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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개 지화 Feb 03. 2023

2020년 12월, 나는 겁 없이 창업했다.

(feat. 화개스튜디오에서 화개기획에 이르기까지.)

2020년 12월 나는 창업을 결심했다.


계기는 다른 게 아니라, 같이 살던 친한 동생이 일자리에서 구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온라인 광고 쪽으로 프리랜서를 뛰고 있었고 동생은 골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의 텃세에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창업의 계기는 누구나 다양하겠지만, 나의 단순한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향한 지독한 갈망.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호기심.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지만, 그래도 내 동생이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받은 게 너무나 많아서 더 참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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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두고 언니랑 같이 창업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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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동생은 회사를 바로 그만뒀다. 빠르게.



이후, 우리들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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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게는 동생이 둘이 있다.


하나는 피가 섞인 둘째, 다른 하나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음을 나눈 막내.


현재, 막내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둘째는 지금 나와 함께 못다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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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사 내부


나는 하나에 집중하면 나머지들을 나 놓치는 습관이 있다. 나의 생활패턴은 기본적으로 투잡, 쓰리잡으로 일에 집중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은 점점 먼지구덩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기침이 너무 많이 나오면 한번씩 치우고... 옷도 입는 옷들만 입는 편이라 빨래도 쌓이면 그때 한꺼번에...


나는 마음이 힘들 때 일을 더 많이 늘리는 편이다. 체력을 쓰는 일이건 두뇌를 쓰는 일이건 시간을 조율해서 촘촘하게 스케줄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다.


내가 한창 마음이 심란하고 어려울 때 모든 걸 회피하고 일만 할 때가 있었다. 그때 의동생은 내게 건강한 식사를 차려주고 당시에 청소도 하지 않고 살던 내 집을 다 치워주고 잔소리 하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우리 집에 천사인지 우렁각시인지 모를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식사하라고 밥이랑 국이랑 반찬을 만들어놓았는데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맛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나도 기본적으로 인간이 살려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밥을 챙겨 먹고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같이 맛있는 음식도 종종 만들어서 먹고 등산도 다시 시작하면서 12kg 감량, 기력도 회복할 수 있었다.


현재 회사 내부


그리고 힘을 내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할 광고회사를 차렸다. 그게 바로 [화개 스튜디오]였다.


빛날화, 열개 : 빛을 열다. 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지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화개장터가 생각난다고.. 그래도 이미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동생들도 귀에 쏙 들어오고 좋다고 했다. 그대로 화개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버렸다.


그리고 그해 12월 말, 무작정 광고를 원할 고객사들을 찾기 시작했고 그 달에 알바몬을 통해 3명의 사장님들을 만났다. 마케터 구직 공고를 올린 사장님들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포트폴리오, 광고회사를 시작했다는 사실, 블로그 광고 제의를 드렸었다. 여기서 한 분은 2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게 여러가지 일을 주고 계시고(이분은 어려울 때 많은 조언을 주시고, 내게는 정말 은인이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분이시다.), 다른 한 분은 사업이 어려워지셔서 함께하지 못하셨지만 아직 젊으시기 때문에 분명 도약하실 기회가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회사 회의실 내부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인생에서 정말 보기 어려운 빌런이었다. 새벽 2시에도 전화가 오고, 술주정을 하고... 인생이 힘들다면서... 대학생인 여자친구가 바람을 폈다나... 지금 생각하면 당장 손절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내 나이가 만 27살이니 당시에 나는 만 25살이었다. 신세한탄을 하는데 당시에 순진했던 나는 그걸 그대로 들어드리면서 위로해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 등짝을 세게 후려치고 싶다. 하...)


그는 딸아이도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어린 알바생들을 괴롭혔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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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밑에 일하는 알바생들도 다 여자분들이었는데, 20대 초반의 어린 대학생들이었고 사장으로부터 인신공격과 더불어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하면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며 무지막지한 폭언을 날렸다. 당시에는 그런 빌런을 정말 인생 살면서 처음 만나보아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그 사장님을 연민했고, 그 다음에는 두려웠고, 그 다음에는 분노했고, 그 다음에는 서글퍼졌다. 명백한 불의 앞에서 내가 가졌던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다니...


당시 빌라에서 동생들한테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울고, 둘째도 울고, 막내도 울고 그렇게 셋이 건물이 떠나가라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막내가 해주는 맛있는 요리로 기분전환. 그리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변호사인 친척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인생에 첫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아무런 예고편없이 내 삶에 등장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주고도 모든 돈을 후불제로 미루다가 떼먹었고, 돈은 필요없으니 도저히 함께 일을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차단하자 전화번호까지 바꿔가며 사람을 괴롭혔다. 그게 벌써 2년전 이야기라니... 시간 참 빠르다. 친척언니와 형부가 변호사셔서 망정이지... 서울에 아시는 기업 전문 변호사님을 소개시켜주셔서 내용증명을 권해주셨지만, 당시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서 그냥 연락을 두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었다. 그리고 당시 밑에 있었던 20대 초반의 여대생들도 다같이 퇴사. 당시 사업장 주소를 아는 그 사장님이 찾아와서 깽판을 놓지 않을까. 몇 달 동안 동생들이랑 덜덜 떨며 무서워했던 기억은 지금은 나름의 교훈을 선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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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 만 아니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론은 나는 악착같이 일을 했고, 더 큰 도약을 위해 작년 4월 1억의 자본금으로 주식회사 화개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법인을 세울 수 있었다. 회사 사무실도 15평 투룸 빌라에서 꿈에 그리던 30평대 단독 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직원들을 해고해야만 하는 순간도 왔었었고, 이후 우울감이 심해서 몇달동안 베개에 머리만 대면 눈물이 그렇게 나왔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결코 가볍지 않다. 숭고한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의지만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너무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매순간 두들겨 맞으면서, 모든 것들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덕분에 빠르게 흡수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사업 시작과 함께 운전을 시작했고, 타고난 방향치이자 길치인 나는 지금 나름대로 꽤 승차감이 좋다는 운전사가 되었다. (계약을 따러 이곳저곳을 다녀야 되다보니 울며겨자먹기로 운전을 시작했었다. 운전만 하고 나면 온 몸에 근육통이 생길정도로 긴장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지방도 곧잘 가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시간이 약일 때가 있다. 그리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절망과 곤란스러운 상황 끝에 희망이 내게 손짓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경우들이 많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단 시작했을 때 명확한 결과는 모르지만, 운명이 이끄는 대로 최선을 다해 노를 저을 예정이다. 배의 노를 젓는 뱃사공은 나이지만, 배의 큰 방향성을 이끄는 바람은 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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