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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Apr 24. 2023

투 헌드레드

hwain 단편선 (12)

-오, 그러니까 따져보면 인간은 100년이 아니라 200년을 사는 거네요.


-그런 거지. 그것도 정확하게 200년이야. 200년에서부터 차감하는 개념이니까.


-전생이든 현생이든 다음생이든 어쨌든 다 더해서 200년을 채우면 영혼이 소멸된다는 거죠?


-정확해. 바로 그거야.


-왜 이런 시스템이 생긴 거예요?


-그거야 나도 대충 들어서 모르겠는데, 설비가 노후해서 100년 단위로 만들고 지우는 것보다 하나를 돌려서 오래 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


-저승에서도 가성비가 중요하구나.


-사람 있는 곳이 다 그렇지, 뭐. 그럼 너는 얼마나 남은 거야? 어려 보이는데.


-가만 보자.. 죽을 땐 스물둘이었으니까 첫 인생이면 178년 남은 거고.. 이따가 한 번 자세히 봐야겠네요.


-호오.. 어떻게 죽었어?


-기차에 몸을 던졌어요.(멋쩍은 듯 웃는다.)


-(놀라는 표정으로) 자살이네 그러면?


-그렇죠. 줄 서서 다른 사람들 보니까 늙어 죽는 게 제일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살아갈 생각 하니까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러게. 나도 내가 막내일 줄 알았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녀석도 올 줄은 몰랐네. 이렇게 보니까 여기선 젊은 게 손해네.(피식 웃는다.)


-알았으면 안 죽었죠. 아닌가? 그땐 너무 살고 싶지 않아서..(웃음)


-하긴. 살고 있을 땐 알 수가 없지. 선택은 못하겠지만 다음 생엔 뭐로 태어나고 싶어?


-음.. 평범한 사람으로? 죽는 건 선택할 수 있는데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그러네. (숙연해진다.)


-아참, 아저씨는 어쩌다 여기 왔어요?


-나도 비슷해. 근데 스케일은 너처럼 크진 않아.


-소박한 죽음이었어요?


-하하하 소박이라. (박장대소한다.) 그래, 연탄불이면 꽤 소박하지.


-이유도 물어봐도 돼요?


-(단호하게) 그건 안 돼.


-아, 네.. 죄송해요.


-장난이고, 일이 너무 많이 꼬였어. 가족들 볼 낯도 없고 그랬어. 지금 설명하기엔 너무 길다.


-더 듣고 싶은데 이제 우리 차례네요. 아쉬워요.


-오, 그러게. 이제 네 차례다.


-먼저 갈게요, 아저씨! 다음 생엔 행복하세요! 일도 술술 잘 풀리시고요.


-그래! 자식, 넉살 참 좋네. 너도 다음 생엔 꼭 평범해라!




--최준혁 씨 맞죠?


-아, 네네. 이제 다음 생인가요?


--죄송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인생이셨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사라지실 거예요.


-사라지는 건 어떤 거예요?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물처럼 흐르기도 하고,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는 거예요.


-좋은 건가요?


--글쎄요. 사람마다 달라서요. 기록을 보니까 전생도 자살로 마치셨었네요.


-아 그래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20대 때마다 계속 자살하셨어요. 총 여덟 번을 다시 살아오셨네요. 이런 분들은 차라리 사라지는 걸 선호하시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그럼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이라도?


-그래도 다시 살아볼 방법은 없을까요? 똑같이 20년이어도 좋아요. 제발 한 번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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