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어휘력
무슨 회의하나요?
학창시절 학급회의를 떠올려 보세요. 초록색 칠판에는 회의에서 다룰 주제가 큰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체육대회 준비하기, 교실 꾸미기, 수학여행 장소 정하기 등 다양한 주제를 칠판에 적고 회장의 진행 아래 의견을 교류했어요. 주제에 따라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흐지브지 끝나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었어요. 가장 기억나는 것은 역시 체육대회입니다. 종목에 참가할 선수들 정하기, 반의 색을 잘 드러내는 옷 정하기, 응원곡 선택하기 등등 작은 안건들을 의논하며 체육대회 준비라는 큰 문제를 해결해요.
하지만 관심 없다고 엎드려 자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딴짓하다가 “무슨 이야기지?”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회의 주제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죠. 그냥 빨리 끝내자고 소리치기도 해요. 그럴 때 “이거 못 정하면 우리 집에 못 가!”라고 하면 갑자기 아이들이 협조적으로 변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나중에 딴소리하는 친구들은 꼭 있었죠.
지금 다루어야 할 일
아젠다(Agenda)는 사전적인 의미로 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 주제를 의미합니다. 라틴어 ‘agere(행동하다, 실행하다)’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결국 실행을 전제로 한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안건, 지금 진행해야 할 일정을 나타내기도 해요.
아젠다는 뉴스에서도 많이 들어볼 수 있는 말이에요. 뉴스는 수많은 사건 중에서 중요한 일을 포착해 다루기 때문에 주요 아젠다를 뉴스거리로 삼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미디어나 정치인이 강조하는 주제가 사회의 주요 아젠다가 되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를 아젠다 셋팅(Agenda setting)이라고도 해요.
회사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핵심 주제와 목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아젠다로 선정하고 직원들과 공유합니다. 당장 매출이 급감하여 회사가 위기 상황이라면, 위기 극복을 주요 아젠다로 삼겠죠.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확장한다면, 사업 확장을 위한 정체성 확립이 주요 아젠다일 겁니다. 범위를 좁혀서 팀 내에서 보직이 이동된다면 당장 그 주제로 의견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번 회의의 아젠다는 기존 사업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하계 세미나 아젠다를 미리 안내합니다.
이슈 라이징
비슷한 단어로 비즈니스상의 문제점, 논의할 주제를 뜻하는 이슈(Issue)가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죠. 이슈는 라틴어 ‘exire(나가다, 흘러나오다)’에서 유래된 말로 어떤 결과물을 뜻해요. 사회적 논쟁거리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잡지나 논문 발행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화제가 되는 것들이 사람들의 입밖으로도 나오고 뉴스나 잡지에 실려 발행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기술적 의미로는 오류 사항이나, 기능 요청, 작업해야 할 대상을 나타냅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항, 물건 판매나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항은 주목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렇게 이슈가 현실화된 문제 사항을 의미하는 구체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는 그 뉘앙스 차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아젠다 셋팅과 비슷한 의미로 이슈 라이징(Issue rising)이 있어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해당 이슈를 주목받게 만드는 과정을 뜻해요.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주목 받는 문제는 일부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해결책을 세우는 우선 순위도 달라지죠. 진짜 중요해서 주목받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에 의해 주목 받게끔 만들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해당 문제의 중요도를 높이는 작업이 이슈 라이징입니다.
회사에서도 수많은 문제들 중에 대표님이 강조한 문제는 더 우선 해결하고 보고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모두가 속전속결로 해결책을 구상합니다. 단체 메신저 수많은 텍스트 중에 일부를 ‘공지글’로 해 두는 작업을 떠올리세요.
명확하게 이해하고 고민하라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부산스럽습니다. 회의 소집이 있다고 해서 “무슨 회의인가요?”, “왜 모이나요?”라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직원들이 많아요. 직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주최자가 제대로 공유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죠. 이렇게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참여하는 회의는 실속 없이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직장에서 회의를 할 때는 분명한 아젠다를 설정하고 모여야 합니다. 티타임처럼 친목을 다지는 자리라면 ‘팀 분위기를 위한 친목 다지기’가 아젠다가 됩니다. 소중한 업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아젠다를 주기적으로 언급하며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 목적을 바탕으로 기준이 잡혀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빠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합리적인 의사결정도 가능해요.
아젠다를 설정한 후에는 참여자들에게 적절히 공유해야 합니다. 참여자들도 미리 아젠다를 파악하면 회의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모이세요.”보다 “이런 자리가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까지 모이세요.”로 아젠다를 공유하면 회의 시 참여자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더불어 참여도도 올라갑니다.
회의 끝나고 나서 “맞다! 이걸 못 정했네!”라며 다시 전화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젠다에 맞는 내용 중 자신이 꼭 확인해야 할 작은 주제들을 미리 정리해 나가면 좋습니다. 아젠다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공유하고 준비하며 회의의 밀도를 높이는 습관을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