특히 운전할 때 ‘아저씨’들의 입에서 함부로 발음되어 나오는 ‘아줌마’는 폭력적으로까지 들린다. 

싱가포르 배우 홍휘팡(만다린어를 사용하는 걸 보면 중국계인 것 같다.)이 연기한 주인공 림메이화를 보고 있으면 아줌마가 가진 속성은 만국 공통이구나, 싶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그녀는 강인하다. 그 강인함은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녀는 병든 어머니와 남편을 손수 돌보고 떠나보냈다. 하나뿐인 아들은 한집에 살긴 하지만 말이 없고 엄마에게 거리를 둔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에다가 중국인의 비율이 높은 싱가포르는 성인이 된 자녀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같은 문화권인 우리도 비슷하다. 다만 최근 들어 1인 가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1인 가구 중 상당수가 부모에게서 독립한 청년층이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가 한국 드라마에 빠진 이유는 아마도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산 끝에 현재는 아들과 둘만 남게 되었는데, 아들은 살갑기는커녕 자기 삶의 문제에 빠져 엄마에게 관심이 없다. 아침에 공원에 나가서 흥겨운 K팝에 맞춰 춤을 추고, 집에 오면 종일 한국 드라마를 틀어 놓는 것이 그녀의 일상 풍경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을 기다려줄 줄 안다. 아들에게 나 좀 봐 달라고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고 아들의 삶을 존중한다. 머나먼 미국까지 가서 취업을 하겠다는 아들을 붙잡고 싶지만 그런 마음을 누르는 모습이 화면 밖으로 보인다. 손꼽아 기다려왔던 아들과의 한국 여행이 취업 면접 때문에 무산되었을 때도 실망한 기색을 애써 숨긴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 부모는 자식에게 맞추게 되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에 대해 부모는 영원한 약자이다. 림메이화는 과묵한 아들이 특별히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한국 여행사 가이드 권우(강형석 분)는 어쩐지 남 같지 않다. 그의 얼굴에 아들 얼굴이 겹쳐서였을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는 권우를 그녀는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여행 마지막 날 림메이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여진구가 광고모델을 하는 옷가게에서 광고 사진 속 여진구가 입은 코트를 사서 입는다. 싱가포르에서는 겨울 코트를 입을 일이 없다. 동성 파트너와 미국에 가서 살겠다는 아들을 위한 선물일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는 바람에 더 특별한 한국 여행을 마치고 공항을 떠나는 그녀의 얼굴은 환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떠올라 있던 자잘한 근심과 외로움이 말끔히 걷힌 얼굴이다. 매몰되어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하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제대로 기능한 셈이다.

인천공항에서 단체여행객 팀에 늦게 합류했을 때만 해도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불안을 숨기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여행을 끝내고 출국장 앞에 선 그녀는 달라져 있다. 그 중간에는 여행 팀에서 낙오되어 말도 안 통하는 이국의 도시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 분)가 있다.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고 영어도 서툰 두 사람은 영어 단어 몇 개만으로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데 성공한다. 중요한 건 언어의 다름이 아니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마음으로 넉넉히 교감하고 소통한다. 의사 전달을 넘어서 감정을 나누는 데 있어서 국적과 언어라는 것은 전혀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정수에게도 떨어져 사는 아들들이 있다. 그녀에게 한국 드라마가 있어 외롭지 않듯이 그는 나무를 깎아 동물과 같은 조형물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게 살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국적 불문, 나이 불문, 성별 불문, 사람마다 마음에 그늘 하나씩은 드리우고 살지만, 생각지도 못한 타인이 그 그늘을 빛으로 덥혀줄 때가 있다. 

감독은 첫 장편영화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솜씨로 영화를 잘 빚어내었다. 정동환 배우가 허슈밍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2년 전, 싱가포르의 공연장에서 배우와 관객으로 만났을 때이다. 정동환 배우는 그것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연극을 관람한 이국의 청년이 십여 년 후 영화감독이 되고, 그가 연출한 영화에 배우로 연기를 하게 되었으니 정말 특별한 인연이 맞는 것 같다. 

권우 역할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중국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한 강형석 배우는 따뜻한 영화 현장 분위기를 거론하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 말을 들은 감독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눈시울을 적셨다. 

두 나라가 참여한 합작 영화이고 외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도, 영화의 80%를 차지하는 한국에서의 촬영분들은 어색한 부분이 전혀 없이 자연스러웠다. 이러한 점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라 기대했다가 여러 가지로 실망을 던져 주었던 영화 ‘브로커’와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국민배우인 홍휘팡을 비롯한 조연들 모두의 연기가 훌륭해서일 것이고, 거기에 서로 배려하고 배우려고 하는 현장 분위기가 얹어져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싱가포르 합작 영화가 더 나오기를 바라며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관객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허슈밍 감독, 그 오른쪽으로 정동환, 홍휘팡, 강형석 배우(카메라 성능이 좋지 않아 흐릿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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