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일주일
코로나 이후로 엄마는 쭉 바쁘셨다. 어찌 된 건지 그 전보다 더 바쁘셨다고 했다. 그래서 근 2년간 제대로 쉬신 날이 없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언니가 혼자만의 자유시간으로 주말에 미술관 투어들을 다니고 카페 가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게 너무 좋아서, 엄마를 모시고 하루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다고 했기에 파리에서도 엄마를 모시고 파리의 대표 미술관들을 갈 계획을 세웠다.
5일 동안 머물 호텔을 예약할 때, 아침식사를 신청 안 한 줄 알았는데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차라리 잘됐던 것 같다. 일단, 호텔 조식이 제법 좋았고, 엄마가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침마다 요구르트와 과일은 꼭 드셨어야 했기에 그 둘이 모두 있는 조식이 편했다. 조식으로 단백질, 탄수화물들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빵도 거의 10종류가 있었기에 (그래도 먹는 것만 먹지만) 따로 빵집을 갈 필요 없이 일주일간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시고, 종종 엄마도 드시고 싶으실 땐 내 것을 약간 맛보셨다.
첫 미술관은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르세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와 나 둘 다 뮤지엄 패스를 준비해 왔기에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파리의 모든 미술관이 그렇듯, 입구에서 짐 검사를 하고 입장했다. 입장 후 엄마를 모시고 0층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좋은 작품들이 워낙 많은 오르세 미술관이라 0층만 서둘러 보고도 이미 조금 지쳐왔다. 그래도 인상파 작품들로 가득한 5층까지 힘을 내어 구경했다. 미술관을 구경하면서, 점심을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근처에 인기 많은 식당을 급하게 예약했다.
엄마를 모시고 식당에 갔다.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이름만 보고는 몰랐는데, 가보니 지난여름에 사촌동생과 왔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해산물을 잘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사촌 동생은 파리에서 먹은 것 중 이곳에서 먹은 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모듬 해산물을 하나 시키고, 엄마를 위해 어니언스푸와 비프 뷔르 기뇽을 시켰다. 프랑스에서 맛봐야 할 프랑스 음식들은 어느 정도 맛보시게 하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다. 매 끼니마다 양을 생각하지 않고 음식을 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음식에 대해서는 아낄 줄 모르는 나의 나쁜 버릇이다.
해산물에 수프와 스튜까지 맛보면서, 나는 며칠간 마시지 않았던 맥주를 시켰다. 밀맥주를 시켰는데, 내가 맛있게 마시니 엄마가 한 모금 마시고 싶다고 하셨다. 맛보시더니 맛있는지 중간중간 내 맥주를 마시곤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입장했다. 미처 못 본 2층도 둘러보았다. 2층을 둘러보던 중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고, 코가 아팠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안경의 코 받침대(?) 같은 실리콘이 빠져서 안경대의 날카로운 부분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괜히 예민해져서는 엄마에게 조금 차갑게 대했던 것 같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생각해보니 내가 차갑게 대했던 순간이 너무 많았다. 뒤늦은 후회들이다. 안경을 어떻게 수리하지 하나 싶다가, (코가 아파서 수리 안 할 수가 없었다) 근처의 안경점을 찾아서 검색하고 갔다. 걸어가면서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불효인가 싶은 게 지금의 심정이다. 나를 만나기 위해 12시간의 비행을 버티고 온 엄마인데, 그런 엄마를 옆에 두고 기분이 별로라고 아무 말도 안 하다니... 내 그릇이 좁은 거다.
