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선은 아무도 몰랐다. 나도.

(feat. 변화는 늘 아주 작은 데서 시작된다.)

by 화개 지화

변화는 늘 아주 작은 데서 시작된다.


왕따, 폭력, 그리고 전학.


초등학교 2학년, 여린 순 같았던 나에게 1년동안 많은 일들이.

너무 한꺼번에 일어났다.


도망치듯 떠나온 새로운 학교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어색한 표정과 더듬거리는 말투.


컬러가 가득한 세상 가운데에 나만 흑백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큰 소리로 웃지도, 먼저 말을 걸지도 못했다.


쉬는 시간에는 항상 책상 모서리나 창틀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누가 나를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아이였다.


누군가 시선만 스쳐도 온몸이 얼어붙던 대인공포증의 시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대로 ‘선거’ 날만 되면 내 가슴은 뛰었다.


2학년 1학기 반장선거부터 4학년 1학기 부반장·회장·부회장까지, 나는 매 선거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후보로 섰다.


물론, 결과는 매번 같았다.


득표수: 1표

친구들은 투표를 마친 뒤 귓속말로 “쟤 또 나왔대”, “왜 계속 나와?”하고 속삭이곤 했다.


그 말이 다 들렸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는데 묘하게 설레이는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자리잡았달까.


그때 그 마음은 '용기'였을까. '오기'였을까. '객기'였을까.


확실한 건,


언젠가 누군가 한 명은, 나를 믿어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그 작은 바람 하나가 나를 계속 앞으로 밀었는지도 모르겠다.


.

.

.


4학년 2학기, 처음으로 스타일을 바꾸던 날

4학년 2학기 초, 나는 스타일에 작은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엄마 손을 잡고 미용실에 가서 생전 처음으로 앞머리를 잘랐고, 평소에는 절대 시도하지 않던 밝은색 가디건을 골랐다.


학교 가기 전 거울을 보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는 조금만 더 환하게, 조금만 더 크게 웃어보자.


그날 아침 교실에 들어섰을 때, 세상의 공기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한 번 더 보았다.


누구도 놀라거나 웃지 않았다.


그저 “어? 오늘 예쁘네”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었을 뿐인데, 나는 그 짧은 문장에 온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반 부회장 선거에 나서다.


후보 등록 날, 나는 또다시 손을 들었다.


“저… 부회장 선거 나가겠습니다.”


예전 같으면 손끝이 떨리고 목소리가 바늘처럼 끊겼을 텐데, 그날의 나는 조금 달랐다.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친구도 있었다.


선거 당일, 연단 위에 선 나는 몇 번이나 연습했던 말들을 다 잊어버렸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용기가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나왔습니다.
그 용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말이 끝나고 교실에는 아주 짧지만 선명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박수.


처음 듣는, 나를 향한 박수였다.


그리고, 일어난 일


기표함이 열리고, 선생님이 천천히 득표수를 읽어 내려갔다.


첫 번째 내 이름이 불렸을 때만 해도, 나는 또 ‘그 1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내 이름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심장이 귀에서 울리는 것처럼 쿵쿵 뛰었다.


결과는,
당선. 부회장.


순간 교실이 환하게 웃음으로 흘렀다.


친구 몇 명이 내 책상으로 달려와 “축하해!”하고 손을 잡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 하교길의 골목이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아마 나의 시선이 바뀐 것일 것이다.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완벽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용기’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라는 씨앗 같다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에도 자라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만개한 꽃처럼 드러낸다는 것.


나는 여전히 완벽한 어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 단 한 표밖에 없던 나에게 처음으로 손을 흔들어 준 아이들처럼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작은 용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 02화작지만, 분명히 내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