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해외에서 일 년 (1): 도착

2021년 11월, 도착하다

by 이확위

12월이 되었다. 곧 올 한 해도 끝이다. 작년 2021년 11월 19일에 이곳에 도착했다. 이제 일 년을 막 지나고 새해를 곧 맞이할 생각을 하니, 일 년간의 생활을 뒤돌아보면 좋겠다 여겼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다양한 활동들로 삶을 채우려고 애썼던 생활들이었다. 내 친구들은 나에게 지금까지 중 가장 활기차 보인다고 하며, 올 한 해가 내 인생의 황금기 같다고도 표현했다. 그런 일 년을 다시 돌이키며 즐거움, 감사함을 되새기고 싶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다른 글에서도 적었던 적이 있는데 출국 바로 일주일 전 전신마취 후 오른쪽 부비동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었다. 주치의로부터 일주일 뒤면 비행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일주일 뒤 출국으로 정해서 연구소에도 알렸었다. 그렇게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여전히 흐르는 코피에도 인중에 커다란 거즈를 붙이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의 비행 중 초반은 잘 지내다가 7시간째에 코피가 터졌다. 심각한 출혈로 양쪽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목 뒤로도 넘어가서 피를 토해내며 겨우 숨을 쉬며 버티었다. 그렇게 15분가량 출혈이 멈춘 후는 잘 수도 없고 그저 뜬눈으로 비행기에서 내내 앉아 있었다. 입맛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스만 내내 마셨다. 피범벅이 된 옷을 입은 채로 착륙을 기다리며 착륙한 순간 안심을 하던 찰나에 기압차에 의해 더 심한 출혈이 터졌다. 이번에는 정말 숨을 쉬기도 힘들어서 많은 피를 삼키고 눈물을 쏟으며 응급센터로 갈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많은 승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담요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고 있었다. 새벽 4시에 환승을 위해 도착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한적했고, 응급센터에도 간호사들만 있었다. 바이탈 측정들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내가 한국의 주치의와 연락했을 때 피가 멈춘 거면 괜찮다고 한 얘기를 전해 듣고, 당직인 의사와 전화를 하고는 별 문제없다고 했다. 일상 땅 위에 있으니 안심이었다. 환승 후, 한 시간만 비행하면 되기에 전처럼 기압차가 크지 않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비행기로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나에게 연락을 받았던 가족들이 정말 크게 걱정을 했다. 언니는 너무 걱정된 나머지 대사관에도 연락하며 뭔가 조치를 취해주길 요청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두 번째 비행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나는 무사히 목적지인 이 도시에 도착했다.


