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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Jun 10. 2023

[책리뷰] 하얼빈(김훈)_역사, 독립, 안중근

*내용: 31살 청년 안중근의 삶과 하얼빈 거사,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

*감상: 코레아 후라! 또 지하철에서 울었네...

*추천대상: 안중근 알고 싶은 분

*이미지: 포수, 무직, 담배팔이

*내면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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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하철에서 또 울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한 소설을 만났네요. 몰입감 있는 빠른 템포의 요즘 소설과 다른, 김훈 작가만의 덤덤하면서 묵직한 문체! 이 문체가 더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여운을 주었습니다. 막 읽었을 때는 그냥 덤덤했는데... 리뷰 쓰려고 밑줄 다시 보고, 이것저것 접하면서 쓰나미 같이 감동이 밀려 왔어요.

밀리 한 줄 리뷰 중 "안중근의 삶은 뜨겁고, 김훈의 문장은 차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엄청 와닿았어요. 덤덤한 김훈의 문체 속에 담긴 안중근의 역사적인 거사! 그의 가난한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 

이 책은 을사늑약의 순간으로 시작해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감옥에서의 이야기. 그의 순국과 함께 이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어디까지가 실제 역사이고, 소설인지 혼란스러운 부분도 분명 있어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소설적 재구성, 이와 관련된 논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마음 속에 감동을 우선시 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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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역사 지식이 아니라, 이렇게 입체적으로 한 인물, 청년 안중근을 만나니 더욱 감명 깊었어요. 이 인물을 왜 이리 늦게 알았는지, 관심을 갖지 못한 것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31세면... 저보다도 어린데... 뒤늦게 여러 가지 영상을 살펴 보고 영화 <영웅>도 볼 예정입니다.

이전에 영화 <동주>를 보고, 책 <소년 동주>를 읽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필사하고... 지금까지 프로필 문구로 쓰고 있는데요. 이번 <하얼빈>을 통해 안중근이란 인물에 대해 빠져 들었습니다. 그 담백함과 올곧은 강인함! 김훈의 문체와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영화 <동주>를 보고 몽규란 인물을 알게 되었듯, <하얼빈>을 읽고 우덕순이란 인물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담배팔이'가 바로 그입니다. 형체가 없는 명분이 아닌, 실체가 있는 청춘의 언어! 어찌 그리 심플할 수 있을까요. 목숨을 건 일인데두 표면에 드러나지 않아도, 이런 분들이 함께 있어 우리가 지금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빌렘과 같은, 천주교의 역할과 이토에 대한 이미지도 인상 깊었어요. 김아려와 주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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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전자책을 읽으면서 울컥 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며 마무리 지을게요. 우덕순과 하얼빈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 아니... 어마어하나 거사라서 막대한 투자를 받으며 계획적으로 진행된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한 상황이어서 놀랐습니다. 그 순간 마저도 '호강'이라고 생각하며, 옷을 사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 다시 찾을 수 없는 사진이지만, 찍어두면 좋다는 마음! 저도 모르게 울컥! ㅠㅠㅠㅠ 영화 <암살>에서 삼총사가 "촌스럽지만 사진이나 ~" 하면서 한 컷 찍은 것도 떠올랐어요. 마지막을 남기는 듯한 모습. 후.

그리고 이토를 향해 총을 쏘고, 잡히는 순간 외치는 말 "코레아 후라", "대한민국 만세"라는 익숙한 말이 또 낯선 말들을 통해 울림을 주었습니다. 후. 말하면 뭐합니까... 역사물을 보면 항상 찡한 코끝. 이 감동이 좋으면서 두려워 자주 만나지 못하기도 하죠. 그래서 미루고 있었는데... 모임 때문에 또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완전 성공적입니다! 모임에서 나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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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筆生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이토 자신이 설명의 언어를 갖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계량하고 시간을 사적 내밀성의 영역에서 끌어내 공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문명개화의 입구라고 설명을 해도 고루한 조선의 고관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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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어쩐지 하느님의 자식이라기보다는 세속의 아들 쪽에 더 가까워 보였는데, 안중근에게는 그 안팎의 구분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구분이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양쪽이 합쳐진다는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빌렘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 말은 자욱했는데, 아무도 말을 믿지 않았다. 

