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의 완성은 표현이다
쌍방향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누구나 작가,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여형 콘텐츠를 통해서도 좋아하는 작품에 직접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드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지만, 이는 대부분 작가나 제작자가 짜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직접 만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제작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독자 겸 작가, 유저 겸 메이커가 만든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기존 작품을 패러디해 만든 ‘웃짤’이나 짤막한 고양이 영상 같은 간단한 콘텐츠부터,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든 웹툰이나 게임 같이 대단한 작품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를 바탕으로 프로 활동을 시작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미디어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오픈소스 제조업 운동이라고도 하는데, 기존의 DIY(Do It Yourself)와 같은 맥락이지만 취미나 자급자족을 넘어 다양한 산업까지 뻗쳐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으며, 또 필요한 물품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습니다. 3D 프린터가 등장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열리고, ‘메이커 운동’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생활 아이디어와 창조 욕구가 실제로 창의적인 제품으로서 기업의 투자를 받기도 합니다. 메이커 박람회 영상을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나오는데, 제작자도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작품들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도 2014년 7월, 메이커 1천만 명을 육성한다는 계획과 함께 3D 프린터 활용 교육과 보급, 셀프제 작소 구축 등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물결은 아이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주는 아빠, 3D 프린터로 완구를 만들어 쓰는 학생 등등 소소한 활동부터 고급 피규어, 집과 같은 건축물 등으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꼭 과학자나 발명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과 열정을 갖는다면 모두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메이크미디어의 설립자 데일 도허티는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만드는 활동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제작 방식에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만드는 사람이다.”
이 메이커 운동의 흐름은 미디어에서도 이어집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개인방송’이란 이름으로 본인이 기획한 방송을 제공하는 형태입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와 생산자의 다양한 욕구가 결합되며 이제는 폭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매체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문제점을 뛰어넘는 매력으로 대세 미디어가 되었죠. 기존 방송에서는 누군가의 심사를 거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것, 수많은 필터링에서 살아남은 것만 제작이 되었다면 지금은 원하면 무엇이든 그리 어렵지 않게 제작 · 방송이 가능합니다.
이런 창조 활동에 종종 경제적인 수익이 따라오긴 하지만, 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전체 비율로 보았을 때 많지 않습니다. 그럼 왜 힘들게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제공할까요? 그것은 그냥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샘솟는 아이디어,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묵혀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툴을 통해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이 TV에 대응한다면, 라디오에 대응하는 것은 ‘팟캐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은 얼굴이 나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고 편집에도 손이 많이 간다면 팟캐스트는 이보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정치를 비롯한 거대담론부터 아주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방송까지 다양한 방송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고, 각자 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 쓰기 열풍’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늘어나고 책의 권위가 예전과 같지 않은데도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갑니다. 사실 그 책들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은 전체 비율로 보았을 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를 남기고 싶은 마음 이 그들을 작가의 길로 이끕니다. 예전에는 출판사의 투자를 받기 위해 높은 심사의 벽을 넘어야 했다면, 독립출판을 비롯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스스로 책을 만드 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주체할 수 없는 표현욕구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꼭 출판이 아니더라도 SNS와 웹상에 작품을 연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중 일부는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형태로 수익을 얻기도 합니다. 누구나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듯이, 누구나 미디어를 제작할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앞에서 고전 게임 ‘테트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끊임없이 내려오는 퍼즐 조각들, 그 조각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자세. 이를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된 인간에 비유했었죠. 그러한 상황에 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퍼즐이 나에게 적합한지, 어떻게 활용 가능한지 등을 생각하며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창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레고 장난감에 비유하겠습니다.
레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레고는 조립해야 합니다. 처음엔 정해진 기본 설계를 따라 조립하여 하나의 모형을 만듭니다. 그렇게 끝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부수고 또 다른 모형을 만들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뜻대로 조립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레고(lego)는 ‘잘 노는’이란 뜻의 덴마크어입니다. 이것저것 만지며 내 맘대로 잘 노는 것이죠.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이탈리는 이를 바탕으로 ‘레고 문명’이란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서로 다른 철학과 이데올로기, 정치 체제와 예술, 문화, 종교, 교육 등이 모두 뒤섞인 세상에서 ’레고형 인간‘은 이를 자기 의도대로 조립합니다.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끊임없이 만들어갑니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냥 그대로 읽습니다. 작가가 써주고, 감독이 찍어주고, 프로그래머가 만들어준 대로.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나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작품을 읽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라면 결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약 나라면 어떤 배우를 캐스팅했을까?
만약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작품을 접하고 나서 생각해보면 좋을 질문들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나를 또 다른 생산자의 자리로 옮겨 놓습니다. 기존에 생산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나만의 생각으로 재구성해보는 순간이죠.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순간입니다.
책을 통해서 상상력을 기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지 않으면 결국 상상력은 길러지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매체를 접하더라도 상상하면서 읽으면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그것을 활용하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기존의 것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뒤틀고 변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출처: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