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 택배 수난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한글학교 유아반에서 올해 1월부터 매주 토요일 유아반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해 몇 달 전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었다. 면접을 볼 때 한글학교 원장선생님께서 내가 직장에서 영어를 일상으로 사용한다는 걸 알고는 국제장애인기능대회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장애인들이 직업기술을 펼치는 대회로 한국에서 대회를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이 프랑스 매스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기능대회에 참가하는데 영어 통영원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프랑스가 아닌 러시아로 예정되어 있던 대회가 전쟁이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프랑스로 변경됐다고 했다. 매스에서 열리는데, 프랑스 매스에 한인사회가 작고 한글학교와 같은 단체가 없어서 매스와 가까운 한글학교의 교장선생님이 통영원 모집에 관해 돕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프랑스를 떠나기 전 가능하면 다양한 경험을 모두 하고 싶었기에 의미 있는 행사라 여겨서 하겠다고, 모집할 때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서류를 제출했고, 영어면접을 가볍게 본 후 통역원에 뽑히게 되었다. 한국의 장애인공단에서 모든 일을 총괄한다고 했다.
1월쯤이었나, 통역원으로 뽑힌 모든 사람들이 왓츠앱에 초대되었다. 담당자분이 인사하며 간략한 소개를 하셨다. 각 통역원들에게 선수와 기술위원이 배정되었다. 나는 전자조립종목이고 내 담당선수는 청각장애가 있다고 적혀있었다. 순간 난감함을 느꼈다. 청각장애가 있으신데 내가 통역을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걱정이 되었다. 같이 통역원으로 지원한 지인과 연락했다. 그 친구의 배정선수도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일단 다른 연락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술위원분에게 연락이 왔다. (이때만 해도 기술위원이 뭐 하시는 분인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막연하게 한국에서 선수 훈련을 돕는 분이라 생각했다.) 기술위원께서 내 선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선수는 학교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면서 약간의 난청이 있는 정도라서 대화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걱정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종목에 관한 설명하는 글과 관련 용어 정리된 단어리스트들을 보내주셨다. 파일을 열어 한번 훑어보고는 대회까지 시간이 많으니 나중에 외우자는 맘으로 자세히 보기를 미뤘다.
통역원 지원을 하던 몇 달 전만에도 이 행사가 있을 때쯤에는 내가 하는 연구 실험들이 다 마무리가 되고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실험은 진전이 없어고 모든 게 엉망이었다. 여러 이유들로 지쳐갔고 이 행사가 있기 바로 일주일 전에는 너무 지쳐서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선수를 배정받았고, 선수는 한국을 대표해서 국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고 일주일 뒤면 프랑스에 올 것이었다. 모든 게 귀찮아서 그냥 누워만 있던 주말에 갑자기 선수에게서 메일이 왔다. 선수로부터는 처음 받는 메일이었다. 경기에 필요한 부품을 한국에서 배송받으려 했지만 배송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유럽현지에서 조달하여 메스에서 전달받기를 원한다며 해당 물품을 혹시 주문해 줄 수 있냐는 거였다. 메일을 받자마자 마음에 걸린다. 프랑스에서 택배 받기는 수월하지 않다. 프랑스의 우체국인 크로노포스트의 택배는 시간은 하나도 안 지키고 자기들 맘대로 배송하려 해서 하루 종일 집을 지키며 택배를 기다려야 겨우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내가 배송받을 수 있을는지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마존에 제품코드를 검색했다. 한 가지가 나왔다. 캠 쳐해서 선수에게 이 제품이 맞는지 확인을 받고 주문했다. 아마존에서 이틀 안에 도착할 거라 했다. 집에 배달될 때 없어서 전달을 못 받을까 봐 근처의 아마존 택배 락커에 도착하게 설정해 뒀다. 택배만 생각하면 한국이 그리워진다.
그냥 지쳐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래도 맡은 일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물건도 주문하고 다음날 다시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세상과 사람을 피하고만 싶으며 지쳐있던 시기에 다른 사람에 의해 세상으로 다시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화요일에 아마존에서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택배를 제대로 받을지 너무도 걱정했었는데 바로 안심이 되었다. 퇴근 후, 바로 물건을 찾아온다. 이 때만에도 택배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생각이 맘의 짐이 하나 줄어들었었다. 택배를 뜯어서 선수에게 물건이 맞는지 확인을 하려 했지만 시차 때문에 한국은 새벽이기에 다음날에 연락하기로 하고 하루를 넘겼다. 수요일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 직전에 지금은 물건확인을 받는 게 좋겠다 싶어서 택배를 뜯었는데, 들어있는 물건이 이상했다. 뭔가 잘 못 됐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덜 배송했거나 내가 주문을 잘못한 거다. 일단 이 물건이 맞는지 선수에게 사진을 보내 확인해 본다. 바로 전화가 온다. 선수가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전화를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듣는데 큰 문제가 없으신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결론은 이 물건이 아니란 거다. 이건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고 했다. 다시 확인해서 재주문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존에 들어가서 물건을 다시 검색해 본다. 내가 불어를 못하니까 제품코드만 검색하고 물건 판매 글 제목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제목에 "pour 제품코드"라고 적혀있었다. pour는 불어로 영어의 for처럼 '~를 위해'라고 사용된다. 즉, 이건 이 제품코드의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위한 부속품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봤다면 알 수 있었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수요일인데 다음 주 월요일에 메스(Metz)로 가야 했다. 