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신, 갱신: 스스로를 뛰어 넘어라

일잘러의 어휘력

by 이승화
경신 vs 갱신


보고서에 많이 쓰이는데 헷갈리는 말 중 대표적인 것이 경신과 갱신입니다. 다음 문장에서 경신/갱신 중 알맞은 단어를 찾아 보세요.

㉠ 매출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갱신 했다.

㉡ 품목 유효기간을 일괄적으로 경신/갱신했다.

㉢ 협력사와의 기존 계약을 경신/갱신 했다.

㉣ 이벤트 참가자 수가 최대치를 경신/갱신 했다.

㉤ 단체협상 경신/갱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다


경신(更新)은 ‘고치다 경(更)’, ‘새 신(新)’이 합쳐진 한자어업니다. 풀어서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기본 의미가 있어요. 다르게 바꾸어 새롭게 고친다는 ‘변경(變更)’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나아가 기록경기 따위에서, 종전의 기록을 깨뜨리거나, 어떤 분야의 종전 최고치나 최저치를 깨뜨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라톤 세계 기록 경신’과 같은 의미로 많이 활용됩니다. 이때는 깨뜨려 뚫고 나간다는 의미의 돌파(突破)를 사용하여 ‘세계 기록 돌파, ‘최대치 돌파’로 표현 가능합니다

㉠, ㉣은 어떤 기록이나 수치를 깨뜨린다는 의미에서 활용된 ‘경신’이 적합해요. 그리고 ㉤에서 단체협상의 기존 내용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경신’도 가능합니다.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다


갱신(更新)은 ‘다시 갱(更)’, ‘새 신(新)’이 합쳐진 한자어입니다. 자세히 보면 경신과 갱신은 같은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이 경(更)은 독특한 한자어로 이름이 두 개입니다. ‘경’으로 읽을 때는 ‘고치다’라는 뜻이고 ‘갱’으로 읽을 때는 ‘다시’라는 뜻이에요. 굉장히 헷갈리죠. 그래도 뿌리는 같기 때문에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는 기본 의미는 유사합니다. 여기서 갱신과 경신은 유의 관계로 소개되어 있기도 해요.


하지만 갱신은 법률관계의 존속 기관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계약서 갱신’, ‘신분증 갱신’과 같은 상황에 많이 활용됩니다. 이때는 비슷한 의미로 길게 늘린다는 ‘연장(延長)’을 사용하여 ‘계약서 연장’, ‘신분증 연장’ 등으로 표현 가능해요.


㉡, ㉢은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계약을 연장한다는 의미에서 ‘갱신’이 적합합니다. ㉤의 단체협상도 기본 의미를 가져 와서 새로고침하는 ‘경신’도 가능하고, 협상 내용을 연장한다는 의미의 ‘갱신’도 가능해요. 추가 맥락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2022년에 KBS에서 ‘청년층 퇴사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퇴사 이유를 물었을 때, ‘보수가 적어서’(38.0%), ‘업무에 만족하지 못해서’(25.0%), ‘개인의 발전/성장 가능성이 낮아서’(22.5%)와 ‘근무환경이 열악해서’(22.5%) 응답이 주로 나왔습니다. 이유가 복합적이죠. 이 중에서 ‘개인의 발전/성장 가능성이 낮아서’에 대해 나누어 볼게요.


우선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SNS를 비롯한 미디어들에서 주입된 욕구와 기준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대에 꼭 해야 할 것들, 30대가 되면 보이는 것들, 40대에 이룬 것들 등 연령대로 카테고리화해서 나누는 콘텐츠들이 많이 보이죠. 이런 관점을 직장으로 가지고 오면 직장 생활 3년차에 보여주어야 할 퍼포먼스, 5년차 때 쌓아야 할 포트폴리오, 10년차 때에 보여줄 영향력 등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홍길동전 영웅의 일대기처럼 시련을 극복하고 우상향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인생 그래프가 나의 인생 그래프는 아닙니다. 특히나 직장생활과 같은 조직 생활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 나오기 쉽지 않아요.


마케터 3년차면 이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보면 불안하겠죠. 내가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회사의 직무에 불만족하게 됩니다. 업무가 적성에도 안 맞는 것 같고, 회사도 비전이 없는 것 같고, 여러모로 근무 환경도 열악해 보입니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죠. 당연하게도 여기서 나는 성장할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는 긍정적입니다. 대신 성장의 기준을 내면에서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대기업 직장인의 브이로그, 길거리 직장인 인터뷰 등은 우선 내면의 기준을 세운 후, 나중에 참고만 하세요.


스스로를 뛰어 넘어라


먼저 언제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느끼는지, 어느 순간에 발전했다는 생각이 드는지 고민해 보세요. 처음부터 올림픽 신기록을 목표로 달리면 지칩니다. 또 누군가를 비교 대상으로 정하고 달리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엔 힘이 나는 강한 자극제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효과는 떨어져요. 장기적으로 어제의 내 기록을 경신한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달려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다는 마음을 오늘 느껴야 해요.


<기획자의 사전(정은우)>이라는 책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유럽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레슨비를 위해서 접시닦이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이들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내가 비록 지금 설거지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멋진 음악가가 될거야!’라고 미래를 생각하며 참는 사람과, ‘지금 이 접시를 어떻게 신속하게 깨끗하게 닦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실파입니다. 이 중에서 누가 훌륭한 음악가로 성공할까요? 소개된 사례에서는 후자, 눈앞에 있는 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강조합니다. 어제보다 더 설거지를 잘하는 본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지금 하는 일이 초라해보일 수 있고, 스스로의 성장이 더디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왜 조급해하는지 고민해 보세요. 머나먼 미래 성공의 목적지부터 역으로 계산해 온 것은 아닌지, 잘나가는 미디어 속 사람들과 비교한 건 아닌지, 좋은 동료를 경쟁의 상대로 삼아 마음의 결핍을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말이죠. 항상 기준은 본인입니다. 스스로를 갈고 닦아 더 새로워지고 나아지는 모습을 그리세요. 본인의 기록을 경신해야, 더 넓은 세상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keyword
이전 05화캐파: 가용 능력을 확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