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들
새해가 시작되었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시작하고, 거의 항상 6시 전에 퇴근을 했다. 실험을 더 하면 연구소가 닫는 8시 전에 끝낼 수 없어서 일을 더 할 수도 없고, 연구실에 혼자 남아 실험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하는 거에 맞춰 일찍 일찍 끝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와도 7시가 채 되지 않았고, 저녁 시간이 아주 많았다. 한 일주일은 그냥 저녁을 해 먹고 일찍 잠에 들곤 했다. 딱히 할 일이 없고, 이렇게 많은 여유시간은 가져본지 너무 오래되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잠만 자다 보니 컨디션도 별로고 기분이 점점 다운됐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먹은 게 다시 취미활동들을 시작해보자는 거였다.
한국에서 그림 그릴 재료들을 거의 챙겨 왔었다. 한동안 해 먹었던 요리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훌훌 잘 갔다. 다만 그림을 꽤 빠르게 그리는 편이라 하나 그려도 30분이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뭐라도 하는 것 같아서 맘이 나아졌다. 매일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기에 부담도 없다. 그러다 맘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땡큐인 거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 재료들을 좀 더 사고 싶어졌다. 미술 전공인 아는 한국인에게 연락해서 화방을 알아냈다. 가보니 호미화방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있을 것들이 다 있었다. 원하는 것들을 잔뜩 샀다. 그러고 돌아가는 길에 서점이 보여서 서점에 들어가서 책도 잔뜩 사버렸다. 독서도 다시 시작하면 좋을 듯했다. 비록 영어 원서지만 독서 겸 영어공부로 일석이조이니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이렇게 다른 취미들을 시작하니 이제는 베이스를 시작할 때도 됐다고 여겨졌다. 예전에 미리 알아뒀던 악기점을 찾아갔다. 베이스 종류가 많지 않았다. 열 가지 정도뿐이었는데, 그중에서 고르다가 원래 생각했던 예산의 2배 가격을 얼떨결에 사버렸다. 거기다가 엠프까지 사서 끙끙거리며 힘겹게 들고 트램을 타고 돌아왔다. 베이스와 엠프를 너무 무겁게 들고 와서 그 주말은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었다. 베이스를 사 오는 순간에는 사자마자 정말 열심히 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막상 사 오니 또다시 방 한 구석에 자리만 잡게 되었다. 그래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게 준비가 됐다는 점이 좋았다.
취미 생활들을 시작하니, 조금 더 이곳에 적응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자는 시간이 많고 저녁을 알차게 보내고 있진 못했지만, 조금씩 하나하나 더 늘려가며 시간을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해외생활에서는 친구가 생기기 전은 외롭기 마련이다. 할 일도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중요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