그러니 이번 주 중으로 택배를 받아야 하는데, 아마존은 아무리 검색해도 원하는 물건을 팔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배송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되었다. 일단은 주문을 해야 했기에, 구글에서 제품을 검색하고 이번에는 최대한 자세히 읽어보며 물건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주문하기 전에 배송예정일을 보니 바로 금요일정도에 배송예정이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에는 다른 행사 준비로 집에 있을 테니, 그때 택배가 온다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잘됐다 싶었다. 물건을 주문한다. 그러고는 시간 날 때마다 배송조회를 한다.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금요일에 배송될 줄 알았던 택배는 역시나 프랑스 답게 배송되지 않았다. 월요일 배송예정이라고 연락이 왔다. 다행이라면 크로노포스트로 배송되는 건 아니고 다른 택배업체였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이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크로노포스트보다는 낫겠거니 싶었다. 주말 내내 걱정했다. 월요일에 택배가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물건이 없으면 혹시 선수가 경기를 못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월요일 저녁까지는 메스에 도착해야 했는데 택배가 언제 올지 모르니 기차를 예매할 수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메스로 가는 기차가 매진될 일은 없다는 거였다. 그저 무작정 택배를 기다리고, 택배를 받으면 바로 기차를 예매하고 역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긴장 속 월요일이 되었다. 혹시나 집 초인종이 눌릴지, 핸드폰으로 전화나 문자가 올지 몰라 조용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조금 지나고, 택배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수취인부재로 당일 배송이 안된다고 했다. 순간 화가 났다. 이렇게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렸는데, 벨 한번 누른 적 없고, 전화 한 통 없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러면서 난감해졌다. 택배 차가 멀리 가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바로 고객센터에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라서 고객센터도 잘 연결 안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금방 연결되었다. 불어로 뭐라 뭐라 말해서, 그냥 영어로 냅다 질렀다. 어설프게 나의 되지도 않는 불어보다는 영어로 하는 게 가끔은 더 잘 먹혔다. 이곳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오히려 조금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모습들이 조금 보였다. 못 알아들을 나의 불어보다는 영어로 하는 게 오히려 상대에게 잘 먹힐 것 같았다. 바로 다른 담당자를 연결해 준다며 조금 기다리라 했다. 아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확실하지 않다. 난 불어를 못 하니까. 1분쯤 기다렸을까, 다른 상담원이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상황을 영어로 말하자 내 패키지의 배송을 조회하더니, 스트라스부르에 물건이 있으니 이곳으로 가면 물건을 받을 수 있다며 주소를 받아 적으라 했다. 주소를 읽어줬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니 철자를 하나하나 불러줘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파, 브라보, 찰리, 에코, 줄리엣, 로미오...로 불러주는 알파벳을 받아 적었다. 전에 친구들과 재미 삼아 외웠던 건데 이렇게 쓸 날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헷갈리지 않게 바로 받아 적을 수 있었다. 좋은 시스템이다. 주소를 검색해 보니 집에서 5분 거리의 가게였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혹시 모를 신분증을 챙긴 후, 가게를 찾아가서 택배 찾으러 왔다고 하니 커다란 상자를 하나 가지고 나와서는 건네주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기분이었다. 안심이 됐다. 집에 돌아와 상자를 뜯어 물건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선수에게 보냈다. 답장이 오기까지 마지막 긴장감이 돌았다. 다행히 맞는 물건이었다.
확인 후, 바로 기차를 예매하고 뒤늦게 일주일간 메스에서 보내기 위한 짐을 챙겼다. 다음 주에 연구실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준비를 하나도 안 해서 메스에서 낮에 봉사활동을 하고 밤에 작업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나의 무거운 게이밍 노트북까지 챙겼다. 대충 짐을 꾸역꾸역 챙기고는 급하게 예매한 기차시간에 늦지 않게 일찌감치 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는 출발 20분 전쯤에 전광판에 기차의 플랫폼 번호가 뜬다. 그래서 사람들이 플랫폼 앞에서 서성이며 다들 기다리고 있다가 뭔가 하나가 뜨면 급 플랫폼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예전에 스트라스부르 한국 성당에서 뵈었던 분이었다. 그분도 나와 같은 곳을 간다고 했다. 자유석 기차라서 둘이 함께 옆자리에 앉아 메스를 향해 갔다. 초반에는 몇 마디를 좀 하다가, 더 할 말이 없어서 둘 다 서로 이어폰을 끼고 자유롭게 나는 자고, 그분도 그분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메스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나와서 처음 본 메스는 기차역도 예쁘고 매우 깔끔하고 정돈된 도시 같았다. 건물의 스타일도 내가 있던 스트라스부르와는 다르고, 좋은 도시 같았다.
첫날의 일정은 선수단이 머무는 호텔에서 선수들을 처음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 거였다. 6시 반부터 시작하는 식사였는데, 나는 이미 기차가 6시 반이 넘어 도착했기에 마음이 조금 조급했다. 버스를 타고 선수단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점점 외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 밖 풍경을 보니 메스는 깨끗하고 단정하면서 매우 조용한 도시 같았다. 퇴근 시간임에도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주말 일요일 같은 풍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바로 근처의 호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리라. 최근 우울과 불안 증세가 조금 심해진 상태였기에, 새로운 사람으로 가득 찬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게 조금은 불안감을 더 가져와줬다. 하지만 이겨내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분도 있고, 나는 이 일을 해내야 한다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간의 메스에서 일정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