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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Mar 30. 2020

[독서교육] 우리 아이의 읽기독립을 위하여

스스로 읽는다는 것

요즘 문해력, 독해력, 국어능력이 교육계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기초학습능력과 직결되어 있어서 새학기에 더 관심을 갖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공부머리 독서법>, SBS 다큐스페셜 <난독시대>, EBS 다큐프라임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 등 미디어에서도 다루고 있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언어능력발달의 기본은 노출과 결핍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모국어도 절대적인 노출량과 지속적인 결핍이 필요합니다. 많은 육아 방송에서 “수다쟁이 부모가 되어라.”라고 하는 것이 이 노출량에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책을 읽어주는 것도 일상 회화에서 쓰지 않는 풍성한 표현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결핍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질문이죠.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지적 결핍을 느끼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화들을 많이 접하셨을 거예요. “책만 계속 읽어줘도 한글 깨치고, 읽기독립도 하고, 공부습관까지 생긴다.” 연구개발 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은 ‘홍삼’ 같아요.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 저는 이 말을 믿긴 하는데,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정말 많은 노출과 자연스러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요즘과 같이 미디어 노출이 많고, 핵가족화 된 사회에서는 이정도의 독서환경 구축이 쉽지 않습니다. 또 이 정도의 교육열이 있는 분들은 사실 다른 것도 많이 하십니다. 매년 유아교육전을 다니다보면, 영어와 중국어, 수학과학 교구, 미술과 음악 활동 등등 좋은게 정말 많죠. 이런 것들을 하다보면 절대적으로 독서, 모국어 노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저러한 신화가 이루어지기 힘든 거죠. 


초등학교에서 읽기독립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심지어 교과서 독해가 안 되어서 학습결손이 생기는 아이들이 다 교육적으로 방치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것저것 조금씩 하다보니 모국어를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 그림책 읽고, 외국 음악 듣고, 춤추고, 찰흙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글로 된 책을 술술 읽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 아닐까요?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해야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컨셉과 목표, 그에 맞는 교육과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글 학습’에 문의를 주셔서 그것을 예로 정리해볼게요. 그림책을 읽을 때, 아름다운 그림 위주로 생각을 열어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주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그림책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감동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심미적 읽기와 어떤 목적을 갖고 정보를 얻거나 학습을 하는 정보추출적 읽기는 전략을 구분하는 것이 좋아요. 극단적인 예로, 글자 없는 그림책을 100번 재미있게 읽어도 나중에 글로만 이루어진 책을 스스로 읽는 것에는 도움이 많이 안 될 수 있어요.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한글은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하나의 기호입니다. 기호 자체를 직면할 시간이 필요해요.


읽기독립, 스스로 책을 읽기 위해서, 한글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 ‘그림 언어’를 나누어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한글을 익힐 때에는 글자+소리+그림을 함께 배우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하면 다 알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림이 사라지고, 소리가 사라집니다. 글자만 남는 거죠. 그러면 그 글자를 직면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학습 만화로 빠지며 글자로 된 책을 계속 읽기 힘들어하죠. 읽기 힘들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피하게 됩니다. 독서에 대한 태도는 독서 능력과 연결된 경우가 많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흥미도 생기지 않는거죠. 우리도 운동을 배울 때 처음에는 못하니까 재미 없다가, 조금씩 실력이 붙으면 더 재미있기 시작하잖아요. 마찬가지죠.


읽기독립을 목표로 두고, 글자 / 소리 / 그림을 분리해서 생각해보세요. 이 세 가지가 섞여 있을 때, 대부분의 아이는 그림과 소리에 많이 의존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힌트죠. 하지만 여기에 매몰되면 글자는 거들떠도 안 보는 경우가 많아요. 때가 되면 흥미를 갖겠지 기다리다, 학습만화에서도 글자 없이 그림만 쓱쓱 보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글자’ 자체에 직면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씩 주어야 해요. 간단히 단계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1단계: 글자+그림+소리: (바나나 글자와 그림을 보여주며) 우아 바나나다! 이게 뭐라고?

2단계: 글자+그림: (바나나 글자와 그림을 보여주며) 이게 뭐야?

3단계: 글자+소리: (바나나 글자만 보여주며) 바나나가 뭐야?

4단계: 글자: (바나나 글자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순서가 달라질 수 있어요. 예습과 복습으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방탈출 게임을 예로 들면, 내가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걸 조합하는 것을 즐기는 방식이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추리하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있죠. 성취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선 먼저 4단계를 주고,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스스로 알아맞히도록 하며 조금씩 힌트를 주는 방식이 좋습니다. 부담을 느낀다면 1단계부터 차근차근하는 방식이 좋고, 아이 성향에 따라 조절하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한글학습만 하면 한글 자체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을 때, 적절한 자극을 주는 방법이 좋습니다. 내가 자주 듣던 그림책 안에서 기본 자음 ‘ㄱ’을 찾아 O표하기, ‘엄마’라는 어휘 찾아보기와 같은 식으로 글자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누가 더 빨리 찾나”와 같은 게임을 해도 좋죠. 결국 수많은 글자 기호 속에서 목표하는 글자를 찾는 것이죠. 이미 익숙한 그림책일수록 스스로 소리+이미지를 함께 연결짓기 좋습니다.


같은 어휘를 배우더라도 이미 좋아하는 그림책을 활용하면 ‘맥락’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휘의 난이도를 측정할 때 요소로 “모양이 복잡한지, 의미가 명료한지, 친숙한지” 이 세 가지가 주가 됩니다. 모양이 복잡하지 않은, 기본 모음과 기본 자음으로 받침 없이 이루어진 “바나나”와 같은 어휘들이 많이 활용되죠. 또 추상적인 형용사나 동사 외에 구체적인 사물 명사 중심으로 많이 시작하고, 또 일상 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과일이나 가구 등을 먼저 배우죠. 이 셋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이 친숙도라고 할 수 있어요. 복잡한 모양의 공룡 이름, 텔레비전, 스마트폰 등이 아이에겐 가장 쉬운 단어가 되죠. 최근 “미스터 트롯”에 나온 트로트 신동들을 보면 할아버지와 살면서 트로트에 익숙해진 아이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단어도 아주 가깝게 느낍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책 이야기에서 뽑은 어휘, 생활 속에서 나오는 어휘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글자 자체에 집중하는 연습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읽기독립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읽기독립은 결국 아무런 힌트 없이 기호를 읽고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 목표에 맞는 지도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혼자 일어설 수 있어요. 진정한 "독립"은 인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이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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