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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연수_운전 공포증을 극복하는 연대의 힘

2020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수록 작품 '연수'

by 이승화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연수 #장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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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사 공부 중에 배웠던 그래프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이 주고받는 그 물결 곡선. 시대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자 하는 작품과 예술의 순수성을 내세우는 작품들의 갈등. 영화 <동주>에서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운동권 몽규와 개인의 서사를 풀어내는 섬세한 동주의 논쟁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이 수상작을 비롯한 선명한 흐름들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이다. 나중에 공부의 대상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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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되는 PC 운동이 세계의 문화적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논쟁도 따라온다. 모든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은 좋은 취지이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는 성급히 결론 내리기 어렵다. 같은 목소리를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기생충>과 BTS도 이러한 사회적 흐름이 없었다면 세계적으로 대박날 수 있었을까... 지금 코로나19로 아시아인 차별이 다시 심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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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연수>가 참 좋았다. 그것을 중심으로 리뷰를!!

*내용: 성공한 여자의 유일한 실패, 운전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한 운전 연수 이야기

*감상: 안전운전합시다! "잘하고 있어."

*추천대상: 운전 공포증 가진 분

*이미지: 자동차 비상등, 깜박깜박! (고마워!)

*내면화: 나의 운전 공포증은 어떻게 극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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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마음먹은 것은 거의 다 이룬 능력 있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운전'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어설픈 프로(?) 아주머니 강사에게 연수를 받게 된다. 이 둘의 티키타카, 환상의 케미를 통해 공감과 유머, 그리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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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운전 공포증이었다. 자율주행차만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면 교통사고 위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미디어를 많이 접해서 그런가... 중요한 것은 과거형이라는 것. 생명 유지를 목표로 운전을 멀리하며 전문가에게 아웃소싱(대중교통) 해왔으나 지금은 어찌어찌 극복했다. 스마트 센스와 신형 내비게이션, 그리고 유튜브...#미남의운전교실 의 도움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포증보다 '싫어증'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이 확~ 줄어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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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우리 엄마다. 여기 주인공과 매우 흡사하다. 매우 자존심 세시고 똑부러진 분인데, 급한 성격에 운전면허증도 겨우겨우 따셨다. 그리고 또 10년 넘게 장롱면허로 고이 모셔두다, 63살에 친구에게 자극받아 도로연수를 받으셨다. 목표는 외할머니댁을 맘 편히 오고 가는 것! 아주 최근, 6개월 만에 혼자 고속도로를 뚫고 그 목표를 달성하셔서 대견하긴 하다. 장하다, 전재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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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새 차를 뽑자마자 1달 사이에 3번의 사고를 냈고 최근까지 총 5번의 사고가 났다. 다행히 모두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박은 것이라, 서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왜 자꾸 가만히 있는 차를 건드는지 모르겠다. 스마트 센스도 있는데... 그래서 아직까지 엄마 차에는 "초보운전" 딱지가 2개나 붙어 있다. 연수 강사님이 1개 붙이시고, 내가 하나 더 붙였다. 슬며시 떼고 싶어 하셨지만 아직은 지키고 있다. 부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엄마한테 전화 오면 불안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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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지막 장면에 뭔가 울컥했다. 강사님이 영웅처럼 느껴졌다.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너희는 탈출해!", 그리고 무전으로 "잘하고 있어, 뒤돌아보지 말고 직진해! 혼자서 잘 할 수 있어!" 응원해 주는 느낌. 비혼주의고 여성 임원이고, 주체성이고 다 좋다. 하지만 혼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답습할 필요는 없지만, "고마워요, 선생님"이라고 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비상등을 두세 번 깜빡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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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누구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위험한 정글이다. 손가락질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웬만하면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지 않으려고 한다. 양보도 잘해준다. 다른 분들도 허접한(?) 우리 엄마에게 경적을 울리지 않길 바라며, 양보해 주길 바라며. "초보운전"을 지켜주길 바라며. 도로라는 거친 세계 속에서의 자그마한 연대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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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구나.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받을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못돼처먹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 그래. 바로 그녀였다. p.12 <음복>

- "기죽지 말고, 어디 가서 기죽을 필요 없고, 미우나 고우나 내 아들이니까. 내 새끼다." p.149 <그런 생활>

- 글을 쓰는 동안에도 쓰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글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생활을 했다. p.151 <그런 생활>

-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어" p.210 <다른 세계로>

-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니까." p.234 <인지 공간>

- 무언가 해내고 싶은 마음,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모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몰랐다. 그러니까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는. p.257 <연수>

-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p.286 <연수>

- 그는 아내가 본능적으로, 이제 영원히 아들을 잃었음을, 자신들이 도저히 좁히지 못할 어떤 경계선을 기어이 넘어버렸음을 깨닫는 중이라고 여겼다. p.325 <우리의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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