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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제대로 이해하라

일잘러의 어휘력

by 이승화
공지사항 필독


안내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에피소드가 자주 뉴스로 전해집니다. ‘채용 O명’이라는 모집 공지에 도대체 몇 명 뽑는 거냐고 따지기도 하고, ‘추후 공고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추후 공업 고등학교’로 오해해 어디냐고 물어요. ‘우천시 OO로 장소 변경’이라는 안내에 ‘우천시가 어디인가요?’라고 되묻고 ‘OO를 금합니다’라고 하면 금지하는 것인지, 금(金)처럼 좋으니 권장한다는 의미인지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농담 같지만 실제 사례들이고, 주변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누구나 모르는 어휘가 있고, 모든 어휘를 다 알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공지사항, 안내문에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생활하는데 큰 손해를 볼 수 있어습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도 안내 사항이나 지시 사항을 얼렁뚱땅 대충 읽었다가 일어나는 사고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직원 분들은 공지 내용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과드립니다.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표현들도 공지사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인데, 제대로 이해했나요?


정확히 알다


양지(諒知)는 참되다 ‘양(諒)’과 알다 ‘지(知)’가 합쳐진 말로 살피어 안다는 의미입니다. 회사에서는 공문이나 안내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로 안내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해 달라는 의미로 활용됩니다.


비슷한 의미로 숙지(熟知)가 있어요. 익다 ‘숙(熟)’과 알다 ‘지(知)’가 결합하여 충분히 이해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양해(諒解)와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는데, 뉘앙스가 조금 달라요. 양해(諒解)는 믿음직하다 ‘양(諒)’에 풀어 설명하다 ‘해(解)’가 더해진 말로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사과하거나 부탁하는 상황에 더 적합합니다.


*오늘 경기는 우천으로 인해 취소되었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달부터 회비가 5,000원 인상되오니, 양지 바랍니다.


제대로 이해하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항상 꼼꼼하게 살펴보는 과정부터 시작입니다. 그래서 피곤한 일이고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요. 좋아하는 소설 <바깥은 여름>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할게요.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 사람을 이해하는 것 모두 포함하여 어려운 일입니다.


보고서나 안내문을 대충대충 훑어보다 단어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다른 글자로 모양을 착각하기도 하고, 맥락을 놓쳐 글자의 여러 의미 중 선택을 잘못하기도 해요. 한자어 같은 경우에는 모양이 같아도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으니 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앞뒤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해요. ‘OO를 금한다’라고 했을 때 OO가 부정적인 내용이거나 상황에 맞지 않으면 ‘금지’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죠.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검색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물어서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대충 넘어가면 나중에 또 헤맬 수 있습니다. 꼼꼼하게 이해해서 확실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태도가 중요해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되면 좋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인 지식이 지혜가 됩니다.


헤아려 살피다


제대로 아는 것 만큼이나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혜량(惠諒)은 은혜 ‘혜(惠)’, 참되다 ‘량(諒)’이 합쳐진 말이에요. 남이 헤아려 살펴서 이해함을 높여서 이르는 말입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주로 편지나 메일, 안내문이나 공문에서 활용되는 공손한 표현이에요.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의미로 많이 활용됩니다.


비슷한 의미로 해량(海諒)이란 단어가 있어요. 생긴 것도 비슷하죠? 바다 해(海)자를 써서,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이해를 구하는 의미입니다. 글자의 순서를 바꾸면 앞에서 잠깐 다루었던 양해(諒解)가 돼요. 바다 ‘해(海)’와 풀어 설명하다 ‘해(解)’로 한자는 다르지만 이 단어들은 모두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상황에서 많이 쓰여요.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는 점,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넓은 혜량을 부탁드립니다.


너그럽게 이해하라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디자인팀과 협업을 많이 하게 돼요. “A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디자인이 오면 신경질이 나기도 합니다. 의도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날카롭게 쏘아붙이기도 해요. 그러다가 오탈자 문제로 계속 급하게 수정을 요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상황이 역전되어, 교정 좀 제대로 보라는 가시 돋힌 말이 날아옵니다. 주고받는 까칠한 말 속에 감정만 상하게 돼요.


회사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다 보면 미묘한 신경전이 생기곤 합니다. 서로의 이익을 내세우거나 책임을 피하려고 할 때,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상대방이 잘못한 상황을 공격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도울 때, 나도 도움을 쉽게 요청할 수 있어요. 나도 부탁할 상황이 분명히 생깁니다.


현장에서 문의사항이 오면 담당자가 애매한 경우가 있어요.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킨 문제에서 먼저 나서면 일이 많아질까봐 모두들 눈치봅니다. 일을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니면 모른체하는 다른 직원이 얄밉다며 기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일을 해보세요.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관심을 갖고 문제에 접근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관련 부서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 일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비협조적이라면 부탁하는 마음도 필요해요. 손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결국 해당 업무에 대한 지식과 문제해결력을 얻는 것은 본인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이 적극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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