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르쳐준 회복의 언어

(feat. 상처를 알아보는 눈)

by 화개 지화
나는 늘 묻곤 했다.


왜 이렇게 아이들은 나에게 상처의 흔적을 보여줄까.


평창동 작은 교실,


불 꺼진 새벽이면 그 질문이 내 심장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남기고 간 연필 조각, 구겨진 메모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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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작은 흔적들 속에

비명을 참아낸 마음의 표정을 읽곤 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너무 오래 아팠기 때문일 거다.


걷지 못하던 1년 반의 시간,

침 하나하나에 매달리던 그 절박함 속에서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예민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처는 소음을 남기지 않는다


어른들은 종종 말한다.


상처 받은 아이들은 티가 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안다.

상처는 울음을 멈추는 순간,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아주 미세한 신호를 보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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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늘 잊어버리던 아이,

수업 중 눈을 맞추지 않던 아이,

조용히 뒤에서 지우개 가루를 긁어모으던 아이.


그 아이들은 모두

“공부가 싫어요”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학습 부진보다

표정의 떨림을 먼저 봤다.


성적보다 손끝의 불안을 먼저 들었다.


관계가 먼저다.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늘 관계의 문제였다.


어느 날, 지우개를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뛰쳐나간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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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사들은 행동지도를 강조했지만

나는 아이 뒤를 바로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문 앞에 서서

그 아이가 돌아올 자리를 비워두었다.


십 분쯤 지나 아이는 돌아왔다.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앉아

조용히 연필을 쥐었다.


그날, 아이는 문제 한 문제를 스스로 풀었다.


정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 있었다는 사실,

머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미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를 치료했다.


아이들에게 내가 해준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 아이들이 나를 치유했다.


아이들은

“있어주는 것”의 힘을 알려주었다.


말 없는 존재의 무게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이야기 한 줄, 시선 하나,

연필을 쥔 손의 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균열을 메우곤 했다.


나는 그 작은 교실에서 깨달았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내면의 구조를 함께 복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회복의 언어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을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


증상만 고쳐서는

병이 낫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안다.


아이들의 학습 부진 또한

지식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없는 상처의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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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의 상처를 미리 감지하고

몸과 마음, 서사와 학습이 함께 회복되는 교육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는 이유다.


치유는 곧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로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마지막 질문


나는 아직도 묻는다.


왜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상처는 상처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알아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살린다.


평창동 작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회복의 언어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울림

또 다른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