안경은 다행히 10분 만에 수리가 되었다. 무료로 안경점에서 고쳐주었다. 당연히 돈을 내야 할 줄 알았지만. 무료였다. 프랑스도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바로 회복되었다. 바로 근처에 한인마켓이 있어 엄마와 구경을 했다. 원래는 근처의 오페라 극장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빠듯하기도 해서 나중에 가기로 하고 아시아 마켓에서 먹을 것만 사서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면서, 혼자 시간을 가진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조금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인마켓에서 사 온 음식들로 저녁을 먹으며 월드컵 4강 경기를 보려던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고 심심해서 엄마에게 근처 바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엄마가 엄마는 호텔에서 쉬고 계시겠다고 해서 나 혼자 밖으로 나왔다. 자유시간이었다. 혼자 근처 바에 가서 그림을 그리면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두 잔쯤 마시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생각해보니, 밤마다 저녁을 많이 먹어서 그랬던 건지, 저녁 후 밖에서 술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온다. 호텔로 다시 돌아간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한국에 연락을 하시면서 종종 일을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쉬러 와서도 쉬지 못하는 모습에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엄마가 일을 하실 만큼 혼자 시간을 보내게 내버려 둔 나의 잘못이다. 내가 계속 상대해드렸어야 했다. 왜 그걸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한인 마켓에서 사 왔던 비빔밥과 돈가스 덮밥을 먹는다. 먹고는 축구 경기를 계속 본다. 엄마는 시차 때문인지 졸려하셨다. 졸리면 주무시라 하는데, 엄마는 계속 버티셨다. 나중에는 졸면서 축구를 보시는데, 왜 그런지 답답해하며 졸리면 그냥 주무시라고 차갑게 얘기했다. 또다시 후회되는 일이다. 왜 그렇게 차갑게 말했을까? 그냥 어쩌면 여행을 오셨으니, 그냥 자버리는 시간이 아까우셨던 건 아닐까? 내가 더 잘 상대해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 와 생각하면 나는 대체 왜 그랬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아마도 나도 피곤했었나 보다.
다음날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있는 오랑쥬리 미술관이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엄마가 무척 잘 드셨다.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나와서, 추운 날씨에도 미술관까지 잘 갈 수 있었다. 엄마가 이곳을 분명 좋아할 것을 알았다. 일단 꽃을 좋아하시는 분이고, 어릴 적 엄마가 사주신 모네의 정원이란 책을 보면서 언니가 모네를 좋아하게 되었기에, 엄마도 분명 좋아하실 것을 알았다. (조금 따뜻한 계절이었다면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에 갈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미술관에 들어가 바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좋아하셨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운이 좋았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시장통이었다. 모네의 그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온 이 날은 모네가 바라던 바로 그런 공간이 되어있었다. 관람객이 내가 본 것 중 가장 적었다. 엄마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모네의 수련을 보고 있자니, 어울릴 것 같은 노래가 있어서 엄마에게 이어폰을 주고는 노래를 틀어주고 그림을 보게 해 드렸다. 엄마가 음악이 좋다고 하셨다. 뿌듯했다.
수련을 본 후, 지하로 내려가 미술관 소장품들을 본다. 오르세만큼은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오랑쥬리도 좋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특별 전시회도 있었다. 엄마는 운이 좋았다. 오르세도 뭉크전을 하고 있어서, 뭉크의 작품들을 실컷 볼 수 있었는데, 오랑쥬리도 다른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파스텔을 많이 쓰는 작가인 Sam Szafran이란 작가였다. 엄마는 모든 작품들을 집중해서 보시곤 했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며 뭘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술관들을 즐기셨다고 생각된다.
미술관에서 나온 후, 바로 옆 튈르리 정원을 둘러본다. 겨울이라 휑한 정원에서도 식물들을 보며 엄마는 좋아하셨다. 따뜻한 계절에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점심에 평점 높은 식당을 예약해두었기에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엄마를 위해 고민하다가 생선요리를 주문해드리고, 나는 비프 타르타르를 시켰다. 엄마를 위해 달팽이, 에스까르고도 주문하였다. 엄마가 에스까르고를 잘 드셔서 모두 드시게 했다. 잘 꺼내 드시지 못하기에 하나씩 꺼내서 드시게 도와드렸다. 엄마가 바게트를 잘 드셔서 빵에 에스까르고를 잘 곁들여 드셨다. 빠떼에 빵도 잘 발라드셨다. 한국에 돌아갈 때 하나 사가도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이 식당에 대해 다른 유명 블로그에서 봤는데, 이름처럼 돼지고기 요리를 잘하는 집이었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생선과 소고기를 먹었다. 별점만 볼게 아니라, 다른 후기들도 살폈으면 더 좋은 식사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엄마가 생선을 잘 드셨기에 나는 만족한다.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거니까, 엄마가 잘 드신 것만으로 난 충분하다.
