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독서모임을 통한 입체적 도서리뷰
<초간단 줄거리>
1장.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2장.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
- '공정한 관찰자'의 등장! 좀 더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리기!
3장. 행복을 위한 새로운 우선순위
-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들
4장. 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기, 자기기만 조심
5장. 잘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 돈과 명예보다 현명함과 도덕적인 삶
6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법
- 현명한 감정의 조절. 적절성
7장. 끌리는 사람들의 공통점
- 미덕의 3가지 조합. 신중, 정의, 선행
8장. 불확실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해 세상을 살아가면 세상이 잘 돌아감
9장.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
- 시스템보다 우선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라
10장.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초점이 다름, 관계 맺기의 소중함.
※ 참여인원:
- 데미얀 ('데미안'의 그 데미안의 후손 / 선과 악, 두 신을 섬기는 균형 잡힌 사회자)
- 횽길동 ('홍길동전'의 그 홍길동의 후손 / 또 다른 율도국을 꿈꾸는 밑바닥 혁명가)
- 죠르바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조르바의 후손 / 짐승 같은 본능을 유지하는 자연인)
- 보바뤼 ('마담 보바리'의 그 보바리의 후손 / 아름다움을 위해선 영혼도 파는 아티스트)
- 거츠비 ('위대한 개츠비'의 그 개츠비의 후손 / 무엇이든 이루고 마는 욕망 가득 허세남)
※장소: 타임머신
※시간: 24시간이 모자라.
※도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 데미얀: 안녕하세요. 오늘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가 쓴 <도덕 감정론>을 또 한 번 풀이한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마케팅적으로도 250년을 거슬러온 고전을 현대인에 맞게 풀이한 책이라고 하는데요. 직접 고전을 읽지 못하지만, 한번 그의 사상을 접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셨나요?
○ 거츠비: 훌륭하십니다. 역시 고전이라고 할만합니다. 심플하면서도 그 묵직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고전을 읽는 것 같습니다. 뭔가 애덤 스미스와 친해진 느낌. 뿌듯합니다.
○ 보바뤼: 내용은 굉장히 현실적인 것 같아요. 뭐 다 들어본 거라 그렇다 치고, 이런 형식이 마음에 안 들어요. 이런 해설서들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다 보니까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단 말이죠. 맥락이 없이 파편화 된단 말이에요. 해설자가 하고 싶은 말에 인용하는 정도니까, 실제 어떤 의도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요. 이 사람은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한테 말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고... 해설서의 한계는 있는 것 같아요.
○ 횽길동: 작가빨인 것 같음. 내용은 흔한 자기계발서 내용 비슷한데... 사실 애덤 스미스의 공은 인정하지만, 그의 사상은 지금 많이 수정되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그 경제학자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그가 도덕책을 썼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을 것 같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왜 썩었는지도.........
○ 죠르바: 제목은 마음에 들었단 말이지. 내 안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게 있나 했어.. 근데 결국 이건 개소리야. 시작부터 글러 먹었어. 왜 인간이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거야. 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난 그냥 사는 거야. 좋아하던 말던 뭔 상관이야!
● 데미얀: 역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군요. 고전은 오랜 시간 축적된 내공이 있기도 하지만 현재의 트렌드와는 다른 면이 있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죠.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먼저 구체적으로 말해볼까요? 거기서 골라서 논의를 더 진행할게요.
○ 거츠비: 전 모든 기본이 되는 전제인,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숨길 수 없는 부분을 잘 짚은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공정한 관찰자'라는 개념입니다. 아 우리에게 있는 무언가를 잘 짚어준 것 가습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 한다. 또한 인간은 선천적으로 미움받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다시 말하면, 미움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p.69
○ 데미얀: 맞아요. 이 책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따 한번 깊이 이야기해 보죠.
○ 보바뤼: 저는 '감정 조절'에 대한 부분이요. 여자들은 특히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하는데, 그것도 좀 더 생각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조심해야겠단 생각도 좀 했어요. 근데 안 친한 사람에게 말하면 더 잘 풀리나? 그런 건 좀 갸우뚱했네요.
