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 초대와 와인 5병
부활절 시즌이었다. 이곳에서 나를 잘 챙겨주던 한 친구가 부활절 런치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부활절 연휴 이틀 전쯤 오피스로 나를 찾아와서 물어보았다. 요리에 와인을 준비할 건데 어떤 와인을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와인을 잘 몰라서 많이 마셔보질 않았고, 이곳에 오니 와인이 너무 많아 뭘 마셔야 할지 몰라서 잘 안 마시고 있던 나였다. 그래서 답했다. "난 와인을 잘 몰라. 와인에 대해 아는 건, red, white, dry, sweet 이게 다야."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와인을 너무 사랑하는 이 친구는 와인을 모른다고 답하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해 본 모양이었다. 유럽에서 자라서인지 아무래도 와인을 일찍부터 접하고 다들 와인을 즐기기에 나 같은 답은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이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와인 여러 종류 준비할 테니 한번 마셔봐."
그렇게 부활절 런치에 초대받은 날이 되었다. 그 전날 근처 예쁜 도시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서 쿠키 종류를 좀 사 왔기에 그걸 선물로 들고 찾아갔다. 이 친구와 그의 와이프가 친절히 반겨주었다. 테이블은 모두 세팅이 되어 있었고, 부활절 달걀도 예쁘게 물들여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먼저 식전주로 스파클링 와인 한 종류를 내다 줬다. 마셨다. 잘 모르는 나는 그저 탄산과 스위트함을 느낄 뿐이다. 맛있게 마셔준다. 오늘 요리는 세 가지 준비했고, 요리마다 와인이 하나씩 나올 거라고 했다. 그런 후, 디저트가 있으니 먹고 그 이후에는 맘에 들었던 종류 와인으로 계속 마시면 된다며 와인은 많으니 맘껏 마시라고 했다. 대체 와인을 얼마나 마시자는 건가 싶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한다.
먼저, 이 친구의 고향인 루마니아식으로 애피타이저들을 준비해주었다. 가지 샐러드는 예전에 다른 루마니아 친구네 집에서 맛본 것과는 사뭇 다르게 더 깊이 있는 맛이었다.
두 번째 메뉴는 양고기를 넣은 스튜였다. 파슬리를 가득 넣어주었다. 이 친구의 요리들은 요란스럽지 않고 재료들이 모두 한데 잘 어우러지고 깊이 있는 맛이었다. 시간과 정성을 다해 요리한 게 느껴졌다. 20분 만에 요리를 끝내버리는 나와는 많이 다른 요리였다. 이 친구의 요리를 먹으며 조금 반성했다. 이 요리에 브루고뉴 와인 한 종류를 주었다. 맛을 보는데, 평소에 먹던 와인보다 뭐랄까 약간 속이 빈 듯한 맛이 느껴졌다. 이 친구는 내가 와인을 맛볼 때마다 어떤 맛으로 느껴지냐며 물어보았다.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드물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와인을 마실 때 어떻게 느끼는지가 너무 궁금하다고 했다. '이런 걸 궁금해하다니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다음 메뉴는 양배추로 감싼 돼지고기에 삼겹살들을 곁들인 요리였다. 토마토와 양배추, 그리고 고기가 들어가니 어딘지 모르게 김치찌개 같은 맛이 느껴졌다. 토마토에서 오는 신맛과 돼지고기, 배추와 조금은 닮은 양배추가 어우러져서 그랬었나 보다. 이 때는 보르도 와인을 내주었는데, 내가 브루고뉴보다 이게 더 속이 단단한 맛이라고 하니 이 친구가 매우 기뻐하며 그런 걸 뭐라고 한다며 와인 용어를 설명해주었다. (이 날 와인을 계속 마셔서 용어는 잊어버렸다.)
마지막 요리는 양고기구이였고, 구운 감자와 직접 만든 각종 수제피클이 나왔다. 피클 만들기가 취미라더니 정말 각종 채소로 피클이 담아져 있었다.
와인이 계속 나왔다. 주는 와인을 계속 마시며, 와인 맛에 대해서 내 의견도 계속 얘기했다.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이미 저녁이었다. 내가 말했다. 이곳 문화를 잘 몰라서 언제 가야 하는지를 모르니 가야 할 때 알려달라고. 그러자 그들이 자기들은 루마니아인이라고, 루마니아에서는 술이 떨어지기 전까지 파티는 계속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집에는 와인이 넘치니 밤새도록 마시고 자고 가도 된다고 편한 대로 있어도 된다고 했다. 결국 이 날 이 친구와 와인 5병을 마시고 트램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와인을 여러 종류를 마시면서 와인의 맛들이 서로 다름은 알 수 있었는데, 와인을 표현할 줄을 몰라서 언어적 기억으로 전환을 못 시키니 와인의 맛이 다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날의 경험으로 와인에 대해 관심을 조금은 가지게 되었는데, 여전히 무지해서 장 보다가 와인을 살 때면 한참을 헤매고 고민하곤 한다. 와인의 나라에 있다 보니, 있는 동안 최대한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대체 와인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와인 강의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나는 와인이 너무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