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 마음도 명도 높음

by 들국화


창밖이 환하다. 나 여름이야, 하듯 열기를 뿜는 대기 속에서 풍경의 명도가 높다. 민락 회센터 쪽 건물들이 몇 걸음 바짝 다가서 있다. 햇빛을 품은 건물과 연보라색 하늘을 보니 마음도 환해진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다가 멈칫했다. 아차. 친구 생일이 지났을 것 같았다. 양력 생일을 쇠는 나와 달리 친구는 음력으로 생일을 치른다. 보통 내 생일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나면 친구의 음력 생일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행을 다녀오고 2주 뒤에 있는 제사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는 친구를 보며 나도 덩달아 제사 생각만 하느라고 매년 챙기던 친구의 생일을 놓쳐 버렸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친구가 집 근처 주민센터 문화원에서 한국무용 수업을 듣는 날. 수업 중일 수도 있어서 몇 초간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보통은 신호가 세 번을 넘기 전에 전화를 받는데 다섯 번이 울려도 받지 않아 수업 중인가 보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더위를 피해 스타벅스에 자리잡고 전자책이나 볼까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책은 안 읽고 온라인 마트 앱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을 때 화면 위로 친구 이름이 떠올랐다.


친구의 목소리가 높고 밝았다. 나는 생일을 잊었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친구는 높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유, 아무 상관 없다. 생일이 뭐라고.” 뭐 필요한 거 없냐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조만간 맛있는 거 먹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니 좋다고 했다. 나는 이틀 전에 갔던 초밥집에서 초밥 좋아하는 친구를 떠올렸던 걸 말하며 내일 점심 메뉴로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초밥 좋아하지.” 그렇게 약속 장소가 정해졌다. 이번 주는 멀리 나가지 않고 가까운 데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오늘이 벌써 86일째다. 그동안 쓴 글의 소재를 훑어보니 현재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운동, 글쓰기 같은 것들이다. 나는 별일 없이 살고 있구나. 사건 사고 없이, 아프지 않고.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는 일 자체가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