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배신

by 들국화

어제 요가를 하는데 선생님의 말씀 중에 한 문장이 귀에 쏙 들어왔다. “형상보다 본질에 집중하세요.” 전면 거울에 비친 자세가 얼마나 그럴듯해 보이느냐보다 힘이 들어갈 부분에 확실히 힘이 들어가고 있는지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허벅지 전면 대퇴사두근에.


멋진 말 같아서 그걸 우리 삶에 대입시키면 어떤 의미가 될까 생각해 봤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치중하고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내가 잘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살아간다면, 근육의 힘을 키우듯 삶의 내공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제 요가 수업에서처럼 어떤 단어나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 경우가 있다.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대화를 무심코 듣다가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어버린 일이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입에 올린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내가 다니는 운동 시설에는 나 같은 중노년 여성 회원이 많다. 그날은 70대쯤 되는 회원 몇이 목욕을 마치고 나와 로커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목욕탕 물이 와 그리 뜨겁노?

그러게. 그 옆 탕은 또 너무 안 따뜻하더만.

물 온도 그거 하나를 딱딱 못 맞추나?

맞다. 조시를 못 맞추고.


그 말에 모두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몇 발짝 옆에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있던 나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를 웃게 한 건 ‘조시’라는 단어였다.

그런 단어들이 있다. 비슷한 세대끼리 통하는 단어. 사전적 의미를 떠나 향유자들만이 공유하는 뉘앙스가 있다. 단어에 실린 어떤 분위기랄까, 오래 밴 냄새랄까, 색깔이랄까, 아무튼 그런 게 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서로 의미심장하게 눈을 맞추든가 그날처럼 폭소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얼마 뒤 글쓰기 모임에서 그 얘기를 했다. 다들 부산 토박이인데 ‘조시’라는 단어를 몰랐다. 나는 그들이 나보다 연배가 낮다는 것 말고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


사전을 찾아봤다. 두 개의 동음이의어를 앞세우고 세 번째에서 이런 뜻일 수도 있겠다 싶은 뜻풀이가 있었다.


조시3 [潮時]

명사

[지리]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정해진 시각.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 제 시간. 시간적인 의미에서 ‘정도’ 같은 의미로 확장된 걸까.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였다. 챗지피티에게도 물어봤는데 그가 내놓은 답도 왠지 미덥지 않았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는 하는 심증이 강하게 들었다.


미련이 남아 계속 검색을 하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시’의 어원은 일본어였다. ‘가락, 장단, 상태, 기세, 태도, 요령’ 등의 뜻을 가진 일본어 ‘쵸우시(調子)’에서 온 말로 ‘상태’, 또는, ’어느 정도의 적당한 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식 외래어 외에도 여러 방면에 일본어가 침투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우리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써왔던 단어가 일본어의 잔재라니, 나는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원어가 일본어인 단어에 내가 특별한 감정을 싣고 웃기까지 했단 말인가. 이제 어원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후로는 그 단어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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