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것도 '글쓰기' 덕분이라고?)
왕따였던 내가 전교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글쓰기' 덕분이다.
유치원 때부터 나는 말수가 참 적은 아이었다.
항상 생각이 많았고, 부모님께서 던진 몇 마디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다.
예민해서였을까. 아니면 섬세하고 예술성이 있어서 였을까.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늘을 바라보거나,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었다.
하여튼 아버지는 그런 나를 강하게 키우시고자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셨고, 아버지가 실행하시는 훈련에 따라가려고 노력은 했지만 온갖 면역결핍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던 나를 강하게 훈련시키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항상 '자신감'이 부족했고,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힘들어했었다.
생각은 많은데, 표현하기를 어려워했다. 곁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친구들도 내게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외로웠다.
그때 내 마음을 채워준 것은 어머니가 사주신 수백여권에 달하는 동화책들, 위인전들이었다.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책 속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모든 영웅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처음부터 영웅인 사람은 없었기에. 다들 고난과 역경을 거쳐서 더욱 단단해지고 빛을 발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 그렇게 희망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단 폭행을 당한 후에, 학교를 옮겼었다.
영웅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어서인지,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한 친구에게 사물함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서 뛰어다니는 모습에 그러지 말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되어서 그때부터 지독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고, 맞짱을 뜨기로 한 날. (비오는 날이었다.)
그 친구는 7명의 친구들과 함께 복날 개패듯이 우산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다 여학생들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하하. (집단 폭행을 주도한 나OO, 김OO. 거의 2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이름이 선명하다.)
피멍이 든 몸을 이끌고 서럽게 오열하며 집으로 걸어갔지만, 집에 들어갈 때는 마음 여린 엄마가 걱정할까봐 울음을 애써 참았다.
물론, 빠르게 알아챈 엄마와 아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심각해진 부모님의 표정.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옆동네로 이사할 수 있었고, 바로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겼었다.
물론 새로 옮긴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일을 겪고도 멀쩡했다면... 난 아마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지 않았을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거나, 용기내어 말을 할 때도 말을 더듬으면서 덜덜 떨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초등학교에서도 왕따가 되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본 책의 위인전들도 이런 상황들을 겪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신경써주지 않고, 괴롭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항상 노트에 상황을 적곤 했었고, 어느 순간 결론이 나왔다.
누군가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는 리더가 되어서 나 같은 왕따를 없애면 되는 문제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나는 반장선거에 계속 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임원을 총 네 명 선출했는데,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이렇게 네 명이었다.
항상 내게 주어진 표는 단 한 표였다.
내가 나를 뽑은 1표
부끄러웠다. 매번 1표인데, 반장 선거 후, 부반장 선거, 회장 선거, 부회장 선거에 계속 나가서 뻔뻔한 척 연기를 하는 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했다. 선거에 나가기 전날에는 내가 반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노트에다가 적었고, 수없이 연습을 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공약을 말할 때만큼은 떨지 않도록.
물론 덜덜 떨면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제 목소리가 나올 때도 있었다.
선거를 나갔다고 해서 내 성격이 변한 건 아니었다. 난 여전히 예민했고, 3학년 때는 그 예민함이 극에 달해 1년 내내 아침부터 오후까지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학교가 떠나가라 엉엉 울어재끼는. 정말 건드리면 피곤해지는 그런 아이었다.
한해가 지나가고, 두해가 지나가고.
여전히 내 친구는 책과 노트였다. 책을 읽고 느낀점을 노트에 적어보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노트에다가 끄적이다보면 미소가 슬쩍 나왔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라기 보다는 그냥 글로 적혀진 것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 처음 반에서 부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장을.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임원을 놓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교내 토론대회의 사회자를 맡기도 했고, 전교생 앞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전교 부회장에 이어, 전교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원래부터 말을 잘하는 줄 안다.
과거의 나는 정말 겁이 많았고, 무대에 나오기 전에 엄청 덜덜 떨면서 심장을 옥죄는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근데 지금의 나는?
솔직히 말하면 담대하다기보다는 될대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그냥 한다.
여전히 떨린다. 근데 하도 덜덜 떠는 인생을 살면서, 그 감정들을 노트에 기록하고,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많았다보니 준비할 때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대신 당일에는 내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될대로 되라! 하는 자신감으로 하면 정말 아무렇지않게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냐면 난 이미 종이에 내가 해야할 말들을 다 정리해놓았고, 수십 번 읽었으며, 두려워할 만큼 충분히 두려워했으니까.
당일에는 더이상 정리할 것도, 외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미 질릴만큼 다 하고 그 자리에 있는 거니까.
밑바닥을 찍고 나면 위로 올라갈 길밖에 없다는 말을 여기에다가 써야 하는 건지.
계속 기록을 하다보면, 과거의 기록, 족적을 쫓아가다보면 내가 제법 성장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아직 멀었지만. (아직 난 젊으니까 조금씩만 매일 성장해도 100살 노인즈음에는 현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계속 노력하다보면 분명 과거의 기록에 따라.
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좀더 나은 사람이 미래에 되어있을 거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내 감정을 노트에 적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럼 앞으로의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적다보면 조금씩 내 미래가 보인다.
내가 계속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기록대로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꿈은 이루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