프랑스인 언니 친구의 도움으로 비록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일반의의 예약도 당일로 잡을 수 있었다. 원래는 도착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피도 너무 많이 흘렸고 지쳤었기에 바로 숙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도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간이기에 숙소에 짐만 맡기고 시내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대중교통이 아닌 우버를 이용했다. 내 생각보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병원 진료까지 시간이 남아서 병원 근처를 그냥 계속 걸어 다녔다. 처음 도착해서 낯선 곳이었는데 지나가던 한 소년이 내게 이 나라 말로 길을 물었다. 한국에서도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워낙 내가 편한 복장으로 다녀서, 동네 마실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일 거다. 이곳에서도 여기 사는 사람처럼 보일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의 병원은 낯설었다. 일반의였는데, 병원들이 병원이라고 한국처럼 큰 간판이나 병원 마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A4 크기만 하게 의사 누구라고 적힌 게 전부였다. 벨을 누르고 들어가니 화살표로 뭔가 마크가 있었고 구글 번역기로 찾아보니 대기실이라 적혀있었다. 방 한 칸에 의자만 10개 정도 있었다. 아무도 없었고 혼자 가서 앉았다. 한참을 기다린다. 이렇게 기다리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린다. 예약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서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뭔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의사인 듯한 한 사람이 나와서 나를 부른다. 따라서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진료용 침대 같은 것과 한편에는 책상과 의자들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한국에서 가져왔던 진료기록과 스키폴 공항 응급센터에서 작성해준 진료기록을 보여준다. 나를 진료 침대에 눕게 한다. 누우니, 아이스크림 막대기 같은 것으로 혀를 누르며 내 목을 관찰한다. 일반의라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위한 장비들이 갖춰져있지 않아서 약소했다. 그러면서 목에 피가 많이 고여있다고 했다. 어찌어찌 진료를 마치고는 의사가 약 처방전을 써주고 (혈액응고제) 책상에서 처방전을 출력하고 도장을 찍고, 결제까지 혼자 다 했다. 한국의 병원에서는 의사는 진료만 했는데, 이곳의 의사는 혼자 하는 일이 많았다. 조금은 낯선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약국에도 가서 약을 받았다. 조금 추워져서 돌아가는 길도 우버를 불러서 간다. 호텔에 도착하여 맡긴 짐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일주일간 머물 호텔로 간다. 배가 좀 고파지는데 호텔을 바로 주말이 지나고 출근할 연구소 근처로 했더니 근처에 뭐가 없었다. 그래서 룸서비스를 시킨다. 아버지께서 돈을 조금 챙겨주셔서 다행히 여유가 있었다. 생각지 못하게 응급센터나 병원 등으로 지출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름 응급상황이니 그냥 있는 돈을 쓰며 몸을 편하게 해 준다.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룸서비스로 시킨 저녁을 먹고 조금 쉬다가 바로 침대에 누워 잠에 든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다. 토요일이다. 월요일에 첫 출근을 해야 하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일요일엔 모든 곳이 닫으니 토요일 다 처리해야 한다. 먼저 핸드폰 선불 유심칩을 구매해야 한다. 가장 저렴하다는 곳을 알아둬서 우버를 타고 그곳으로 향한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 이상해서 근처 다른 샵에 들어가서 폰을 보여주며 확인해보니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컨디션이 아직 딱히 정상은 아니라서,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됐다. 게다가 추웠다. 아무도 없이 혼자 이 낯선 곳에서 폰 유심칩조차 제대로 사지 못하다니 앞으로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다른 한국인에게 급하게 문의 문자를 보내본다. 다른 곳을 알려준다. 다시 우버를 불러서 타고는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번화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중심지인 광장이었다. 먼저 핸드폰 선불 유심칩을 구매한다. 해결하고 나니 바로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딱히 더 할 일이 없었지만 조금 추우니 쇼핑을 하기로 한다. 익숙한 자라에 들어가서 외투를 좀 산다. 돈을 쓰니 마음이 편하다. 다시 우버를 불러 호텔로 돌아온다. 쇼핑을 모두 마치고 일단 해야 할 것을 끝내니 안심이 된다.


근처 베이커리를 걸어서 가본다. 프랑스에 오면 바로 하고 싶던 게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었다. 바게트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사서 돌아온다.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는다. 바게트를 베어 물어 먹는다. 수술한 부위의 통증 때문에 아프다. 바게트 샌드위치를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좀 슬퍼진다. 샌드위치가 있는데 왜 먹질 못하니. 피곤한 하루를 일단 목표였던 선불 유심침을 해결해서 맘이 편해진다.

일요일이다. 걸어서 한 번 다음날 출근할 연구소 근처로 가본다. 바로 근처라 생각했는데, 캠퍼스 내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곳이 드물어서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상당히 걸어야 했다. 그래도 구글맵으로 보던 곳에 이렇게 도착했다니 조금 실감이 났다. 인터넷으로 보던 곳을 실제로 오니 이제야 현실이구나 싶었다. 근처에 일요일에도 오픈하는 작은 마트가 있어서 찾아갔다. 과일들과 바게트도 사본다. 근처 아시아 마켓도 가본다. 호텔에서 먹지도 못할 거면서 괜히 컵라면, 젓가락도 산다. 별로 할 게 없다. 아직은 피곤하니 그저 쉬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룸서비스를 시켜서 저녁을 먹는다.

다음 날 첫 출근이기에 미리 입을 옷을 챙겨두고, 출근할 준비를 해둔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아직은 낯선 이곳이 좋아지길 기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