감정을 누그러뜨려 주위 사람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려면, 원래 올라가 있던 음에서 반음을 내려야 한다. p.179
○ 데미얀: 관계에 중점을 두다 보니까 더 세심하게 다룬 것 같아요. 근데 감정이란 게, 인간 관계란 게 규범화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의아한 부분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ㅎㅎ
○ 횽길동: 저는 사회적인 면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그냥 돈을 벌어다 주는 학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는데, 사실 '기회비용', '희소성' 같은 개념들은 그냥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개념이라는 생각도 했음. 그건 사는데 필요한 거잖아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우리 인생에서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다룬다. 경제학은 인생에서 유일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선택에는 포기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겉으로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얽힐 수 있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p.27
○ 데미얀: 맞아요. 유명한 경제학자고 옮긴 사람도 경제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기대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서론에 한번 짚어주기도 했고요. 만약 스님이 썼다면 그런 기대도 안 할 텐데 말이죠. 근데 또 아이러니하게 돈보다는 도덕을 더 내세우는 것 같아서 인상 깊었네요. 그 부분도.
○ 죠르바: 전제부터 엉망인데 뭐. 그나마 그 체스판 이야기는 마음에 들었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삶이 자신의 체스판인 줄 안단 말이야. 자신이 마음먹으면 자연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다 움켜쥐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건 큰 오산이야. 그런 오만함은 굉장히 위험하지. 근데 체스판에서 하나하나의 말들은 독립적인 개체라고 했던 부분은 인상 깊었네. 그나마.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이 거대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자기 멋대로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체스판의 말들을 손으로 배열하는 것처럼 말이다. 체스판의 말들은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모든 말 하나하나가 자율성을 갖고 있다. p.267
○ 데미얀: 저도 그 부분은 보면서 비유 좋다고 생각했는데, 전체적인 애덤 스미스의 맥락과 봤을 때는 좀 언밸런스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옮긴 이가 추가적으로 부연설명을 더 붙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변호해주는 느낌? 그래도 결론적으로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다 할 때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건 공!감
우리의 노력이란 실패의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다. 또 때로는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라는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필요도 있다. 국가와 사회라는 체스판보다 더 작지만 더 훌륭한 일상을, 그 소소한 목표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p.278
○ 보바뤼: 저 그것도 있었네요. 새끼손가락과 수만 명의 목숨을 놓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하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제가 눈물이 많아서 TV에 나오는 굶주린 아이들이나 어린 난민들 보면 가슴이 아파서 전화도 하고 그랬는데, 내 손가락과 같이 비교하자니.. 너무 잔인했어요.ㅠㅠ
○ 데미얀: 그 부분은 너무 잔인했죠. 따로 질문하지 않을게요... 저는 '자기기만'이란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나아가 전체적으로 이 책이 주는 메시지와 현대의 심리학적 흐름?과 비교를 많이 하면서 봤네요. 특히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미움받을 용기>나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정신승리나 멘탈 갑 등과 비교해 봐서요.
자기기만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혼란의 절반은 바로 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기만 해도 자기기만이란 맹점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는 거짓된 자기 모습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p.98
우선 전제부터 이야기 나누어 볼까요. 인간은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하나요? 사랑받으면 행복해 지나요?
○ 거츠비: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경 쓰는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들이 통했을 때, 기쁨을 느끼죠. 나아가면 행복함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보바뤼: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건 맞는데,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러기도 쉽지 않고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니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모두에게 사랑받을여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 횽길동: 모두에게 사랑받기는 쉽지 않은 것 같음. 그래서 연예인들한테도 그런 사람들한테 '국민'이란 호칭을 붙여주잖아요. 안티가 없는 사람들이란 뜻도 되고, 국민 배우, 국민 MC, 국민 여동생 등등. 저번에 KBS 프로듀사에서 이승기가 까메오로 출현했었는데 '국민'이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연기긴 하겠지만, 모두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 정치인이면 몰라도 뭐...
