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일주일
엄마와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이다. 그중 하나라면 추위에 대한 내성이 다르다 해야겠다. 엄마는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추위에 약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나이가 드시면서 그 정도는 전보다 더 심해졌다. 이제는 조금만 추워도 손가락들이 다 마비되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엄마에게 머플러와 장갑은 필수이고, 내복만 입으면 다행이지만 그 위에도 입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껴입으셨다. 그에 비해 나는 20대 초반까지는 인삼과 같은 재료들은 먹지도 못 했었다. 흔히 열을 낸다고들 하는 삼 종류를 먹으면 나는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 불쾌하여 삼을 먹지 않았었다. 나는 한 겨울에도 외투를 잘 잠그지 않는다. 외투를 잠그고 열기를 몸 안에 가두면 내 몸이 점점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고 머리까지 열이 올라오며 답답해진다. 한 번은 명절에 사람 가득한 버스에서 춥다고 입었던 두툽 한 외투를 벗지 못해 잠시 기억이 나지 않는 정신을 잃은 듯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남들만큼 따뜻하게 입기를 거부하고 있다.
엄마가 오시기 전 마지막 연락에서 여기는 얼마나 춥냐고 물으셨다. 엄마에겐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을 거다. 내가 있는 곳은 추운 겨울에도 보통 섭씨 0도씨 근처이다. 어쩌다 영하로 내려간다 해도 잠깐이고, 한국에 비해 춥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춥지 않다고, 추워도 영도 정도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 정도라도 엄마에게는 춥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비행기를 타시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날씨를 알아보는데, 이게 웬걸 갑작스러운 추위로 눈도 오고 엄마가 계시는 내내 영하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내가 추위에 강해서 추위에 약한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만났다. 사근사근하지 못한 딸이라서, 껴안는 따뜻한 포옹 따위 없이 어색하게 바로 택시 같은 걸 타고 갈 거라고 얘길 했다. 난 언제나 이렇게 어색한 인사만을 하곤 한다. 조금은 따뜻한 말을 건네었다면 엄마가 더 좋아하셨겠지만 내겐 영 어렵다. 파리의 샤롤 드골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이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여전히 차가 제법 막혔다. 또 다른 월드컵 8강전을 하고 있어서 엄마에게 미리 사다 두었던 소고기 김밥에 무말랭이를 드리고 함께 축구를 보며 저녁을 해결했다. 엄마가 아침에 먹어야 한다는 요구르트와 과일을 호텔 바로 옆 마트에서 사다 두었다. 오래간만에 엄마와 둘만이 있으니 뭔가 계속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우리 둘 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첫 밤은 제법 조용하게 지나갔다.
원래 세워뒀던 계획이 있지만 조금 수정을 했다. 일단 첫 아침은 파리의 쁘띠 아침식사로 근처 카페에서 해결했다. 바게트, 버터, 잼, 신선한 오렌지 주스, 따뜻한 음료다. 엄마는 위가 약해서 커피를 안 드셔서 따뜻한 우유를 시켰다. 단백질을 위해 엄마에게 계란을 추가로 시켜드렸다. 나는 엄마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믈렛에 더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아침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가볍게 짐을 챙긴다. 첫째 날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가서 파리 전경을 살펴보고, 언니가 추천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파리를 네, 다섯 번 왔지만 몽마르트르 쪽은 한 번도 가지 않았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생각에 엄마를 안전하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려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계단이 조금 많았다. 오르면서 엄마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이 정도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괜찮으신지 여쭤보며 의자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다가갈수록 인파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긴장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기에 주머니의 핸드폰을 손으로 꽉 쥐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오기 전에 대성당을 먼저 들어가야겠다 싶어 엄마와 줄을 선다. 줄이 금방 줄어들고 성당 안에 들어간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세계 최대의 모자이크화가 있다고 들었다.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엄마에게 설명해 드린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엄마는 성당을 맘에 들어하셨다. 성당의 곳곳을 보시며 사진, 영상도 내 생각보다 열심히 찍으셨다. 첫 시작이 좋았다. 돈을 내고 성당 안에서 엄마가 초에 불을 켜실 수 있게 해 드렸다. 초에 불을 켜고는 성호를 긋고 뭔가 기도를 하셨다. 성당 근처를 돌면서 파리 전경을 구경했다. 전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조금 추워하시기에 근처에서 파는 뱅쇼를 하나 사서 엄마와 나눠마셨다.
