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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진 Jun 30. 2015

#곱게 감긴 실

곱게 감긴 실  (photo by kwan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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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게 감긴 실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감긴 실들에도 저마다 특징이 있어서 이 실을 감은 사람이 초보자인지 숙련자인지 실에도 태가 난다. 예쁘게 감긴 실은 어린 아이 배처럼 부드럽게 가운데가 볼록 한데 손으로 만져 보아도 굴곡 없이 매끈한 편이다. 나처럼 초보자가 감은 실은 가운데가 볼록 나오게 보이려고 애를 쓴 흔적만 보일뿐 손으로 만저 보면 거칠다.


베틀에 천을 짜기 위해서 여러 번 실을 감는다.

날실(천의 세로 실)을 준비하기 위해 실을 감고

날실 준비 위해 감긴 실들

씨실(천의 가로 실)로 쓰일 실을 감는다.

씨실로 감긴 실들


베 짜는 사람들 곁에는 늘 실 감아주는 사람도 붙어 있다.

남편이 베를 짜면 아내는 어김없이 실을 감는다. 어머니가 베를 짜면 그 집 자식들도 둘러 앉아 실을 감는다. 처음엔 그들도 서툴렀을 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못해 무심하다.


 시골 베틀 가정 방문을 하면서 그 집 베 짜는 모습과 주변 환경을 관찰했다.  그 집 식구들이 베 짜는 일에 어떻게 참여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컸다. 천을 짜기 전 날실 준비할 때 여러 사람 손이 필요한데 그럴 때 온 가족이 동원되거나 가족이 모자라면 옆집 가족까지 거들어야 한다. 천 짜는 일은 서로가 돕지 않으면 수월하지 않은 작업이다. 기계로 짜내는 천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게 수고롭고 비효율적인 작업이지만, 아직도 그렇게 여러 사람 손으로 만들어 내는 정성스럽고 결이 고운 천이 있다.


 기계로 손쉽고 빠르게 (심지어 아름답기 까지 한! ) 만들어진 천들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때에 사람 손으로 짜는 천은 눈길을 끌기 어렵다. 나도 처음에 이 천들에게 썩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천을 함께 만들어 보면서 수공 직조 천의 귀함을 알았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이 귀함을 강요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좀 더  이 천에 대해 알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한평생 만나는 천의 종류는  수백수천 가지가 될 텐데, 더운 나라에서 여러 사람 손으로 만든 이 천도  그중 하나가 된다면 어떨까. 작았던 마음은 점점 커지고 욕심이 생겨 결국엔 사람들이 이 천을 좋아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인생을 함께 하는 소중한 천이 되길 바라며 나도 천도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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