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걸어 다니는 기상청

by 들국화

날씨 앱이 예보한 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강풍주의보가 발효되었다는 안전 문자도 받았다. 올봄은 다른 해보다 비가 더 자주 내리는 것 같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10대 이후로 줄곧 그랬던 것 같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빗소리도 좋아하고, 비가 촐촐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비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내 몸은 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출산 후 몸조리를 잘못한 건지, 원래부터 몸이 약하게 타고난 건지, 아니면 몸을 구성하는 각종 기관의 안테나가 유달리 민감한 건지, 나는 언젠가부터 곧 다가올 강우를 알아맞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누가 보면 꾀병이라고 하기 딱 좋은데, 내게는 그것이 너무도 뚜렷한 몸의 통증으로 실현된다. 처음엔 비가 오기 이틀이나 사흘 전쯤부터 증상이 나타났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강우 시점과 내 몸의 신호 사이 간격이 벌어졌다. 지금은 무려 한두 주 전부터, 먼 데서 발생하여 하강하는 저기압과 대기 속의 빗방울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거기에 풍속 감지 기능까지 추가됐다. 시간이 갈수록 계속 업데이트가 되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날씨도 다변화되고 있다.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지속되어 영남 일대 산불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구 곳곳에서 홍수, 폭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내 몸이 예보하는 기상 유형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관계가 있을까.


예전에 한 노인이 멀쩡한 하늘을 보고 무심하게 “얘야, 빨래 걷어라.” 외치는 광고를 본 적 있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관절이 혹사당해서 그런가 보다, 서글프면서도 가볍게 웃어넘겼는데, 그게 내 얘기가 되다니. 나는 그렇게 고된 노동에 시달린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내 몸은 자칭 ‘걸어 다니는 기상청’이 되었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날씨 앱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물어온다. 이번 주에 비 오나? 한때 오보가 잦아지면서 ‘구라청’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기상청 예보보다 내 몸이 보내오는 예보가 정확도가 높았다.


강우를 알리는 내 몸의 증상은 이렇다. 몸 전체가 바닥을 향해 까라진다. 관절 여기저기가 삐걱거린다.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고개를 90도로 꺾고 숙면과 같은 졸음에 빠진다. 뇌 속에 미세먼지가 낀 듯 사물들이 뿌옇게 보인다. 그런 증상이 찾아오면 나는 그냥 재빨리 투항한다. 그리고 얼른 특정 기상 현상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막상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내 몸은 언제 아팠냐는 듯 쌩쌩해진다.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시야도, 머릿속도 선명해진다. 어느 때보다 집중도가 높아져서 일에 능률이 오른다.


며칠 전 친구와 국숫집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더워서 반 팔 티 위에 겹쳐 입은 긴 팔 티를 훌렁훌렁 벗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덥지는 않은데?” 했다. 내게는 여름 더위도 겨울 추위도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높은 습도를 동반한 더위에는 특히 맥을 못 춘다. 내 몸이 습도에 유독 민감한 탓이다. 친구와 만난 날은 다음날 비 예보가 믿기지 않게 청명했다. 기온이 전날보다 몇 도 오르기는 했어도 열기를 못 이겨 옷을 벗을 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음날 있을 폭우의 징조였다.

비를 좋아하면서도 비만 오면 남모르는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나는 이런 내 몸의 증상이 성가시다. 그래도 이런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내가 겪어온 증상은 특수한 편에 속하지만,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외부 환경 조건과 자연 현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까. 그러니 거기에 살살 맞춰 가며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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