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감정을 기록하는 일이 어떻게 힘이 되는가)
어린 나는 말을 잘 못 했다.
말보다 먼저 떨리는 손, 울컥하는 목소리,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귀 뒤로 숨기던 작은 메모지 한 장.
그 종이 위에는 늘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괜찮다. 조금씩만, 아주 조금씩만 해보자.”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쓴 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너무 시끄러워서, 적지 않으면 잠들 수 없던 날들이 많았다.
어린아이에게도 감정은 넘쳤고, 그걸 감당하기엔 마음의 그릇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는 썼다.
말은 막혀도, 글은 흘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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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는 늘 조용했고,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불안이 앞섰고,
손을 들기 전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서 말보다 글이 빨랐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작은 종이에 적어
책상 서랍 깊숙이 밀어넣곤 했다.
그 노트 속에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가장 어두운 구석들이 숨어 있었다.
“오늘도 실패했다.”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말하려고 했는데 목이 잠겼다.”
상처는 늘 나보다 먼저 도착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글로 그것들을 겨우 붙잡곤 했다.
그렇게 나는 ‘상처를 기록하는 아이’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노트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켰다.
그 선생님이 내 노트를 발견하던 순간
4학년 겨울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책상 위에 두고 간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한 장, 또 한 장.
구겨진 종이 사이로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드러났다.
나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약함이 들킨 듯한 부끄러움.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
그리고 “이제 난 끝났구나”라는 생각까지.
그런데 선생님은 노트를 덮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잘 쓴다고?
이 구깃구깃한 상처들을?
한 글자도 내뱉지 못한 마음 조각들을?
하지만 선생님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나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보는 눈이었다.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준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글은 더 이상 숨기는 곳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내 글은 달라졌다.
예전처럼 슬픔만 적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문장도 섞였다.
“오늘은 조금 괜찮았다.”
“선생님이 내 글 좋대.”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여전히 말은 서툴렀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누구 앞에서도 숨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글은 상처를 붙잡는 도구에서
상처를 이해하는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조금씩 나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선생님이 내게 남긴 건 칭찬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 선생님은 단지 나에게 칭찬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슬픔과 두려움, 작고 흔들리는 마음들을
‘문장’이라는 형태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 인정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상처를 숨어서 적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단 한 번이라도
너의 마음을 보고, 듣고, 이해해 주는 순간—
그건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나에게는 그게 글이었고,
그 시작이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선생님… 저는 말로 잘 못 해요.”
그러면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넨다.
“말하기 어려우면 써도 돼.
글은 마음을 숨기는 게 아니라
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법이야.”
.
.
.
나는 오래전의 나에게도 속삭인다.
“괜찮아.
누군가 너를 보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쓴 글들은
잘 자라서 결국 지금의 너를 만들었어.”
상처를 이야기로 바꾸는 힘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인정은
상처를 지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상처에 ‘이야기’를 붙여준다.
이야기가 생기면
사람은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말할 힘이 생기고,
다시 시도해 볼 용기가 생긴다.
어린 나는 몰랐지만
내 글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구해주는 글을 쓴다.
그게
나를 처음 인정해 준 그 선생님에게
오랫동안 보내고 있는
가장 조용한 감사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