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
읽고 쓰기의 개념이 변한다
오픈북 시험이라는 것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시험 답안을 쓸 때 책이나 노트를 자유롭게 참고하도록 허용하는 시험이죠. 그런데 요즘 대학에서는 더 열린 형태의 시험이 치러지기도 합니다. 주어진 교재는 물론 인터넷 정보까지 활용해서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보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답을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슷한 주장을 펼치더라도 어디서 어떤 자료를 찾아서 어떻게 정리했느냐, 그 자료를 내 생각과 어떻게 통합하여 의견을 개진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큽니다.
시험으로 암기 능력을 측정하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입니다. 이해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서,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고 나의 사유와 통합하여 창조하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읽고 쓰는 능력’이란 의미의 리터러시literacy와 미디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리터러시는 ‘문식성’, ‘문해력’이란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리터러시란 말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죠.
문자 언어를 기준으로 생각할 때,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알아보는 능력에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글의 맥락과 내재된 뜻을 파악하고, 때로는 행간과 글이 쓰인 사회적 배경까지 생각하여 깊은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글자를 기호로서 파악하는 해독(decoding)과 독해(reading)를 애써 구분하는 이유죠.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읽는 이를 파악하고, 명확하게 나의 생각과 의미를 담아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표현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읽고 쓰기의 대상을 ‘미디어’로 확장하면 어떨까요?
현대의 미디어는 문자는 물론 이미지, 소리, 음악,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멀티 미디어라고 많이 하죠. 책과 영화처럼 제작자가 완성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있는가 하면, 방대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미디어 등 각각 활용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수용하여, 전달되는 메시지를 바로 이해하고, 각 매체의 특질에 맞게 메시지를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미디어 리터러시’입니다. 정보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쌍방향으로 미디어를 활용하고 나아가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능력까지 모두 미디어 리터러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디어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도 수시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책, 영화, 광고 등 일방향으로 제공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이를 정리하여 표현하는 정도를 말했다면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은 더욱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정보가 범람하는 만큼 활용할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쓰기’의 범위도, SNS를 통한 기본적인 의견 나눔은 물론 영상 기획 및 제작과 편집, 능동적인 커뮤니티 활동, 개인 플랫폼 운영 등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미디어 리터러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미디어 접근 능력, 미디어의 비판적 이해 능력, 소통 능력, 창의적 표현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또 영국 미디어 규제기구인 오프컴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접근access, 이해under-stand, 창조create’로 정의했는데, 현재는 이 기준이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요구되는 요소들 역시 이에 따르고 있습니다.
미디어 문맹에서 탈출하라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성인이 글자를 읽고 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50년 이전에는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정부 등이 지속적으로 문맹퇴치사업을 벌이고 의무교육을 시행한 덕분에 이제는 ‘문자를 모르는 문맹’은 많지 않습니다. 이후 교육의 중심은 단순히 문자 언어를 읽을 줄 알고 쓸 줄 아는 것을 넘어,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능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언어와 의사소통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문자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 언어, 인포그래픽, 영상 언어 등 다양한 언어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문자 언어도 책, 인터넷, 모바일 등 환경에 따라 활용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3D, 증강현실, 가상현실과 같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개념이 생길 전망입니다.
새로운 소통수단이 생기면 곧바로 이해하고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상 문화, 디지털 문화를 외면하다가는 또 다른 문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맹은 TV를 볼 줄 모르는 사람,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사람, 책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이미지나 연출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 피상적 내용만 파악하고 안에 담긴 의미는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 이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의미를 구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시대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통에 활용되는 미디어나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사람,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거나 창의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디어 문맹은 치명적입니다. 세상이 정보화 사회를 넘어서 초연결 사회로 진화하고, 단순노동을 점점 더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를 통해 배우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소통 방법이 생기면 그 필요성을 인식한 사람들부터 이를 활용하는 능력을 익히고 전파합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리터러시가 널리 퍼지면, 또 새로운 것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앞으로도 리터러시는 계속 확장될 것입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평생학습시대에 우리는 놓치지 않고 습득하려고 할 테니까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두 가지 관점
학교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듯, 미디어 리터러시 역시 적절한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하면 신문활용교육newspaper in education을 떠올리는데, 이는 정확히 말하면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으로, 미디어 리터러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신문을 활용한 수업, 뉴스를 활용한 수업, 광고를 활용한 수업과 같은 것이죠. 요즘은 영화를 활용한 수업, 웹툰을 활용한 수업, 유튜브를 활용한 수업 등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미디어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함께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과거에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적극적으로 그 수용 역량을 키워주기보다는 미디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며 멀리한다든가, 아동이나 청소년을 미디어의 영향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죠. 이러한 관점을 보호주의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강력한 힘을 가진 미디어가 제작자나 자본의 의도대로 수용자에게 영향을 끼치리라 는 우려와 비판에서 비롯합니다. 최근에도 SNS 중독이나 게임 중독에 대한 걱정과 함께 디지털 기기 멀리하기 운동이 지속되고 있죠.
반대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역량 강화empower-ment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수용자는 미디어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활용할 역량이 있으며, 역으로 그 힘을 활용하여 각자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창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대형 방송사가 아닌 개인도 다양한 미디어의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수익을 얻게 되면서 이러한 관점은 더욱 힘을 얻고 있죠. 키즈 크리에이터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학부모도 늘고 있습니다.
미디어 활용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두 패러다임이 모두 중요합니다. 무조건 배척하거나 막무가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