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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May 16. 2022

나는 왜 그의 영화가 좋을까

당신 얼굴 앞에서

“행동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면 굳이 앞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모여서 무의식 중에 보는 이에게 와닿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할리우드의 드라마투르기(극작법) 같은 게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는 기존 사회에 통용되는 여러 가지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둘 모두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은 것 같다.”

                                                     

  - 홍상수 감독 인터뷰 중에서  

        

나는 왜 홍상수 영화의 장면들에 쉽게 몰입하고 매혹되며 심지어 안식을 느끼는 걸까?     

내가 처음 본 그의 영화는 ‘강원도의 힘’이었다. 거기서 강한 인상으로 남은 장면은 다른 어떤 장면도 아닌 정사 장면이었다. 그것은 야하지도,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너무도 특별하지 않아서 타인의 침실을 무심결에 들여다본 듯 충격적이었다. 그의 카메라 앵글은 피사체의 정면에 고정되어 있기 일쑤고, 과하다 싶은 클로즈업을 즐겨 사용한다. 그 장면 역시 침대 측면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두 사람의 겹친 육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른바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말하는 듯. 그것 말고도 ‘강원도의 힘’은 여러 면에서 그전까지 봐 온 영화의 문법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것이어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단어의 생경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은 또 어떻고. 아름다운 자연의 대명사인 강원도의 자연은 스크린 속에서 전혀 아름답지 않고 여느 일상처럼 추레해 보였다. 낯설다는 것은 새로움의 다른 표현이겠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본 뒤 나는 조금 흥분한 상태로 비디오 대여점으로 가서 감독의 전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빌려왔다. 그리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속물에다가 유부녀와 밀회를 하면서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지식인의 위선과 계급의식을 드러내는, 홍상수 표 ‘지질함’의 대명사인 그의 인물을 처음 만났다. 그의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원작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각본을 쓴, 이후의 영화들에 비해 극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었지만 거기서 나는 홍상수 감독의 전매특허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그와 함께 늙어간다. 그래서 동어 반복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매번 새롭다. 그의 최근 생각과 관심을 최신작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다소 거친 느낌을 주던 초기 영화들에 비하면, 최근작으로 갈수록 거친 면이 다듬어져 정적인 분위기가 난다. 이번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는 명상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그의 영화는 뒤로 갈수록 자잘한 사건들 속에 대단하지 않은 생활의 철학 같은 것이 양념같이 들어 있다. 그것은 술자리에서 낭독하는 시(詩)의 형태로 나타날 때도 있고 지나가는 대사에 섞여 나올 때도 있다. 

초기에는 그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겨나곤 했다. 다들 저렇게 지질하게 사는구나, 하는. 다른 쪽으로 삶의 용기나 의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그럼 그렇지, 하고 배시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깨물면서도 관람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는 그의 어떤 전작들보다 진지해서 꽤 묵직한 상념에 잠기게 했다. 그가 그런 것처럼 나도 늙어가고 있다. 때로 죽음을 떠올리면 난간 없는 고층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 영화는 사소한 방식으로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의해 더 선명해지는 삶에 대해 말을 건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내게 꽤나 흡족했다. 

이혜영은 매력적인 배우다. 그가 가진 이미지대로 ‘쎈’ 역할을 한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이 영화에서 나는 그 점을 발견했다. 진짜 배우는 숨만 쉬어도 연기인 경지를 보이는 거구나. 너무 야윈 탓에 소형 아파트 거실 평범한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를 처음에 못 알아보았다. 화장기 없는 민낯에 평범한 실내복을 입고 짧은 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그녀의 얼굴은 짐작할 수 없는 사연으로 지쳐 보이기도 하고, 감정의 찌꺼기가 마음 밑바닥에 침전된 듯 말갛게 보이기도 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가늠할 수 없는 깊이. 이 영화는 영화 속에서도 왕년의 배우로 분한 그에게 바쳐진 헌사(獻辭) 같다.     



영화는 24시간 안에 일어난 일을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밋밋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잘한 사건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난다. 미리 약속된 만남도 있고 우연한 만남도 있다. 영화는 이혜영이 연기한 상옥의 하루를 따라간다. 그는 미국에서 살다가 잠시 귀국해서 여동생 집에 머물고 있다. 집 근처 카페에서 그림 같은 풍경 – 관용어구가 아니다. 실제로 대형 풍경화 앞에 앉은 것처럼 고정된 앵글 속에 자매가 마주 앉아 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강 물결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드문드문 이동하는 산책자들이 그 풍경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 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눈다. 고정된 카메라에 클로즈업, 그리고 롱테이크. 저 상태에서는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아무나 연기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대화는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듯 대화는 걸림 없이 흘러간다. 대화 속에 상옥이 살아온 과거 삶의 편린이 언뜻언뜻 보이고, 가까운 가족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감정들이 일어났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동생 정옥이 상옥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둘 사이에 명랑하고 따뜻한 표정이 오간다. 현재 세태가 짧게 언급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것은 아파트 분양과 매매에 대한 것이다. 운이 좋아서 분양받은 아파트가 1년 사이에 2억이 올랐다는 동생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옥. 언니에게 그 정도 돈은 있을 거라 생각한 정옥은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근처 아파트를 사서 들어오라고 하지만 상옥은 집도, 저축도 없다고 한다. 독신인 상옥은 어릴 때부터 예뻐했던 정옥의 아들 승원의 근황을 정옥에게서 듣는다. 둘은 승원의 가게에 들렀다 가는 길에 이모를 부르며 뛰어오는 승원과 대면한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이모에게 100달러를 넣은 지갑을 선물한다. 상옥은 고마운 마음을 여러 번에 걸쳐 정성껏 표현한다. 둘은 서양 사람들처럼 포옹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충분히 애틋한 마음을 나눈 것 같다. 그 장면은 현재의 한순간 한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영화 중간중간 상옥의 내레이션이 삽입된다. 기도문의 형태인 내레이션은 진지해서 생뚱맞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흔하게 희화화되는 소재이니까. 기도의 내용은 주로 감사이고, 그날 하루 만날 사람과 일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겠다는 것이다. 어딘가 그의 인상과 맞지 않는 기도문이 그의 진심이었음은, 영화 후반부에 갑자기 내린 비와 함께 내리치는 천둥소리처럼 그의 입으로 밝혀진다.

