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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Mar 24. 2023

네가 해봐 그럼

hwain 단편선 (1)

 눈이 뜨였다.


 밖은 어둡고 밝다. 동트기 직전의 새벽인지, 노을 진 초저녁인지 모르겠다. 이곳은 어디일까. 알고 싶지 않지만 이미 알고 있었고, 낯설지만 익숙했다. 나는 분명 어디선가 이곳을 본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잔 것 같다. 잠들기 직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더 이상 졸음이 피어오르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다. 오래 잤음에도 허기지지 않았다.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간절한 목소리다. 부모, 형제, 친척, 지인의 안녕을 비는 목소리, 전쟁과 재해를 멈춰달라는 애원, 즐거운 노랫소리,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부터 동물들의 잡음까지 귀를 스친다. 소리들은 귀에 박히지 않고 스친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도 들린다.

 “살려주세요.”, “어디 계신가요.”, “제발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그러나 난 그들을 도울 수 없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알 수 없었고, 닿을 수 있었지만 또 닿을 수가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뿐.


 산사람들의 소리 틈으로 망자들의 삐걱이는 뼈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그들이 내게 닿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무엇이든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 형체가 없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끊이질 않는 소음은 나를 소극적으로 괴롭힌다. 딱 듣기 거북하지 않을 수준의 음량이다. 조금씩 귀찮고 때때로 하찮다. 하지만 나는 귀를 닫을 수 없다. 열린 귀로 들어온 단어들은 문장으로 합쳐지고 문장은 다시 단어로 분해된다.


 “어때?” 이 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이 선명하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지만 아무도 없다.


 “누구.. 세요?”


 모르겠다. 이자의 목소리는 모르겠다. 아니, 알 길이 없다. 아마 태초의 소리일 거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자네가 되고 싶었던 거.”


 “제가요?”


 “신이 되어보니 어떠한가? “


 ”내가 신이라고? “


 ”신이 돼보고 싶다, 내가 너보단 잘할 자신 있다, 그렇게 말했었지.”


 “그럼 당신은..”


 “어떤가? 내가 되어본 소감이. “


 ”어.. “


 ”그대의 기대에 부합하는가? “


 “음.. 왜 당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까? “


 ”... “


 ”왜 당신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고, 강력하면서 돕지 않습니까? “


 ”... “


 ”왜 이 수많은 소리를 듣고만 계십니까? “


 ”내 존재가 어땠으면 좋겠나 “


 ”모두의 염원을 이뤄주고, 모든 이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그대들이 정녕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


 ”음.. 평화? “


 ”다른 것은? “


 ”행복? “


 “또 다른 건?”


 “사랑?”


 “정말 그뿐인가?”


 “인간들은 너무 약합니다.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 주시면 안 될까요?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음에도 왜 사용하지 않는 겁니까?”


 “그래서 자네는 뭘 했지? 내가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을 도왔나?”


 “저는...”


 “자네가 말한 평화와 행복, 사랑은 이미 인간들에게 있다네. 난 한시도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거나, 주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


 “그런데 왜 저들은 평화롭지 않습니까. 왜 행복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나요.”


 “...”


 그는 대답 없이 사라졌다. 대화가 끝나고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그 소음에 집중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소음들이 각각의 소리로 나뉘었다.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를 죽여주세요.”


 “그 여자가 망했으면 좋겠어요. 그 여자가 병에 걸리게 해 주세요. 제발 교통사고라도 나게 해 주세요.”


 “신이 있다면 세상이 망하게 해 주세요. 제발요. “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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