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피렌체 관광
6월 22일 일요일 /6일차/ 피렌체 관광
여행하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그 반대인 날도 있다. 인생사가 그런 것처럼. 그럴 땐 그러려니 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오늘은 조금 삐걱거린 하루였다.
세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피렌체에서 점심부터 먹은 뒤 관광에 들어갔다. 오늘부터 로마 일정까지 합류하게 된 여성 가이드는 요약 정리하듯 포인트만을 빠르게 후루룩 훑어 나갔다.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들, 단테 생가, 베키오 다리, 마지막으로 두오모 성당까지. 베네치아 관광 때 못지않게 오후 햇볕이 뜨거윘고 가는 데마다 관광객으로 붐볐다. 피렌체에 처음 온 친구도 오늘 일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꽃같이 섬세한 두오모성당을 보고서도 별로 좋은 줄 모르겠다는 친구. 우리는 관광보다 여행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30분 간의 자유시간 뒤 유럽 감성과는 거리가 있는 삭막한 골목길들을 한참 걸어 가죽 매장으로 갔다. 첫 번째 쇼핑 장소였고 오늘치 일정의 마무리였다. 다시 버스로 3시간 여를 달려 피우지의 숙소에 도착했다. 방을 배정받고 짐만 올려둔 뒤 인근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한식을 맛있게 먹고 여행자 거리 같은 활기가 느껴지는 마을을 걸었다. 그런데 보도에 그려진 문양이 눈에 익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 때 봤던 은행잎 모양의 문양이었다. 같이 갔던 후배와 같이 그 보도 위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서 기억할 수 있었다. 그냥 흔한 이탈리아 보도 문양인가 보다 했다. 인솔자가 가보라고 한 슈퍼마켓 이름이 익숙했다. 시그마 슈퍼마켓. 체인이니까 그렇겠지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익숙했다. 그 체인이 대개 그런 구조인가 보다 했다. 슈퍼마켓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나는 탄성을 질렀다. 슈퍼마켓 맞은편의 좁은 통로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나온 탄성이었다. 2년 전에도 묵은 적이 있는 동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괜찮았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가서부터 기분이 다운되었다.
우리가 3박을 묵게 될 숙소는 분명 입구에 별 네 개가 그려져 있는 호텔이었다. 다소 낡고 고풍스럽긴 했지만 외관은 깔끔해 보였다. 열쇠를 받아 2층 구석에 있는 19호 문을 열었을 때의 첫인상은 바로 정체 불명의 냄새였다. 어디서도 맡아본 적이 없어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강렬한 냄새. 좁은 객실에 효율과는 관계없이 배치된 가구들은 빈티지를 넘어 어디서 폐가구들을 가져다놨나 싶었다.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가구였다.
친구가 씻는 동안 지쳐서 넋을 반쯤 놓고 침대에 앉아 있는데 냄새 때문에 점점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질이 낮은 향을 피운 것 같이 답답하고, 환기가 안 되는 방에 갇힌 느낌. 옛날식 나무 창문을 열어봐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텁텁한 방 공기를 환기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려고 보니 리모컨은커녕 전원 버튼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인솔자에게 카톡으로 물으니 리셉션에 직접 가서 켜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에어컨이 소리를 내며 가동되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숙소는 에어컨이 기본 2시간 반은 무료이나 그 이상은 시간당 얼마씩 전기료를 내야 한다는 인솔자의 말을 언뜻 들은 것도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무료 공급 시간인 2시간 반이 지나면 저절로 꺼진다는 말로 내 맘대로 해석했다. 에어컨으로 그나마 쾌적해진 방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10시쯤 잠들었는데, 계속 에어컨 바람이 느껴져서 깼다. 시간을 보니 1시 30분이었다."이상하네. 2시간 반이 훨씬 지났는데 에어컨이 안 꺼져있네. 꺼달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친구가 내 말소리에 깼다. 이번에는 자신이 로비에 내려가보겠다고 했다. 친구가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이 꺼졌다.
여행을 히다가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 에어컨을 가동한 시간만큼 전기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에어컨을 켜고 끌 때마다 내려가서 요청해야 하는 전근대적인 시스템이라니. 아무리 문화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숙박객에게는 너무 난감하고 불편한 일이다. 줄곧 인솔자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어왔는데, 하필 그 문제에 대해서는 흘려듣고 질문하지 않은 내 잘못인가? 그렇다기엔 억울했다. 호텔 방침도 이상하지만 중요한 사안을 좀더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인솔자에게까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 중반을 넘어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왔는데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건가. 내일 물어봐야 알겠지만 어딘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많아야 10유로 정도일 전기료 줘버리고 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시간이라 내가 좀 예민했다. 인솔자에게도 사실을 가볍게 얘기하는 것으로 끝냈다. 아무래도 어제 내 컨디션과 바이오리듬이 바닥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