○ 데미얀: 맞아요. 그래서 연예인들 보면 '공황장애'이런 병들 많이 걸리잖아요. 우울증 약 먹는 사람들도 많고... 그분들은 직업상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공인'이냐 아니냐는 말이 많지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그런 분들은 제외하고 우리 일반 사람들로 좁혀서 생각해 볼까요?
○ 죠르바: 저 전제는 틀려. 우선 하나라도 예외가 나오면 안 되잖아. 근데 나는 그렇지 않거든. 다른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걸 안다고 하면, 그대로만 행동하게? 뭐 어느 정도 배려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에 따라 내 행복이 좌우되는 거잖아. 맘에 안 들어.
○ 데미얀: 오, 조르바가 좋은 말씀해주었네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건 그렇다고 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이냐. 그래서 이 저자가 제시한 개념이 ‘공정한 관찰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공정한 관찰자’에 따라 행동하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이 ‘공정한 관찰자’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 나누어 볼까요?
○ 거츠비: 공정한 관찰자라는 개념은 친절하게 나오지 않나요? 명확하지는 않지만 딱 듣자마자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건드리려 할 때마다 우리의 몰염치한 격정을 향해 깜짝 놀란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친다.
우리는 오직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가진 것들이 미미하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잘못 발현된 자기애를 바로잡을 수 있다. p.46
○ 보바뤼: 저도 뭔지는 알 것 같은데... 사실 그게 내 안에 있는 거잖아요. 결국. 그래서 그게 공정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양심이랑 겹치더라고요. 만약 종교가 있는 분은 종교적 계율과 겹쳤을 것 같아요. 근데 둘이랑은 또 다르다고 이야기하니까 좀 혼란스럽긴 했어요. 그의 머릿속에만 있는 건가.
양심은 각자의 가치관이나 종교 등의 원칙이 정한 기준에 어긋났을 때 자극을 받는다. 그런데 이 기준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스미스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이보다는 어깨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인간 대 인간으로 나를 심판한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p.45
○ 횽길동: 맞아요. 저도 또 다른 인물을 상상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그 인물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을 갖는 게 법적으로도 금지되었고 도덕적으로도 금지된 일이었죠. 일한 만큼 모두 정부에 제공해야 됐으니까. 근데 정부에서 주는 배급량이 너무 적어서 자식들이 굶어 죽으려고 해요. 그럴 때 그 사람의 공정한 관찰자는 어떻게 말할까요? “정부에 모두 제출해.” 아니면 “너의 자식을 부양해.”. 여기서 답이 있나요? 기준에 따라 답이 달라지지 않나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공정한 관찰자가 다 다른 판단을 한다면, 사실 위에서 말한 양심과 다를 것도 없잖아요?
○ 데미얀: 심도 깊은 고민을 하셨네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갖는 가치판단의 기준은 사실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개인을 넘어 우리가 절대시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 ‘생명의 존엄성’, ‘자유’, ‘평등’ 들도 들 수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개념도 생긴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죠. 지금도 계속 다양한 해석을 통해 제멋대로 쓰이고 있어요.
○ 거츠비: 저는 약간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정도 유연성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자도 일부러 ‘공정한 관찰자’가 어디서 왔고, 어떤 규범들을 제시하고 등등은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근데 250년 전이면 지금보다 종교의 영향이 더 강할 때니까,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제 머릿속에 종교적 외침들 있잖아요. 그걸 당연스레 ‘공정한 관찰자’로 삼았어요. 그리고 그게 잘못됐다기보다는 그런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다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 보바뤼: 그렇게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양심’과 동일시할래요. 그냥. 종교도 없으니.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생활하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죠.
