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해외에서 일 년 (2): 집 구하기

2021년 11월, 집을 구하다

by 이확위

이곳에 도착한 후, 이 주간 호텔에서 머문다. 원래는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려고 했었는데,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정이 계속 미뤄지다 보니 어느덧 이 도시의 인기 시즌이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모든 숙소가 다 나가고, 가능한 호텔도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지만 겨우 구할 수 있었다. 2주 안에 집을 구해야 한단 압박감이 있었다. 집을 구해야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고 그래야 폰을 개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끝나야 체류증 신청이 가능했기에 한 달 내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안 그래도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걱정 속에서 출근을 하고 있는데, 첫 그룹 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보스가 미팅 끝나고 디스커션을 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막상 디스커션이 끝나자 내게 집을 구했느냐고 물었다. 아직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일단 집부터 얼른 구하라고 했다. 집을 구해야 은행 계좌를 열고 그래야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사이언스는 그다음에 얘기하자고 했다. 나에게 출근해서도 집 검색을 하라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친절을 베풀어주니 고마웠다. 계약직들 업무를 담당해주는 착한 담당자는 내가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메일을 돌려주었다. 혹시 빈 집이 있는지 세입자 구하는 집이 있는지 등에 대해 문의 메일을 쫙 돌려주었다. 그런 후, 답장이 온 것들을 내게 보여주면서 어디가 괜찮은지도 알려주고, 괜찮은 곳은 직접 전화를 걸어 집을 보러 가기로 예약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두 곳의 집에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첫 집을 가보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건물 밖을 서성이는데 건물이 너무 낡아있었다. 창가의 창틀도 너덜거리고 주변의 다른 어떤 집들 보다도 낡아있어서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집 안에 들어갔다. 살고 있던 세입자는 매우 친절했다. 하지만 집이 너무 낡아있고, 제대로 된 매트리스도 없고, 집도 추워 보이고 어둡고, 마치 신데렐라가 살 다락방 같은 낡은 집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곳에 살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그래도 살고 있던 세입자는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며 나름 장점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내 마음은 이곳에 없었다.


다른 한 집도 있었지만 사진으로 보아도 제대로 된 침대가 아닌 소파베드였다. 매일 소파베드에서 잘 수는 없었다. 정중하게 집을 보러 가지 못하게 됐다고 연락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모두 괜찮다고 말해주어다. 맘이 불편했다.


힘 빠지는 첫 집을 보고는 호텔로 돌아와 열심히 집을 검색했다. 셰어 하우스인 콜로카 시옹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가구까지 모두 갖춰진 집을 찾는데 마땅한 집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난 외국인이라 이 나라에 프랑스인 보증인이 없기에 월급의 1/3 정도 되는 집만 얻을 수 있었다. 돈 더 내고 더 좋은 집을 가고 싶다 하더라도 갈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연구소 근처에 사진상으로 제법 깨끗해 보이는 집을 보러 가기로 예약했다.


첫 주는 출근 후, 집만 알아보면서 지냈던 것 같아 맘이 불편했다. 아직 식당을 이용할 카드도 나오지 않아 다른 친구들이 돈을 내주었다. 모든 게 맘이 불편했다. 주말이 되고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미리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연구소 계약서, 여권, 비자, 한국에서 번역해서 받아서 기본증명서 등등의 서류를 일단 모두 챙겼다. 그런 후, 집을 향해 걸어갔다. 생각보다 좀 걸어야 했다. 그래도 동네가 한적하니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사람이 왔다. 밝은 여자분이었고 영어를 잘해서 매우 편했다. 집은 4층, (한국식으로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운동삼아 걸어 올라갈 만하다고 느꼈다. 집은 리모델링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다. 한국 같았다. 모든 게 갖춰져 있어서 좋았다. 세탁기, 건조기, 식기건조기, 커피머신, 전자레인지, 오븐, 풀옵션이었다. 거실도 큰 테이블, 소파, 스마트 티브이가 있었고 방은 한 명이 살고 있는 곳을 빼고는 세 방이 있었다. 모두 킹사이즈 침대에 방마다 그림도 걸려있고 넓적한 옷장, 책상, 스마트 티브이가 있었다. 인터넷도 모두 설치되어 있었고, 공용 구역 청소를 위한 클리닝 레이디도 온다고 했다. 나에게는 최상의 집 같았다. 다른 곳들을 더 봐야 되나 싶기도 했지만 이곳이 맘에 들어서, 바로 여기로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충동적이다.) 좋다며 집주인에게 물어봐야 하니 내 서류들을 사진 찍어가겠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는 결정은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 하는 것이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조건들이 맘에 들어야 이 집에 살 수가 있다. 내 고용계약서를 보더니 이 정도 월급이면 충분하고, 내가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고 여러 조건이 만족스러울 거라고 했다. 금방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이렇게 집을 결정하고 나니 맘이 편했다. 하루쯤 지나고, 집주인이 맘에 들어했다고 이사 오면 된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예약된 호텔에서의 생활이 끝날 때 이사를 하기로 했다. 입주 며칠 전에 만나서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이 되고 다시 집을 찾았다. 여전히 깔끔한 집이었다. 맘에 들었다. 계약서에 여기저기 서명을 했다. 아직 프랑스 계좌가 없어서 한국에서 해외송금으로 보낸다고 양해를 구하고 돈을 보냈다. 계속 조심스러웠다. 이사일 보다 일찍 계약서를 쓰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대로 사기당하면 어쩌나 계속 걱정을 했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며 진행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 입주하기 전에 집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나라에서는 의무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연구소의 계약직 담당자를 찾아갔다.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자기가 쓰는 보험사에 연락해서 집보험을 들게 도와주었다. 잘 해결되었다.


호텔에서 2주를 채운 일요일, 우버를 불러 짐을 들고 이사를 했다. 엘베 없는 5층까지 캐리어를 끙끙 거리며 들어 올리느라 진이 빠졌다. 그래도 짐을 모두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이제 이곳이 내 집이구나 싶어 마음이 편해졌다. 근처에 아시아 마켓이 있어서 바로 쇼핑도 나갔다. 나가서 먹을 것도 사와 빈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집을 구하고 모든 게 간단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집이 생겼으니, 이제 은행계좌를 열어야 했다. 은행은 한국처럼 그냥 찾아가는 게 아니라 예약을 해야 했다. 연말이라 이미 바빠서인지 예약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도 고맙게 계약 집 담당자가 자기가 다니는 은행 지점에 연락해서 예약을 잡아주었다. 모두 이 사람 덕분에 다 해결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몇 번 나 혼자 은행 가서 실패하던 것을 불어가 능숙한 프랑스인이 도와주니 바로 해결이 되었다. 은행에 가서 계좌를 열고, 바로 계좌를 연구소에 알려줬다. 이번 달 월급을 위한 거였다. 그런 후, 핸드폰 매장에 가서 핸드폰을 개통했다. 데이터 요금제가 쌌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와이파이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연구소에도 와이파이가 없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게 체류증이었다. 도착 한 달 내에 신청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법원 지정 번역가에게 연락해서 출생증명서를 번역 공증받아야 했다. 다행히 금방 해결해서, 체류증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들을 처리하고 뒤늦게 보스와 미팅을 하게 되었다. 다른 공동연구자들과도 미팅을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확실해졌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이해를 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일을 막 시작하려고 했더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러고 청천벽력 같은 연구소가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