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멍해지는 때가 있다. 정신을 다른 데 빼앗겨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도 지나고 생각하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그 순간에는 눈앞에 벌어진 일의 의미를 파악하지도 못한다. 사고는 순간이라고 한다. 순간 판단력이 제로가 되고 왜 그랬는지 되짚어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런 상태로 사고를 당할 뻔하거나 해서 자기비하와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면 나는 “누구나 그럴 수 있어. 너무 자책하지 마.” 쉽게 위로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일이 내 일이 되고 보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다. 시쳇말로 ‘멘붕’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다.
내게 우호적으로 보였던 세상이 돌변하여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를 덮치는 환영을 본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가 눈에 안 띄는 삶을 지향하는 소시민 중의 소시민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동생 집에 가는 길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말로 뱉어 놓으면 별일이 아닐 수 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동생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무슨 큰일이 났나 하고 나의 횡설수설에 귀 기울이던 동생은 얘기를 다 듣고 별일 아니라는 듯 떠오르는 대응책을 차분하게 말해줬다. 챗지피티에게 이 상황을 그대로 묻고 올라온 답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섭다는 나 대신 전화를 걸어 주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통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듯 심상하게 응대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어느 정도 진정된 걸 확인한 동생이 말했다. 언니, 세상에는 정말로 무섭고 큰일이 많아.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섭긴 뭐가 무서워? 언니는 정말 소심하구나. 나는 인정했다. 나는 세상을 너무 모른다. 내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어느 순간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움츠러든다. 이 나이가 되도록 세상이 무섭다니. 나는 그동안 온실에서 살아온 것일까. 나는 나에 대해 잘 알며 피차 신뢰하고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나의 울타리 안으로 들이고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가. 실재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애써 눈 감고 귀 막고 살아온 건 아닐까. 동생과 대화하다가 문득 요즘 몰두하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공중누각 같았다. 세상일에 서투른 사람이 글쓰기라는 신기루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막에서 생존하는 일에는 눈을 돌리려고 하지 않고. 복잡다단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사에 맞서기에 나의 글쓰기는 너무 무력하고 무용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