언니가 여름에 파리에 왔을 때 갔었던 식당에서 먹었던 생선요리를 계속 칭찬했었다. 여기저기 다 뒤지고는 자기가 갔던 식당 이름을 알아내서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꼭 가보라는 듯해서 식당을 미리 예약해뒀었다. 엄마를 모시고 찾아갔다. 식당 예약까지 시간이 남아서 근처를 걸었다. 꽃집이 보였다. 엄마는 오랫동안 꽃꽂이를 해오셨고 식물을 사랑하는 분이셔서 꽃집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식당에 들어가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하나 시키고 언니가 말했던 생선요리 사진을 보여주며 주문했다. 음식은 모두 맛이 좋았다. 본격적인 첫 끼에서 엄마가 모두 잘 드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한 잔을 더 시켰다. 엄마가 커피를 또 먹냐고 가벼운 한소리를 하셨다. 더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가득 넣고 한 입 마시던 나는, 엄마에게 맛있으니 한 번 맛보라고 했다. 처음에 거절하시다가 한 번 맛보시다니 눈이 조금 커지시며 맛있다고 하셨다. 그 후로, 종종 내가 마실 때 엄마가 한 입씩 달라며 에스프레소+설탕 조합을 즐기셨다.
엄마가 오시는 날을 잘 못 알아서 일박 후, 호텔을 한 번 더 옮겨야 했다. 딱히 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호텔 체크인 시간에 돌아갔다. 바로 옆 호텔로 옮기는 거였기에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겨둔 호텔에서 짐을 가지고 바로 옆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한다. 방에 들어간 후,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센 강 유람선에 대해 의견을 묻고는 티켓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해진 후에 봐야 예쁠 거라 생각해서 일몰이 5시경이기에 5시 유람선을 탈 생각을 하고 바토무슈 선착장으로 향한다. 사람이 제법 많았다. 윗 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쌀쌀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게 쌀쌀했다면 엄마는 처음부터 추우셨을 것 같다.
유람선이 출발하고, 알렉산드로 3세 다리라던가, 근처의 오르세 박물관이나 센 간 주변 건물들에 대해 안내 방송이 약 여러 나라 말들로 나왔다. 그중에 한국어도 있었지만 다리를 지나갈 때마다 꼬마 아이들이 소리치는 소리에 방송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즐기는 거기에 뭐라 불평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겐 뭐라 하면 안 되는 거다. 유람선에서 파리를 구경하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추워졌다. 해가 금세 지고 나니 강 위에서 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추웠다. 그렇지만 배에서 내릴 수도 없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배가 한 바퀴 다시 돌아와서는 파리의 명소, 파리의 상징 에펠 탈 근처로 갔다. 그 근처에서는 엄마도 사진을 많이 찍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에펠탑도 보고 또 보면 조금 질리는 법. 사진도 찍고 볼만큼 보고 나니 추위가 더 거세게 느껴졌다. 엄마는 지치신 것 같았다. 아래 층으로 내려가자셨고, 내려가 보니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이었는지 야외 2층 유람선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가득 차서 실내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엄마는 점점 추워하셨다.
유람선에서 내린 후, 추위를 녹이고 가자는 걸 지하철을 따뜻할 거라며 내가 그냥 엄마를 모시고 지하철을 타러 갔지만 무슨 일인지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의 30분은 기다려 승강장으로 내려갈 수 있었고, 오는 지하철마다 만원이라 탈 수 없어서 대략 5대는 그냥 보냈다. 이대로는 아니다 싶어 엄마와 근처 식당을 들어갔다. 에펠 근처라 그런지 가격이 좀 비쌌지만, 그냥 식당에서 주문을 했다. 해산물 식당이라 굴이 있어 굴을 시켰다. 모든 요리들이 가격은 제법 있지만, 맛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다.
저녁으로 배를 채우고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우버를 불러보는데 잘 잡히지 않았고, 도로가 뭔가 시끌시끌했다. 무슨 일인지 처음엔 몰랐다. 어렵게 우버를 잡아서 가는데, 샹젤리제 거리도 도로 통제를 하고 있었고,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로코가 4강에 올라가게 되면서 모로코인들이 축하를 하는 거였다. 차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는 국기를 흔들고 다니고, 클락션을 울리고, 사람들이 신나게 즐기는 중이었다. 엄마는 조금 무섭다고 하셨다. 시끌시끌하지만 우버 기사는 짜증한 번 내지 않았다. 원래는 15분이면 갈 곳을 45분 만에 도착했지만 가는 내내 짜증한 번 없었다. 엄마는 그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밖에서 오래 추위에 떨어서 피곤해하셨다. 내 생각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셔서 야외에서의 활동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엄마와 다르다 보니 그게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우리 서로가 그랬다. 엄마는 나를 보면 너무 추워 보였고, 나는 엄마를 보면 더워 보였다. 이런 날이 일주일 내내 지속되었다. 이게 모두 갑작스러운 추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