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패키지여행 D-1일
*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10박 12일의 서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틈틈이 쓴 여행기를 올려본다.
6월 16일
오늘 밤이면 집을 나선다. 어제저녁 후다닥 집 정리를 했다. 화분들에 물을 주고 쓰레기봉투 가득 쓰레기를 채웠다. 버리는 건 남편이 할 거다. 해도 해도 나와 있는 빨래를 종류별로 여러 번에 걸쳐 돌렸다. 대충 던져놓았던 짐들을 빠진 건 없는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짐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스킨, 로션, 크림, 비비크림, 파운데이션까지 소형 용기에 담았다. 버스 이동 시간이 많다고 해서 친구와 나눠 먹을 간식거리를 지퍼백에 양껏 담았다.
밥을 많이 해서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 놓고 카레를 한 냄비 끓여놓았다. 젊었을 때는 여행 가기 전에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떠나기도 전부터 지쳤는데, 이제 일이 훨씬 단출해졌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집에는 남편만 있으니. 밥이 다 떨어지면 밖에서 사 먹든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햇반이랑 먹든지 알아서 하겠지. 나이가 드니 편해지는 점이 많다.
일하는 중간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확인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았다. 카톡도, 전화도 바로바로 받는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몇 달 전에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시어머니가 음식을 잘 챙겨 드시지 않아 몸이 약해지셨고 며칠 전엔 병원까지 다녀오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머니가 안 좋으신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곧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어머니 안부를 물으니, 안 그래도 다진 소고기를 볶고 단백질 음료를 사서 아들과 함께 들여다보고 왔다고, 역시 잘 안 드시는 게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여행을 갈 때마다 미리 시댁에 들러 얼굴도장을 찍고 간다. 여행 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번엔 목적지가 멀기도 하고 일정도 긴데 그냥 여행 간다고 말씀드리면 안 되냐고 내가 물었다. “여행 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니고.” 친구는,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말하는 게 꺼려진다고 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시댁은 아무리 잘해줘도 어려운 구석이 많으니까.
친구는 결혼 당시 남편보다 시어머니에게 먼저 낙점 당했다. 시어머니는 친구를 보고 한눈에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그때 친구에게 하신 말씀이, ‘눈에 악기(惡氣)가 하나도 없다.’였다. 시어머니 때문에 항상 마음을 끓이던 나는, 친구의 시어머니가 그의 결혼생활 내내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베푸시는 걸 부러워했다. 그분은 마치 내 친정어머니가 내게 하듯이 친구를 대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몇 년 전 참척의 아픔을 겪으셨다. 친구는 그즈음 부쩍 그의 남편이 좋은 사람이란 말을 자주 했다. 은퇴를 1년 앞두고 함께 노후를 즐길 일만 남았는데……. 친구 남편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세상에서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친구의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는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다.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야기하다가도 눈이 빨개지고 내가 운전하는 동안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그의 옆에 있어 주는 것밖에는.
이제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더 늙어서 체력이 떨어지고 어디가 고장 나기 전에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자고 약속했다. 오래전부터 친구가 가자고 노래를 불렀던 서유럽 패키지여행을 결국은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