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꺾인 꽃일까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꽃일까
길가에 핀 꽃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 작은 식탁 위 작은 화병에 꽂아 두고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었다.
손을 뻗어 얇은 가지를 꺾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부러졌다.
화병 속 꽃은 단정하고, 수수하게 빛났다.
그걸 바라보며 나는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뿌리 없는 꽃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시들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면 며칠은 더 피어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욕심이었다.
그 자리에 있어야 제 가치를 다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꺾었고, 그 꽃은 그 가치를 다하지도 못한채 시들었다.
문득 떠올랐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삶을, 혹은 내 삶을 그렇게 꺾은 적이 있었을까.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채 부러뜨려버린,
그 꽃들 역시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쉽게 꺾일 줄은,
다른 꽃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피어 있는 동안,
자신만 볼품없이 시들어버릴 줄은.
혹시 꺾여버린 꽃이 지금의 나는 아닐까.
조금만 더 버텼다면, 조금만 더 고집을 부려봤다면 꺾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꺾인 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든 꽃에 생명을 되돌려줄 수도 없었다.
“뿌리가 있었다면, 며칠은 더 살았을 텐데.”
나는 죄 없는 꽃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삶도 어쩌면 그랬을까.
단단히 뿌리내렸다고 믿었는데
수수하지만 견고하게 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 힘없이 꺾여버린 그런 삶.
나는 그 꽃들에게 미안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생명 앞에서조차 미안함을 느끼는데
내 삶을 꺾어버린 그 사람은 전혀 미안함이 없었다.
그래.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
시들어 있어도 괜찮다.
화병 속 꽃은 그리하여 생의 끝에 도달했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러니 다시 작은 뿌리를 내려야 한다.
다시 피어나기 위해.
산통처럼 고통스럽지만
나는 언젠가 피어날 그 수수한 꽃을 기다리며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내 삶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예의이자 경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