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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파: 가용 능력을 확인하라

일잘러의 어휘력

by 이승화
자리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은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주말에는 정말 복잡했어요. 1층 입구부터 지하 5층까지 담당 요원들이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며 인간 신호등 역할을 했습니다. 주차는 쇼핑의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차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해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층마다 주차 가능한 자리가 남아 있는지 정확히 체크하고 보고하는 일입니다. 자리가 없는데 차가 들어오면 뺑뺑 돌다가 기분만 상하고 쇼핑도 못하고, 부정적인 경험만 쌓게 돼요.


주차장이 꽉 차면 ‘만차’ 표지판을 앞에 꼭 걸어 두어야 합니다. 조금만 늦게 막아도 들어와서 안나가는 차들이 있어요. 다른 차 빠질 때까지 안에서 기다린다거나, 허가되지 않은 곳에 이중 주차를 하고 쇼핑하러 도망(?)갑니다. 연락도 안 받고 볼일 다 본 후에 오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 주차장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수용 가능한 정도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해요. 이것이 캐파입니다.


캐파를 파악하라


캐파(CAPA)는 Capacity의 줄임말로 용량, 수용량, 능력을 뜻합니다. 라틴어 동사 ‘capere’에서 파생된 말로 기본 의미 ‘잡다, 취하다’에서 확장되어 잡을 수 있는 능력, 담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게 됐어요. 가방에 이것저것 담다 보면 용량이 초과할 때가 있죠. 그럼 지퍼가 안 잠깁니다. 그 선을 잘 지켜야 해요. 나아가서 사람의 능력, 역할 등을 뜻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어요.


비즈니스에서는 업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제조업에서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거나 물건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의 뜻으로 활용돼요. 캐파가 부족하면 대량 주문이 들어와도 생산이 밀리게 되고, 고객의 불만족으로 인한 치명타를 입습니다.


나아가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나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가용 일정 등을 의미하기도 해요. 기대치가 능력 범위 밖일 수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와 겹쳐 일정 내에 작업이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과감하게 업무를 외부 업체에 넘기거나, 일정을 조율하는 식으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프로젝트 일정 보고 캐파 확인해 주세요.

*대규모 프로젝트는 저희 캐파가 부족합니다.


리소스를 확보하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리소스(resource)가 있어요. 기본적으로 자원,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확장되어 능력, 역량이란 의미도 있어요. 컴퓨터를 하다 보면 ‘시스템 리소스가 부족하여 요청한 서비스를 완료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뜰 때가 있는데, 메모리와 CPU, 저장공간 등이 부족해서 서비스 수행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하고 있는 작업을 줄이거나, 디스크 공간을 정리해서 저장 공간을 확보하거나, CPU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비즈니스 상황에도 물질적 자원부터 인력 자원까지 다양한 의미로 활용됩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말이 ‘리소스 파악’, ‘리소스 확보’입니다. ‘리소스 파악해줘!’라고 하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필요한 인력, 기술, 예산 등을 확인하라는 의미입니다. ‘리소스 확보해줘!’는 해당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가용한 인원 및 자산을 챙기라는 의미죠. 리소스가 부족하여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컴퓨터 상황에 대입하면 프로젝트 규모를 줄이거나, 기존 업무를 조절해서 일정과 예산을 넉넉하게 확보하거나, 능력 있는 직원을 채용해야 합니다.


두 손을 확인하라


한 스님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답변을 주는 콘텐츠가 있었어요. 스님의 명쾌한 말씀 때문에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스님 말씀의 기본은 결국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였어요. 인상 깊었던 한 사연을 소개할게요.


사연자가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제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스님은 손을 펴며 이야기 하셨어요. 지금 손이 비었으면, 취하고 싶은 것을 가지면 됩니다. 그렇게 두 손을 가득 들고 있는데, 저 새로운 것이 가지고 싶은 상황이면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 놓고 새로운 것을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탐내면 그때부터 마음이 복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해 마음고생한다는 말씀을 마지막에 덧붙였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잘 지키지 못합니다. 두 손을 확인하지도 않고 진행하는 회사의 프로젝트, 팀의 프로젝트, 개인의 프로젝트를 생각해 봅니다. 손이 비어도 문제, 손에 무언가 가득 들고 있어도 문제죠.


가용 능력을 확인하라


일 잘하기로 소문난 디자인팀 직원분이 있었습니다. 일당백으로 빠르게 많이 작업한다거나, 멋있게 디자인하는 실력보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어요. 우리가 원하는 콘텐츠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내부에서 작업할 것인지, 외주자와 협업할 것인지 선택합니다. 정해진 일정 안에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판단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이런 업무 능력의 기본은 자신의 가용 능력, 팀의 가용 능력, 외주자의 가용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겁을 먹거나 일을 줄이고 싶은 마음에 업무를 외부에 떠넘기면 회사의 비용 낭비이자 개인의 역량 소모이고요. 가용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혼자 다 하겠다고 끙끙대고 있어봤자 스스로만 힘들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잘못하면 마감 일정도 밀릴 수 있어요. 가장 먼저 스스로의 가용 능력을 확인해야 해요. 나태한 마음이나 일에 대한 욕심 둘다 경계해야 할 요소입니다. 스스로의 업무 능력과 일정 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데도 나태한 마음으로 회피한다면 그만큼 업무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는 거예요. 일 안 한다는 소문은 금방 퍼집니다. 반면에 하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하다면 학습하며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도와줄 인력을 구할 수 있어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험을 준비해 둡니다. 이것도 다 선택이고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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