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의 아주 느린 영어 학습기

계속하니 늘긴 늘더라

by 이확위

나는 나이가 어리지 않아서, 나 때는 정규 영어교육이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아는 사람들 몇몇을 모아 원어민 강사와 잠깐 영어 수업을 하게 시켰던 게 "영어 교육"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낯을 가리는 아이라서, 그때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크게 무언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어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영문에 자막이 있는 것으로 보여주시거나, 아니면 영어로만 된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할리우드 영화들을 좋아하셔서 할리우드 영화들을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런 후, 별다른 영어 교육은 없이 중학교에 들어갔고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거쳐갔다. 영화들을 많이 봐서인지, 그럭저럭 듣기나 여러 가지 영어에 큰 어려움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언어를 하는 고등학교에 가서 영어수업이 많았다. 크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기 시작했다. 나의 영어 듣기 비법은 아마 수많은 미국 드라마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처음 봤던 토익에서는 850점 정도가 나왔던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문법이나 단어에서 많이 약했다. 영어점수가 필요할 때였는데, 토플학원을 한 달 등록했다. 등록했지만 약 2주 정도만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난 초기 스터디그룹의 단어 암기 에이스였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말하기와 쓰기가 리딩/리스닝에 비해 크게 약했다. 워낙 소극적이었던 성격 탓인지 영어를 능동적으로 하지 않아서인지 영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스피킹과 라이팅 때문에 토플이 싫었다.


그다음에는 텝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먼저 텝스를 한 번 보고 내 수준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시험을 접수했다. 시험 보기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숙취가 있는 채로 시험장에 갔다. 그냥 멍한 상태로 최대한 집중해서 풀었다. 800점이 나왔다.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았다. 제대로 공부하면 텝스는 금방 해치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 공부 없이 본 텝스는 730점이 나왔다. 그래서 정말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해 XX 인터넷 강의로 텝스 문제풀이 강의를 들었다. 노랑이 단어책을 900 단어까지 열심히 외웠다. 단어책을 5번은 봤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하며 텝스 850점을 받았고, 토익은 그냥 시험만 접수하고 보니 920점 정도가 나와서 다시 보지 않았다. 이때의 점수를 가지고 대학원 입학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후에는 딱히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처음 대학원에 간 후, 3달쯤 지났을 때인가 교수님이 작은 연합세미나에서 영어로 연구 중인 내용 발표를 시키셨다. 처음 영어로 발표하는 거라, 일단 대본을 쓰고 달달 외웠다. 그러고 그냥 멍한 채로 무대로 나가 외운 내용으로 발표를 마쳤다. 나쁘지 않게 발표를 마쳤다. 내 생각보다 발표 때 나는 크게 떨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대학원 기간 동안 몇 번 영어로 발표를 하기도 하고, 학회에 가서 영어로 질의응답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거의 대본을 미리 작성해서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대학원 기간 동안 영어가 늘게 된 것은 논문을 작성하면서 였던 것 같다. 거의 매일 영어로 된 논문을 읽으니 인풋은 있지만, 아웃풋이 없던 시기였다. 논문을 쓰면서 영작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논문을 학술지에 낸 후, 계속해서 거절당하면서 썼던 논문을 계속 수정하고, 뒤집어엎고, 다시 쓰고를 8번가량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영어 쓰기가 전보다 수월해졌다. 영작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해서 쓰다 보니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어 말하기는 여전히 문제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전화영어였다. 민 XX 전화영어를 신청해서 15분 정도씩 전화영어를 했다. 크게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했다. 민 XX 전화영어에서는 영작을 하고 첨삭해주는 기능도 있었기에 영작도 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해외로 박사 후 연구원을 나가기로 결정하고 이력서들을 내고 인터뷰가 잡힐 때를 대비하여 전화영어를 매일 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렇게 꾸준히 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할 때는 2주 내내 하기도 했다. 나는 바짝 쪼이고 다시 풀어지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인터뷰들도 무사히 마치고, 오퍼를 수락하고 해외로 나가는 게 결정되었다. 출국하기 2달 전쯤부터는 화상영어를 시작해보았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번 정도로 화상영어를 하였다. 처음에는 화상영어가 연결되기 직전에 항상 긴장이 되었다. 어떤 날은 영어가 잘 되고, 어떤 날은 머릿속에서 영단어들이 맴돌기만 하는 날이 있었다. 두 달쯤 하니 긴장감은 줄어들었다. 영어가 특별히 늘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전보다 덜 불안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그런 후, 해외에 나와서 연구실에서 일상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남들과 대화할 일이 없어서 영어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내 예상보다 이곳에 온 후 힘든 것은 듣기였다. 다양한 억양의 영어를 많이 들어보지 못해 다른 이들의 말을 알아듣는 게 내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금까지 듣기가 힘들었던 적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충격이었다.


영어를 엄청나게 집중해서 열심히 했던 적은 없지만, 뭔가를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왔다. 영어는 느리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니 늘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영어 발표를 할 일이 있을 때는 더 이상 대본을 적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을 해보는 정도이다. 생각하는 내용을 영어로 표현할 수는 있다. 다만 영어를 책으로 주로 배워서인지, 스몰 톡이나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법이 아직 미숙하다. 흔히들 언어는 계단식으로 는다고 한다. 아마도 현재 나는 또 다른 계단을 오르기 전의 상태인 것 같다. 한 계단 오르기 위해, 다시 한번 노력을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