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패키지여행기 8

10일차 컨디션을 회복하고 파리를 둘러보다

by 들국화

6월 26일 / 10일차, 파리 2일차 / 에펠탑 전망대 - 몽마르뜨 언덕 - 유로스타로 런던 이동



이틀 간의 살인적인 일정이 끝났다.

어제 저녁이 그 절정이었다. 현실감이 희미해지고 작은 일에도 불만이 일어났다. 짜증을 낼 뻔한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왕복 비행 시간을 빼고 10일 간 4개국을 둘러본다는 게 무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수시로 고개를 드는 지난 이틀 간이었다.

무리한 여행의 절정을 통과하고 나니 그 어떤 것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기차역의 인파 속에서 출입국 신고를 위해 두 시간 넘게 줄 서는 일도 견딜 만했다.


지난밤엔 밤새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다. 창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피로가 잠시 잊히는 듯했다.

여행 내내 수면 점수가 30~50점에 머무르다가 오랜 만에 시간이나 질 면에서 정상적인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컨디션도 기분도 어제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다리가 묵직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긴 하지만.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샘 솟듯 에너지가 공급되는 인체의 신비에 감사함을 느끼며 새 하루를 시작했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데다 날씨도 도와줬다. 쾌적한 기온에 바람까지 적당히 불었다. 경험 많은 가이드의 민첩한 리드에 따라 에펠탑 전망대에 올랐다. 1993년부터 파리에 거주했다는, 은발이 멋스러운 가이드는 역사와 예술 등에 해박해서 내내 집중해서 그의 설명을 들었다. 통통 튀는 재미보다 연륜과 깊이 쪽이 내 취향임을 다시 확인하며.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사랑이 그의 말에서 풍겨왔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아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품으로, 이를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이음새를 조이며 작업했다고 한다.

에펠은 사람 이름이면서 철제 교량을 만드는 회사 이름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석조 건물들 속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흉물스럽게 여겨 전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철거하려고 했다가, 통신탑 용도를 거쳐 관광 용도로 살아남았다. 현재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파리의 상징이자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를 막 지난 시기라 9시,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탓에 야경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거대한 탑을 바로 아래에서, 여러 방향에서, 먼 거리에서도 올려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관한 에펠탑은 아름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망대에서 내려 동서남북 네 방향 파노라마로 펼쳐진 파리 시내를 조망했다.






치킨과 매시드 포테이토로 점심을 먹은 뒤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올 땐 걸어 내려왔다. 몽마르뜨는 원래 성스러운 장소였다가 예술가의 마을이 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먼저 순교자 성 드니의 순교지에 세운 작은 예배당 내부를 둘러봤다. 규모는 작지만 고요한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지금은 예술가들의 마을로 알려진 몽마르뜨는 중세 시기에는 수녀원이 관리하는 성스러운 순례지였다고 한다.

1800년대 파리로 편입된 이곳에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870~80년대로, 한창 개발 중이던 파리 중심지에서 벗어나 집값이 싼 몽마르뜨 언덕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피카소 작업실 터도 있고 고흐의 단골 카페, 르누와르 등 화가들의 작업실도 있다. 몽마르뜨는 또한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항복했을 때 파리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항전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파리 시민군에 의해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려는 운동이 일어난 의미 있는 장소인 것이다.


고흐의 단골 카페 '라 본느 프랑케트'
유명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었던 골목(좌), 화가들의 언덕인 테르트르 광장(우)


푸른 세느강과 그 위에 놓인 다리들, 그리고 에펠탑과 몽마르뜨 언덕의 예술가 거리를 둘러보니, 비록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 지나갔어도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고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일정을 마무리하고 파리 가이드와 작별한 우리는 런던행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인파로 혼잡한 출국 대기장 구석에 모여 도시락과 물을 받았다. 도시락을 다 나눠준 인솔자가 내게 다가와 슬며시 뭔가를 건넸다. 오늘이 내 생일인 걸 알고 맛있는 빵을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이벤트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녀는 기어이 일행들에게 내 생일임을 알리는 바람에 축하 박수까지 받았다. 고객의 생일까지 놓치지 않는 센스도 센스지만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고 힘들 텐데 작은 것까지 챙기는 세심한 마음에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