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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퐈느님 May 22. 2016

[Ecuador] 불안이 감사로 바뀌는 친절의 매력

적도의 나라, Muchas Gracias!

에콰도르는 치안이 안좋기로는 중남미에서 꽤 유명한 나라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게 '불안정한 치안' 은 정말 그 나라를 가는 것을 고민할 정도의 불안 요소다. 

하지만 어찌하리오. 갈라파고스 섬은 에콰도르에 위치한 것을! 남미 여행에서 꽤나 기대했던 곳이 갈라파고스 섬이기에 쿠바에서 비행기를 3번이나 타고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Quito)에 도착했다.

키토는 해발 2850m 에 위치한 곳으로, 일단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안데스 산맥의 시작이었다. 이제 남미로구나!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굽이굽이 한참을 내려간다.

가기 전부터 남미 관련 커뮤니티에서 키토와 과야킬의 흉흉한 이야기를 하도 읽었던 지라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공항에 내렸다. 

쿠바에서부터 나의 배낭은 정말 말 그대로 무장한 상태였다. 

언제나 그 나라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낯설음이 있다. 낯설음은 여행이 주는 일종의 혜택이 아닐까.

하지만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과 치안이 좋지 않은 상황은 혼자 큰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쫄보' 성향의 나에게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전부 경계하게 되고 가방이 무거워도 괜히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키토의 낯설음 속에서 나는 빛과 소금같은 친절을 만났었다.


눈빛으로 말해요

혼자 타는 택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택시강도 이야기 덕에 도저히 이용하지 못하겠더라. 결국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나의 선택은 버스.

영어로 말은 못하더라도 알아듣는 공항 직원들 덕분에 시내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목적지 올드타운까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

공항버스에서 내려서 어떤 버스를 얼마에, 어디서 타야하는지 멘붕인 상태로 주변을 맴돌며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로 'Dónde está bus a plaza de San Blas?'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산블라스 광장에 가는 버스는 어디에 있나요? 라는 질문이었다.)라는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지만 내가 배웠던 에스파뇰을 착해보이는 여자들을 위주로 물었지만 다들 기다리던 버스가 왔는지 뛰어가기 바빴다. 

그때 버스 터미널 앞의 노점상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어떤 숫자를 계속 말씀하셨다. 일단 나의 질문이 위치를 묻는 것이었기에 방향을 가리켜주신 것은 알았지만, 숫자는 뭐지..?

바로 버스 요금이었다. 내가 버스 터미널까지 들어가는걸 바로 뒤에까지 오셔서 봐주시는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Muchas Gracias!

오전의 시내 버스 정류장. 우리네 지하철처럼 개찰구가 있어 표를 끊고 들어간다.


만원 버스에서 내어지는 손길

커다란 배낭을 메고 만원 시내 버스를 타는 것은 정말 눈길을 끌거다. 게다가 그 만원 시내버스에서 동양인은 나 하나 밖에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를 타지 못해 앞서 보냈던 버스 2대에서도 동양인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만원버스에서 나의 아이폰을 꺼내는 것은 '소매치기야 내 폰을 가져가' 라고 생각했던지라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타면서부터 운전석근처에 있었지만 운전기사는 나의 질문, 산블라스 광장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나의 질문에 굉장히 빠른 에스파뇰로 대답해주었다. 

목적지를 두번이나 물어봤으니 목적지에 오면 알려주겠지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감으로 변하였다. 

목적지를 물으러 인파를 헤치고 나가는데, 한 아저씨가 산블라스 광장은 30분 정도 더 가야한다고 영어로 친절히 말씀해주시는 것 아닌가! 게다가 앉아있는 자신의 아들을 일으켜세워 자리까지 앉으라고 하신다.

아, 이렇게 감사할데가! 게다가 목적지에 다가오니 친절히 일러주시고 내리는데 산블라스 광장의 방향도 일러주신다. 만원 버스를 이렇게 무사히 타고 오다니! Muchas Gracias!


배낭여행자의 행복은 다른게 아니었다.

산블라스 광장은 내가 미리 봐둔 호스텔이 있던 곳이었다. 체크인 시간도 안된 시간에 문을 두드렸더니 자다 일어난듯한 주인장이 맞이하여 주었다. 예약을 하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미토리 방이 없다는 것. 청천벽력 같았다. 

한숨을 푹 쉬고 배낭을 다시 메려는 나에게 주인이 싱글룸을 권했다. 도미토리 가격에!

나 횡재한거 맞지? 

이 숙소는 나의 아메리카 대륙 나들이에서 좋았던 숙소 세 손가락 안에 꼽혔던 숙소가 되었다. 도미토리에서 지내다 혼자 쓰는 방이라니! 눈치보지 않고 음악 켜놓고 샤워도 하고, 넓디 넓은 침대에 가로로 누워도 보고, 심지어 텔레비전을 켜놓고 맥주 한캔 마시다 잠들었다!!! 아,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구나. 혼자 쓰는 방, 그거 하나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Muchas Gracias!

완벽했던 나의 숙소에서 보는 키토 올드타운의 해질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시간 즈음부터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만나는 모든 현지인이 내게 일러주었다.
내가 묵었던 호스텔의 외관. 미니어쳐가 붙어있어 귀여워 사진을 찍게 되었다.