점심을 먹고는 씨 떼 섬에 있는 생샤펠 성당을 보러 갔다.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서, 성당 주변을 한 바퀴 거의 이십 분을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어딘지 못 찾아 속이 타들어가고, 계속 걷는 수밖에 없는데 엄마가 힘들어하셔서 죄송한 마음에 한마디 못하고 걷기만 했다. 좀 더 솔직하게 내 맘들을 표현했다면 더 좋은 시간들이 됐을 텐데, 또다시 후회할 시간을 만들었다. 한 바퀴 돌다 보니 입구가 나왔다. 다행히도 입구를 찾아서 줄을 서서 들어갈 수 있었다. 짐 검사를 또 하고 들어갔다. 계속되는 짐 검사에 엄마가 조금 귀찮아하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테러의 위험 때문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성당 외부는 모두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부로 처음 들어간 후, 원형 계단을 한참 오르고, 들어서니 장관이었다. 모든 곳이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화려했다. 뭐라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지고는 엄마에게 설명해드렸다.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다. 나는 안도감과 함께 조금 긴장감이 풀려 쉬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엄마가 신나서 여기저기 열심히 사진 찍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잘 못 찍는 것 같아 내가 대신 여기저기를 찍기도 하였다.
생샤펠 성당을 보고는 바로 근처의 꽃시장을 찾아갔다. 엄마를 위한 맞춤 코스였다. 꽃꽂이를 하는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라 꽃은 많이 없었고,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여기저기 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눈에 담는 느낌이었다. 꽃 시장을 본 후, 오늘의 다음 코스는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파리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였다. 퐁피두에 갔다. 처음에 전시실을 잘 못 선택해서 특별전시회로 갔다. 현대미술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 별 재미가 없는데 엄마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퐁피두센터 소장작품들로 가득 찬 4,5층으로 다시 이동했다. 미술품들을 계속 보다 보니 난 지치기 시작했다. 지치면서 조금 피곤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보고 어디로 오시라고 얘기하고는 나는 앉아서 쉬었다. 10분 거리에 저녁 식당을 예약해뒀는데 식당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이 남아있었다. 밖은 추워서 나갈 수도 없다. 엄마에게 어디 카페라도 가실 건지 물었지만 엄마는 그냥 여기 앉아만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가만히 있다가, 내 핸드폰으로 엄마가 여기 오신 후, 밤에 심심하실까 봐 보여드리고 있는 드라마를 틀어드렸다. 이것도 엄마 맞춤이었다. 야구를 좋아하시기에 분명 스토브리그를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지루하게 보내실 수 있었다.
이 날 저녁은, 화덕에 구워주는 스테이크 집이었다. 엄마가 예전에 프랑스에 와서 양고기를 맛있게 드셨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셔서, 소고기가 대표되는 식당이지만 엄마에게 양고기를 시켜드리고 난 소고기를 시켰다. 주방은 두 명이 요리하는데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와인도 시켰다. 이 날은 엄마가 가장 잘 드신 날이었다. 양고기가 크게 네 덩이나 나왔지만 모두 잘 드셨다. 곁들여진 사이드도 잘 드셨고, 와인도 곧잘 드셨다. 뿌듯했다. 생각해보니, 가장 많은 활동을 한 날이었고, 엄마가 세 끼 모두 가장 잘 드신 날이었다. 좀 더 여러 활동들로 다채롭게 채웠다면 엄마가 더 잘 즐기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