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서 읽은 책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 권을 읽고 왔다. 집에도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한데 왜 굳이 나가서 책을 읽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책으로 둘러싸인 쾌적한 공간, 독서에 최적화된 공간 속에 나를 두면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게 답이다. 더위에서 도망치려는 의도도 있다. 조금 전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뇌를 쉬게 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물었다. 어떤 청취자의 답을 듣고 어쩜 내 생각과 똑같네, 생각했다. 그의 답은 '책을 몰입해서 읽을 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온갖 잡념과 자잘한 걱정이 들어차 오히려 뇌가 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오늘 읽은 책은 하오밍이의 <찬란한 불편>이다. 신문에 소개된 신간으로 한글로 집필되었다. 저자는 산둥 지방 출신 부모를 둔 화교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18살 때 대만으로 유학 간 이후 대만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으며, 편집인에서 편집장, 출판사 사장을 거쳐 타이베이도서전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대만 출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생후 1년이 되었을 때 소아마비에 걸려 69세가 된 지금까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그는 유년기부터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단 한 번도 비관하지 않는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삶의 갈피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불교 신자로서의 수행과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 수비학에 빠진 이야기도 흥미롭다. 일에서는 성공을 거두었고 일 중독자라고 할 만큼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아픔과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불교 신앙에 의지해 힘든 시기마다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했고, 그러면 어디선가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그가 살아온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차별이 만연했을 텐데 그는 차별받은 기억이 없다고 한다. 책 속에서 스스로 언급한 대로 부모님의 사랑이 그의 자존감의 원천이었다.
삶에 대한 태도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존경스러운 어른을 오랜만에 만났다.
'조합’과 ‘이동’에 대한 통찰이 드러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조합'은 평생 종사해 온 편집 일과도 관련이 있고, 이동은 공간을 바꾸는 일, 여행과 관련이 있다. 그 두 가지를 포함해 책을 읽다가 메모한 부분을 옮겨 본다.
조합 방식에서 순서와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
조합 방식에서 동일한 요소만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거나 모순된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느냐도 또 하나의 핵심이다. 또 조합 방식에서는 전문성과 융합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다른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조합 방식을 관찰하고 흡수해야 한다.
조합에는 전문성과 경계 넘기가 필요하다. 만 리 길을 여행하며 낯선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어떻게 조합하는지를 보는 것은 그 자체가 큰 '경계 넘기'다.
한국에서 타이완으로 이동했던 경험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동을 통해 나의 삶은 한층 더 넓어졌다.
바쁘지만 매일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부처님과 보살들은 나에게 거듭 말씀해주셨다.
“모든 보물은 네 안에 이미 있단다. 너 자신이 언제든 마음껏 꺼내 쓸 수 있어.”
새로운 제약과 파편이 눈앞에 나타날 때 오히려 나는 기쁘다.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