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해는 가지만, 공감은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
약 5년 전에, 카페 알바를 하다가 크게 발목을 다쳤던 나는 1년 반 정도 일을 쉬어주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관심도 늘게 되었고 덕분에 나름 요리 인스타 준
인플루언서 정도로 클 수 있어서 간식비라도 벌 수 있었지만.
당시 나는 앉아서 하는 일이라도 구해서 생활비라도 벌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을 완전히 쉴 수 있었던건 아니었다. 다만, 다친 상황에서 몸을 계속 움직이는 일을 했었다 보니 몸 상태가 악화되었고, 서빙이라던지 서 있는 것 외에 다른 일들을 찾아봐야만 했다.
그렇게 하게 된 일이 건강기능식품 회사에서의 마케팅 일이었다.
처음 알바 면접을 갔을 때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당시 사장님과 실장님 두 분이 면접을 보고 계시는 상황이었고, 사장님은 눈빛이 특히 강렬한 분이셨다.
그때의 면접질문.
자네,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네?
돈이란 말이야 덕이야. ‘돈’이란 단어 철자를 잘 조합해 보면 덕이 나오지. 이 돈이라는 게 바로 신이야.
네..?
끊임없이 본인의 의지를 내게 관철시키려 하셨던 사장님.
하하.
사장님,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돈이라는 것 자체가 근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의 수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쓰임받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내 할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울그락불그락 했던 사장님의 얼굴.
그리고 그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그딴 식으로 생각하냐면서 그러니까 너가 흙수저라고 하면서.
평생 흙수저로 살고 싶냐면서 정신차리라고 하면서 화를 냈던 무례한 70대 사장님.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을 거면 너와 일할 수 없다고 말했던 사장님에게, 사람마다 다 가치관이 다른 것이고, 저도 사장님 같은 분과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인사드린 다음에 나오려던 참이었다.
내 말을 듣고는 너무 화가 났는지 자기의 분에 못 이겨 문을 박차고 나간 사장님과 평화로운 미소를 뛰며 모든 것을 보고 계셨던 실장님.
이 모든 게 실제 상황이었다.
실장님께서는 문쪽을 흘끗 보고는 그래도 일을 같이 해 보고 싶은데 마케팅 쪽으로 어떤 업무를 할 수 있냐고 차분히 물어왔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들어온 사장님. 그러더니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내게 물어왔다.
당돌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그래서 내가 거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그곳에서 나는 약 1년 반 정도 일을 하면서 세상에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충격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사장님의 아버지셨던 회장님은, 신문에도 자주 나왔던 ‘동방의 예언자’이자 ‘서예가‘셨고, 사장님은 모 교단에 교주셨던 사람이었다. 거기에다가 대표님도 따로 계셨는데 40대 꽃다운 나이의 여성이었던 대표님은 사장님의 연인이었다.
나는 서예가이신 회장님의 갤러리 한쪽에서 일을 했었고, 일반 직원들과는 분리된 상황에서 보통 대표님과 실장님과 소통을 하며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사장님의 제자들에게 커피를 내려드리기도 하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직원들은 몰랐던 것 같다. 나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모른 척 했고.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꽤 재밌게 일을 했었다. 사장님이 까다롭게 굴 거라고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나는 실장님과 일을 했고, 실장님께서는 내 입장을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셨다.
아 물론. 한 3개월 정도는 진짜 힘들었다. 어찌나 꼬투리를 잡던지.
근데 내 알바 지론이 하나 있는데, 아무리 더럽고 치사 해도 3개월은 버텨야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고 나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뭔가 단 하나라도 배워야 되지 않겠는가.
이왕 시작한 거,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그곳에 있는 모든 건강기능식품들을 직원가로 저렴하게 구매를 해서 먹어보고 블로그, 유튜브, 스마트스토어, 카페 할 것 없이 전부 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쳐 나갔다.
물건들은 제법 좋은 물건들이 많았고,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물건 하나하나 장점을 파악해서 홍보해나가는 것이 내게 꽤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다른 회사의 광고 프리랜서로도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광고 회사를 차려서 이렇게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다.
직원이었을 때와 사장일 때 느낌이 또 다르다. 책임감도 그렇고.
당시 사장님과 대표님, 실장님 모두다 판매하는 건강기능식품 외에도 다른 부수입으로 다단계도 하고 있었는데 내게 계속 그 다단계를 권유하셨던 기억이 난다.
정중하게 거절을 몇 번 하다가.
정말 죄송한데 저 진짜 돈이 한푼도 없어서 그런 거 할 여유가 안 돼요. 저 흙수저예요 사장님. 이라고 말하니 그 다음부터는 아예 권유도 안하셨지만.
그때 봤던 것들이 내가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여러 기준들을 세우는 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돈은 힘들게 벌어야 그 돈에 무게감이 생기고, 내 곁을 떠나지 않으며, 나와의 연대감 또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실하게 모든 일에 임하고, 내가 팔고자 하는 서비스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면 그 일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일이 된다.
27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동안 내가 느꼈던.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