-- (빌렘) ……도마야, 악으로 악을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 이 말이 너무 어려우냐? 네가 스스로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터이므로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 형님, 가지 마시오. 여기서 삽시다.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것이 장자의 길이다.


-- 이 세상에서 이토를 지우고 이토의 작동을 멈춰서 세상을 이토로부터 풀어놓으려면 이토를 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안중근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 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 근접할 수만 있다면 세 발 이상은 필요 없다. 경호원이 많아도 먼저 쏘는 자를 당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총이다. 


-- 우덕순의 밀린 하숙비를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중근도 우덕순도 알고 있었으나 말하지는 않았다.  출발 전날, 안중근은 이석산李錫山을 권총으로 협박해서 백 루블을 빼앗았다.  


-- 안중근은 이토를 쏘러 가자는 말에 두말없이 따라나선 우덕순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덕순의 질문 없음을 안중근은 신뢰했다.  


-- 이발을 마치고 안중근은 우덕순을 데리고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을 찍자.

  —돈이 모자랄 텐데……

  —겨우 된다.


  —지금 찍으면 찾을 수가 있겠나!

  —없다. 그래도 찍어두면 남는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찍자.

  —오늘 호강하는구나. 


=> 찾을 수 없는 사진 ㅠㅠㅠ  영화 <암살>에서 다 같이 사진 찍는 장면


"동무들, 우리 촌스럽지만 사진 한 장 찍지..."


-- —수고하셨습니다, 서방님. 천주님의 은혜입니다.

  안정근이 돌아가자 김아려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 그러므로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었다. 


-- 이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 순종은 살길을 생각했다. 조선의 살길과 황실의 살길과 백성의 살길은 겹치고 또 부딪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 이토를 죽인 범인은 한국인 청년 안중근이고, 안중근은 십이 년 전에 황해도 산골 마을에서 빌렘 신부에게 영세 받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며칠 안에 세상에 알려졌다.  


-- 삼 년쯤 전에 이 지역에서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포수와 청년들을 모아서 군사 조직을 갖추고 마을을 위협하는 동학군을 쳐부수었는데, 그때 열여섯 살 난 안중근이 그 선봉의 역할을 했다고 빌렘은 뮈텔에게 말해주었다. 뮈텔은 안중근의 골격을 바라보면서 족히 그럴 만한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안중근은 키가 작고 다부졌고, 땅을 힘주어 디디고 걸었다.


-- 안중근은 조선의 자식이고 조선의 폐허에 발 디디고 있지만 폐허에 속하지는 않았다. 안중근은 길라잡이로서 믿음직했지만 뮈텔은 안중근에게서 위태로운 어긋남을 느꼈다. 


--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내가 있고 네가 없는 세상에서, 또는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세상에서 소식을 전하려던 것이었을까? 


-- ……여기까지 오기는 왔구나. 여기서부터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세상을 향해서 말을 해야 하는구나. 여기서부터 다시 가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서부터 사형장까지…… 말을 하면서…… 


-- 나는 다만 일개의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나는 말하기 좋아서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거사는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공개를 금지한 이상 진술할 필요는 없다. 


--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안중근은 『안응칠 역사』를 쓰기를 서둘렀다. 글은 재판이 시작되는 대목까지 나아가 있었다. 


--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 신부님, 제가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말씀드려도 좋겠습니까? 


-- 도마야, 너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이 모든 것이 저의 모자람이고 저의 복입니다. 이 복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 


-- 김구는 광복 직후 중경重慶에서 장제스蔣介石를 만났을 때 안준생을 체포 구금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를 ‘교수형에 처해달라’고 중국 관헌에게 부탁했다.  


-- 안정근은 안창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모병, 교육에 헌신했다. 안정근은 여러 독립 투쟁 단체들의 통합을 추진했고,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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