○ 죠르바: 내 어깨 뒤에 누가 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워. CCTV야 뭐야. 무서워서 오줌이나 쌀 수 있겠어? 그딴 게 있어도 무시해 버리라고. 그냥 누가 구경하나 하란 말야. 그런 변태 같은 놈이 하라는 대로 해서 얻는 게 뭐야.
○ 횽길동: 결국 이게 문제인 것 같음. 모두 공정한 관찰자를 다르게 생각하면 사실 또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피해를 보는 사람도 생기고. 누군 힘들어도 원칙대로 내가 일해서 번 것을 모두 정부에게 바치고, 누구는 가족을 위해 숨겨두고. 이래서 법이 생기는 건가. 그렇다고 법이 절대적일 수도 없잖아요? 수시로 바뀌고 하는데.
○ 데미얀: 길동님이 좋은 말씀해주셨네요. 그 기준이 어렵다 보니 저자도 계속 부연설명을 하는 것 같아요. 장발장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죠.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인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던 거죠. 그래서 자수하게 되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또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단 말이죠. 그런 불안은 참... 그래서 저자는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인간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자 위대한 장점은 신뢰다.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p.251
더 깊이 들어가도 어려울 것 같으니 살짝 이야기를 돌려서, 공정한 관찰자를 믿고 따르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 거츠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사랑받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느 정도 기준은 나오잖아요. 봉사하고 베풀고 따뜻한 사람을 사는 사람들. 그렇게 살면 스스로도 뿌듯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인정받으면서 행복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속한 사회의 인정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잖아요.
○ 죠르바: 이름은 개뿔. 죽으면 끝이야. 내가 죽으면 세상도 끝이라고. 죽어서 이름 남아서 뭐하려고. 다 부질없어.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야지! 뭐 내가 내키는 대로 하는데 누가 좋아해주면 좋지만, 누가 좋아하라고 내가 뭔가 하는 건 딱 밥맛이라고. 내가 좋은 걸 해야지 이 사람아. 여기서 미덕 어쩌구 하면서 제시한 조건도 ‘신중, 정의, 선행’이란 말이야. 다 밖을 생각한 거라고. 나한테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어. 감옥이 따로 없다고!
○ 보바뤼: 한 가지 예가 생각났어요.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 여성은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한 고리타분한 남자랑 결혼했어요.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 따분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진정한 사랑을 만난 거예요. 그때 공정한 관찰자는 이렇게 소리치겠죠. “너에겐 남편이 있어. 한눈팔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이 욕할 거야. 불명예를 안을 거라고. 정신 차려!”, 하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하나뿐인 진정한 사랑이야, 놓치면 안 돼. 바로 잡아. 넌 다시 태어날 수 있어!”. 여기서는 공정한 관찰자는 공정하긴 한데, 절 행복하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 죠르바: 그 이야기 들으니 내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는구먼. 한 남자가 있었지. 이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당최 거짓말을 못하는 놈인 거야.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근데 별로 안 슬펐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안 슬퍼했어. 안 슬펐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엄청 욕하는 거야.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만약의 그놈에게 공정한 관찰자란 놈이 이런 얘기를 해줬을 수도 있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퍼해야 돼.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널 인정할 거야. 효자처럼 보여야 된다고.” 근데 그놈은 그 말을 듣지 않았지. 그러다 그게 큰 계기가 되어서 결국 법정에서 어이없게 사형선고를 받게 되지. 오래 사는 게 행복이라면 공정한 관찰자는 오래 살게 해줄 수는 있겠구먼. 난 그렇게 생각은 안 하지만 뭐.