완벽한 나의 방에 하나의 단점, wifi가 안터진다는 점 때문에 와이파이를 하러 나갔다 한국인 아주머니 두분을 만났다. 우리 엄마 또래이신 그녀들은 한국 사람들이 별로 안다니는 숙소를 골라 여행을 하는데 한국인을 오랫만에 만나 반갑다 하셨다. 1~2년에 한두번씩 해외여행을 다니신다는데 히말라야 트래킹도, 유럽도 미국도 자동차로 여행을 해보시는 등 여행 고수의 포스가 느껴졌다. 맥주 한캔과 과일이 추가되니 이야기는 점점 더 깊어져갔다.

집에 계신 우리 엄마는 해외여행 처음 가보신게 불과 3년 전인데.. 여행 중 만난 부모님뻘 어른들을 볼때면 울 엄마 생각이 난다. 나 혼자 너무 좋은걸 보고 다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들이 그렇게 매년 여행을 다니는 것도 부러웠지만 (심지어 영어도 정말 잘하셨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시는 것도 대단하다 느껴졌다. 경제력도, 체력도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반짝이는 그 눈빛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자 그것이 제일 부러웠다.

나도 그녀들처럼 나이들 수 있을까? 

한국에서 만났더라면 이야기 한번 나누지 않았을 사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에콰도르, Muchas Gracias!


이 동네, 정말 위험한 것 같아. 

적도의 나라 키토의 관광지 중 하나로는 바로 적도 박물관이 있다. 

적도박물관은 그들의 이름으로는 Mitad del Mundo (Middle of World) 로 내가 머물렀던 올드타운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해있었다. 버스에서는 누구 하나에게라도 목적지를 묻는다면 앞다투어 나에게 안내를 해주려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어디서 내려야하는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적도 박물관을 실컷 구경하고 나오는데 익숙한 외침이 들렸다. '저기요! 한국분이세요?' 

그렇게 만나게 영롱(한국), 켄토와 이오리(일본). 얼굴부터 귀여운 이들 셋은 모두 각자 세계여행 중인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적도박물관을 관광하러 왔다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과 키토에서의 하루를 함께 하고 저녁 7시 전에 숙소에 돌아가는데(치안 때문에 저녁 7시 이후 숙소 밖을 나가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한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이 숙소인 켄토와 이오리가 올드타운이 위험하기 때문에 나를 데려다준다고.

켄토, 이오리와 함께.

(그들의 외모는 중학생 같아 보였고 실제 나이도 거의 10살 가까이 어렸지만) 20대 남자 둘이 양옆에서 호위해준다니 괜히 마음이 더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숙소 앞을 지나가며 이오리가 말했다. 

'여기 정말 위험해보인다. 나는 남자 열명이랑 와도 무서울 것 같아'

무심코 종종거리며 혼자 돌아다녔던 숙소 근처. 올드타운이 강도사건이 더 많은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오리의 말에 새삼 숙소 근처를 경계하게 되었다. 둘의 에스코트가 정말 숙소 대문 앞까지 였기에, 나는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냥하고 친절한 여행자들을 만나다니! Muchas Gracias!


페루로 간다고? 나 페루돈 있어, 다 줄게!

키토에서 갈라파고스로 가는 날, 호스텔 주인장에게 공항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같은 시간대에 택시를 예약해 둔 부부가 있으니 같이 쉐어해보는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만난 부부는 일본과 인도에서 각각 영국으로 일하러 왔다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둘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 중이라고 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의 부인과 나는 공교롭게도 같은 같은 해의 나이키 마라톤 티셔츠를 각자 겉옷 안에 입고 있었다. 나는 We run Seoul, 그녀는 We run London. 이런데서 동질감을 느끼게 될줄이야. 고맙다 나이키 마라톤!

그렇게 아침 조식부터 공항에 오기까지 서로의 삶과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에콰도르 다음에 페루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부는 나에게 그들의 지갑 속에 남아있던 페루돈을 모두 꺼내주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었지만(한화로 대략 만원 이하) 배낭여행자에게는 단돈 몇백원이 큰 돈이 될터. 같은 배낭여행처지에 처음 만난 나에게 남은 돈을 다 주다니! 그만큼의 택시비라도 더 주겠다는 나에게 본인들은 내가 없었더라도 택시를 탔을테니 이미 고마워하고 있다고 밝게 웃는 그들의 여행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어줬다. Muchas Gracias!


여행을 다니다보면 만나는 작은 친절은 낯설음과 불안감 속에 내려가는 한줄기 단비같다. 도움을 받을 때면, 나도 다짐하곤 한다. 

'내가 집에 돌아가서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 외국인을 본다면 먼저 도움을 건네야지' 라고.

물론 해외여행 갔다 돌아올때마다 영어 공부를 더 하겠노라 다짐하는 것 만큼 항상 그 다짐은 실행에 쉬이 옮겨지지가 않았지만.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키토는 치안은 좋지 않다 알려졌고 나 또한 굉장히 긴장했을지언정 나에겐 그 무엇보다 친절했던 도시였다. 얼마 전 에콰도르의 지진 소식을 듣고는 정말 너무나 안타까웠다. 

오늘 또 한번 햇살 뜨거웠던 적도의 에콰도르가 빨리 복구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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