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나들이

도모헌 산책

by 들국화

일요일에 집에 있는데 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보라색 솜뭉치 같은 꽃 사진. “어디야?” “도모헌.” 교회에 갔다 오는 길에 소화가 안 돼서 걸어가 봤다고 했다. 아하. 친구와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약속한 날은 날이 흐렸고 습도가 높았다. 브런치 카페에서 구운 채소와 스크램블 에그가 푸짐하게 올려진 베지 플레이트와 역시 풍성한 과일이 더 주인공 같은 큼지막한 팬케이크를 배부르게 먹고 천천히 걸어서 도모헌으로 갔다. 활짝 열린 정문 안쪽에서 경비복 차림의 남자가 서성이며 입장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편으로 경사가 완만한 길을 걸어 올라갔다. 분재같이 멋들어진 가지를 자랑하는 키 낮은 소나무들과 이름 모를 앙증맞은 꽃들이 우리를 맞았다. 친구와 나는 몇 걸음에 한 번씩 환성을 질렀다. 진입로를 다 오르니 둥근 잔디 정원과 옛 관사가 나타났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산책로며 정원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정원을 빙 두른 산책로를 따라 다시 발걸음을 떼어 놓는데 건너편에서 작은 진분홍 꽃잎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패랭이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쑥부쟁이꽃도 소박한 자태로 흔들리며 인사했다. 블루베리 나무는 빛나는 이파리 사이로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산책로의 끝에 다다르니 작은 인공 연못이 나타났다. 자갈이 훤히 보이는 얕은 물 위에는 동글동글한 연잎들 사이로 빨간 연꽃 한 송이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다분히 인공적이어도 가꾼 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옛 관사가 자리한 정원은 지대가 높아서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내려다보였고, 멀리 파란 바다와 광안대교가 걸려 있었다. 무리 지어 산책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정갈한 공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낮게 깔렸다.


고가의 소나무 수십 그루와 아름다운 화초들로 조경된 정원과 산책로를 보며, 관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전 관사 유지에 들어갔을 인력과 비용에 생각이 미쳤다. 군사정권 시기 대통령의 지방 숙소 겸 역대 부산시장 관사로 사용된 곳이었다. 친구와 나는 이래서 정치가들이 권력을 꿈꾸는구나, 하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시장과 그 가족이 남모르게 호사를 누렸겠구나.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렸던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그는 대통령궁을 떠나 작은 농가에 살면서 월급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대통령으로 재직 중에도 화초 재배 일을 계속하며 농부로 살았다고 했다.


이제 옛 관사 내부로 들어가 볼 차례였다. 내부는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다. 1층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한편에는 모모스커피가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무료입장이 가능한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관 내부는 관람객보다 직원이 많아 보였다. 아시아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작품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흥미로웠다.


2층 통창으로 정원을 내려다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걸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폐장 시간이 다 되었다. 밖으로 나오니 습도는 들어올 때와 같이 높았으나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상쾌했다. 흐린 하늘에 해는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는 수영구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창가 안락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각자 빌린 책을 읽었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뺨에 아주 작은 비 입자가 닿는 게 느껴졌다. 헤어져 가는 길에 우리는 똑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덕분에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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