그래도 이 부분은 좋았네. 앞뒤가 좀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공감 갔어. 이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 뭐. 나를 위하다 보면 그게 남을 위할 수도 있다는 거지.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원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p.47
○ 거츠비: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측은지심’이란 말이 있잖아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 저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따뜻한 마음이 행복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는 마찰이 일어나는 상황을 많이들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종심’이란 게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건데, 말 그대로 마음대로 한다는 거예요. 근데 중요한 건 마음대로 해도 법규를 어긋나지 않는다는 거죠. 이때쯤 되면 공정한 관찰자와 마찰이 생기지도 않겠죠? 공정한 관찰자 = 욕망 = 행복 아닐까요. 근데 뭐,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면 납득이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횽길동: 저는 뿌리 깊은 불신이 제 문제인 것 같아요. 아까 데미얀 님이 ‘신뢰’ 이야기하셨잖아요. 근데 그 ‘신뢰’가 무너진 것 같아요. <죄수의 딜레마> 아시죠. 우리는 누가 봐도 현명한 판단이 있는데도, 서로를 믿지 못해 차선책을 실시합니다. 경제나 정치적으로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는 안락한 삶, 조화로운 삶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행복은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데미얀: 다들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이 저자도 그러한 고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기만’을 죄악처럼 다루는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는데 ‘자기기만’이 그것들을 해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죠. 우리 ‘자기기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자기기만’이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 죠르바: ‘자기기만’이란 말뜻이 뭐야? 도대체.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는 건 이해가 되는데 내가 왜 나를 속인다는 거야? 내가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는 게 기만이라는 건가?
내가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는 지나친 이기심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우리 안의 목소리다. p.47
근데 내가 남들과 같나? 나는 내가 엄청 소중한데. 내가 남들보다 천만 배 소중한 거 아닌가. 내가 날 소중하게 생각 안 하면 누가 날 소중하게 생각하나 그려.
○ 거츠비: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나 말고도 ‘소중한 사람’ 가지고 있잖아요. 심지어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나요? ‘나’가 무조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위험한 사상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려 사는 삶 속에서, 자기기만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외사항을 두면 안 돼요. 결국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자기기만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혼란의 절반은 바로 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기만 해도 자기기만이란 맹점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는 거짓된 자기 모습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p.98
○ 보바뤼: 저도 저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정말 간이나 쓸개를 모두 주고 싶은 사람. 그런 면에서는 공감해요.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중요하다는 걸. 근데 모든 타인을 다 똑같이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까 예외사항을 이야기하셨지만, 딜레마적인 상황은 아주 많아요. 예로 들면 삼각관계에서 하나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어차피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어야 한다면, ‘자기기만’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면 필요한 것 같아요.
○ 횽길동: ‘자기기만’이란 말은 좀 어려운 것 같아서 저는 ‘자기합리화’라고 이해했거든요. 쉬운 예가 다이어트 같아요. 운동을 하기로 한 원칙 있는데 핑계 대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자기합리화가 나쁜 거 같죠. 자괴감도 들고. 나약한 것 같고. 근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 ‘다이어트’를 왜 하느냐, 누구를 위한 거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사회적으로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준 거라면, 다이어트가 행복감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성형 수술도 마찬가지고. 그럴 때는 자기합리화가 궁극적으로 그냥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 보바뤼: 자기 합리화 이야기하니까 엄청 싫은 거 하나 생각났네요. 남자가 헤어질 때, 자기가 헤어지고 싶으면서 ‘널 위한 거야.’라고 하는 경우 있잖아요. 그때 완전 짜증 나요. 이미지 관리하면서 자기 합리화 지대로 하는 거죠!
사람들이 실제로는 이기적인데도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광고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여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은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되는 일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p.103
● 데미안: ‘자기기만’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스스로에게 어떤 ‘잣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 같아요. 저자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려는 욕구’를 잣대로 둔 것 같죠. 하지만 그 잣대가 변하는 것에 따라 ‘자기기만’을 어떻게 보느냐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네요. 예전에는 좀 더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이성적인 잣대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자기기만’을 엄격하게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좀 더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덜 엄격한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자기합리 花’라는 말도 있고, ‘멘탈 갑’이란 말도 있어요. 좀 더 스스로에게, 본인에게 집중한 표현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번에 다루었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와 상당히 다른 점이 많은 책이죠. <미움받을 용기>가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반발이 있었다면 <도덕감정론>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또 반발이 생기는 것 같네요. 하지만 둘 다 말하는 내용은 결국 ‘아름다운 사회’로 귀결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며 마무리 지을까요.
