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행복> 리뷰
얼마 전 아프리카 영화제에서 모로코 영화 <작은 행복>(2016)을 관람했다. 재미있게 본 영화라 줄거리 위주로 써 본다.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여성이라는 점, 주된 배경이 집 안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테투안의 유서 깊은 가문의 안주인 아미나 부인의 저택에는 3대에 걸친 대가족이 산다. 17살 소녀 누피사는 혼자 된 어머니와 함께 아미나 부인의 저택을 방문한다. 저택에서는 아미나 부인 손녀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다. 결혼식 날이 되자 집안은 잔치 분위기로 들썩인다. 낯을 가리는 누피사는 그 집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녀에게 신부의 언니인 페투마가 먼저 손을 내밀고 둘은 곧 친구가 된다.
잔치의 주인공인 어린 신부는 화려한 치장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정든 집과 엄마를 떠나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집으로 갈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결국 신부는 시집간 지 일주일 만에 울면서 친정으로 돌아온다. 아미나 부인은 손녀의 행복보다 집안의 명예가 우선이다. 손녀가 시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두려워 거짓 잔치를 연 뒤 그녀를 시집으로 돌려보낸다.
조혼에 강제 결혼이라니. 조선 시대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집안에서 결혼 상대를 정하고 당사자들은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결혼식을 치른다. 여자는 낯선 남자의 집으로 가서 시부모 밑에서 집안일만 하며 평생을 보낸다. 영화는 곳곳에 모로코 사회의 불합리한 인습, 특히 여성을 억압하는 관습과 제도를 고발하는 장치를 심어 놓았다.
누피사의 어머니는 남편의 사망 후 생계를 책임질 의지가 없어 보인다. 딸을 교육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알아보니 그건 그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로코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에도 원인이 있었다. 모로코에서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조하여 남성은 바깥일을, 여성은 집안일만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누피사와 또래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갈 때 그런 대사가 나온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외출도 마음대로 못 했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외출하게 된 것도 큰 변화라는.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현대가 배경인 영화인데 믿기지 않는 일이다. 지구촌 곳곳에는 아직도 차별과 억압 속에 사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한편 누피사와 페투마의 관계는 점점 깊어져서 우정과 애정의 경계를 오간다. 누피사는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학교를 그만두고 낮에는 집안일을 돕고 저녁에는 재봉 일을 배우며 돈을 벌었다. 누피사는 학교에 다니는 또래 아이들과 외모상으로도 차이가 난다. 외출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눈만 내놓는 또래들과 달리, 누피사는 평상복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드러내고 다닌다. 페투사가 누피사의 남다른 옷차림에 관해 물어오자 누피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계속 그 차림새를 고수하니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녀가 주체적인 판단을 하고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관습을 따르지 않기로 한 건 그 자체가 커다란 용기라고 생각한다.
페투사는 여동생처럼 결혼할 뻔한 적이 있었으나 그 상황을 지혜롭게 피했다. 자신은 공부를 더 해서 직업을 가진 뒤에 남자를 사귀어 결혼할 거라고 누피사에게 말한다. 페투사가 말하는 내용은 이미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떤 곳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피사에게는 첫사랑이 있었다. 의도치 않은 이별 후 엇갈리게 되었는데 친구들과 영화관에 가는 길에 우연히 그를 보게 된다. 무리 속에 섞여 걸으면서 누피사는 얼굴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고 남자도 그녀의 모습을 애타게 좇는다. 경제력은커녕 살 집조차 없는 누피사의 어머니는 아미나 부인의 강권으로 그 집에서 계속 살기로 하는데, 아미나 부인은 누피사의 결혼 계획을 입에 올린다. 페투마 동생도 그런 말을 하는데, 한 가정에서 딸들의 결혼이란 식구를 줄이기 위한 방도이기도 하다. 딸을 시집보내는 걸 ‘치운다’라고 하는 우리의 문화와 겹치는 부분이다. 누피사는 자신이 원치 않는 결혼을 시키려는 엄마에게 반항한다.
한편 누피사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페투사는 누피사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둘의 관계가 틀어진다. 한동안 갈등이 이어지다가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누피사의 말에 페투사의 마음이 풀린다. 누피사는 자신에게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으며 얼마 전에 우연히 그를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랑 될 사람이 곧 자신을 보러 온다는데 결혼을 피해갈 방법이 없겠냐고 페투사에게 묻는다. 그에 대한 페투사의 답은 명쾌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에게 직접 말하든가 편지로 써서 전달하라고 한다. 집안의 여자 어른들처럼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대놓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라고 하는 페투사는 나이는 어려도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멋진 여성이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누피사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졌던 그늘이 친구의 말 한 마디에 걷힌다. 두 소녀는 화해한다.
예비 신랑이 신부감을 대면하는 방식은 우스꽝스럽다. 누피사가 자기 방 침대에 벽을 보고 돌아누워 있다. 남자가 들어와 왕진 온 의사 연기를 하면서(실제 직업이 의사일 수도 있다.) 맥을 짚으며 슬쩍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 순간 누피사도 슬며시 눈을 돌려 남자의 얼굴을 일별한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는 바로 누피사의 첫사랑 남자였다. 행복한 미소를 띤 누피사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표정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듯하다가(페투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시 환해지며 페이드 아웃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여성 감독의 작품일 거라고 확신했는데 알고 보니 남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모하메드 쉬리프 트리박 감독은 모로코 전통 사회에서부터 내려온, 여성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관습들을 두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무겁지 않게 비판하려고 한 것 같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 여성 모두 사랑스러웠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요소는 영화의 장면들 사이사이 한 가수가 등장해 구성진 노래를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모로코의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짙게 화장한 그녀는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풍부한 표정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볼수록 묘하게 빠져들었다. 스크린 밖 관객들을 향해 공연 무대를 펼쳐 보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