그는 시한부 인생이다. 남은 날은 불과 5, 6개월. 그를 존경해서 자기 영화에 섭외하려고 자리를 마련한 영화감독 재원은 그의 고백을 듣고 놀란다. 고개를 떨구고 흐느낀다. 그 눈물은 그의 진심의 일면이었을 것이다. 둘은 독주에 취하고 상옥은 서툰 기타 연주를 한다. 둘의 대화는 선을 넘지 않고 예의 바르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만큼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넘나들며 과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대화의 리듬에서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의 여유와 노련미가 느껴진다. 술이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꺼내는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는 점 정도가 전작들과의 공통점이라 할까.

상옥은 열일곱 살 때 죽으려고 마음먹었다. 죽을 결심을 하고 서울역 앞을 걸어가다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깨달음이 갑자기 찾아왔다. 얼굴 앞의 만물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아름답다는 것. 그 후 오래도록 그 일을 잊고 살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그즈음 다시 그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하던 일 하고 돌아다니고 하다가 고통스러워지면 진통제를 먹고, 그러다가 죽을 거라고 했다.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배우를 통해 철없고 자기중심적인 남성상을 그려 왔다. 노년에 가까워진 그가 이번에는 죽음을 이야기한다. 예전처럼 철없이 여인들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딱 한 군데, 섹스에 대한 짧은 언급이 나온다. 상옥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영화 출연 제의는 자연스럽게 무산되고, 한동안 상당한 양의 술잔이 오간 뒤다. 재원이 상옥에게 같이 단편영화를 한 편 찍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상옥은 표나지 않게 반색한다. 재미있어하는 것도 같다. 재원은 당장 바로 다음 날 어디론가 떠나 영화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하고, 가고 싶은 곳이 없느냐고 상옥에게 묻는다. 어디든 괜찮다고 하는 상옥에게 그는 양양이 어떠냐고 묻고 상옥은 이름이 예쁘다며 좋다고 한다. 이어서 상옥이 묻는다. 나랑 자고 싶죠, 하고. 갑작스러운 말에 재원도 놀라지 않고 무심하게 그렇다고 한다. 죽음의 반대는 성욕일까. 생명의 가장 강한 에너지라서? 반대로 삶을 잊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둘은 흡족한 술자리와 긴 대화를 끝내고 재원의 지인이 운영하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술집을 나온다.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밖은 아직 저물지 않았고 대신 비가 내리고 있다. 술집 안과 밖은 다른 세계 같다. 영화관에서 스크린 속 세계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자연광이 눈부신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둘은 동화 속 아이들같이 내일 만나자는 천진한 약속을 끝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상옥은 재원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다. 예의를 갖춘 메시지의 내용은 전날의 약속이 이행될 수 없는 것임을 술을 핑계 삼아 통보하는 것이었다. 그건 흡사 간밤 감상에 젖어 끄적거린 연애편지를 다음 날 아침 햇살 아래 읽어보고 찢어버리는 행위 같다. 글을 쓰는 지금 깨달음이 온다. 기시감이 있다. 권해효가 분한 영화감독 재원과 홍상수 감독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과의 희미한 접점이 이 부분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오래 들여다보던 그녀는 한참 동안 소리 내어 웃는다. 재미있는 코미디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옥이 말해주지 않는 간밤의 꿈 내용처럼 한바탕의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파트 베란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내놓는다. 1년에 한두 편씩 발표하는 영화를 통해서. 그의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일상적이기도 비일상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 속 인물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몰입이 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그의 영화가 좋을까. 그가 성실하게 매년 새 영화로 찾아올 때 나도 예외 없이 그의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간다.

그가 자주 구사하는 롱테이크 기법은 인물과 풍경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하며 관객 스스로 생각할 틈을 준다. 그리고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영화는 서사나 극보다는 여백이 있는 서정시에 가까운 것 같다.

헐거워 보이는 그의 영화의 장면과 대사들이 내 감정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다. 홍상수 감독이 관객에게 노리는 바가 있다면 바로 그런 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는 어떤 목표를 의식하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앞에 인용한 인터뷰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뿐이고,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은 그 속에서 각자가 얻고 싶은 것을 얻어가는 것뿐이다. 작가가 세상에 던져 놓은 작품은 수용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어 읽힌다. 그것이 예술의 특성이다. 애초에 창작자가 예상치 못했던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올 때 그제야 예술은 완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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