무슨 일이든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이다. 나 혼자서는 아주 작은 변화만을 일으킬 뿐이다. 우리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작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p.260
○ 죠르바: 굳이 뭐 비교하자면 <미움받을 용기>가 낫구만. 내가 하는 행동이 미움받을지, 사랑받을지 어떻게 알어? 그렇게 저울을 갖고 재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니까! 그런 판단 자체를 버려야지! 우리가 ‘사랑받을 용기’라는 말을 쓰나? 안 쓰잖아. 용기는 뭔가 극복해내야 하는 뉘앙스가 있단 말이지. 우린 극복할 게 아주 많아요. 그중에 ‘미움’도 하나의 사른 사람의 가치관일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사랑받을 용기’라고 하고 싶구먼. 나한텐 사랑받는 게 더 어려운 것 같거든! 정말 애써야 받을 수 있는 거란 말이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나한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백해무익해!
내가 사랑받고 있고, 또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행복할까? 반대로 내가 미움받고 있고,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불행할까?
○ 거츠비: 물론 미움받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면 안 되죠. 하지만 우리 인류에겐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받아 들어야 합니다. 두 책에서도 ‘자기 수용’이란 개념은 서로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기만하지 말고! 그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좋은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좋은 도덕책입니다! 지키건 안 지키건 그건 나중이고 이런 북극성 같은 올바른 책, 두고두고 볼 만한 책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보바뤼: 저도 거츠비님 말처럼 ‘도덕책’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지키든 안 지키든 도덕책은 의미는 충분히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도덕책에는 다양한 사상가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건 한 사상가의 말이라고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네요. 그냥 그 질문들을 두고 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은 잠시 미뤄두고. 하지만 관계적인 면을 다룬 건 좋은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모든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다고는 했지만, 사실 ‘타인의 과제’로 미뤄둘 것을 이야기했잖아요. 그건 쉽지 않았거든요. 그나마 이건 현실적으로 관계 맺는도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했어요. 기쁨과 슬픔, 적절성 등. 모두가 이런 적절성을 지킨다면 사회가 아름다워질 것 같긴 하네요.
○ 횽길동: 저도 이야기 나누면서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된 면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자유방임’이란 것은 어느 정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잖아요. 냅둬도 어느 선은 지키겠지. 그런 선을 지키도록 해주는 것이 ‘공정한 관찰자’ 겠죠. 그러니 각자가 이 공정한 관찰자의 말만 들으면 사회는 알아서 어느 정도 굴러 간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 지금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정부가 개입하고 있잖아요. 중간에 ‘공산주의’란 체재도 나오고.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러니 ‘법’이 필요하고 ‘경찰’이 필요하겠죠. 이는 우리의 ‘신뢰’가 깨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신뢰가 어차피 깨졌으니 이 책이 필요없다?,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아쉬운 면이 있으니, 저는 역으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신뢰를 다시 찾아주는데 이 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직 인간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책!
○ 데미얀: 다들 좋은 말씀이네요.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그렇고 <도덕감정론>에서도 그렇고 공통점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의미가 있는 부분이죠. 사회는 결국 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깐요.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에 하나의 기준을 갖는 것 자체가 더 위험한 환경이 되어 버렸죠.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상호 이해인 것 같습니다.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서로 배려하는 것. 방법은 달라도 하나의 방향을 보고 있으니 그 방향을 위해 모두 노력합시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_ _)
p.s 실제 애덤 스미스가 이런 구분을 가졌는지는 의문....
<도덕감정론>은 <국부론>과 단지 초점이 다를 뿐이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실제 사람들의 행동 방식 그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
가까운 사람간의 관계를 다룬 <도덕감정론>과 상품과 생산과 교역을 다룬 <국부론>에 나타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이 두 책에서 말하는 영역은 삶에서 서로 아주 다른 범위에 있다. p.293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12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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