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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pr 26. 2023

2. 한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한식을 선물한다.

외로워하는 한국인들을 돕다.

프랑스에 혼자 와서 일을 하면서 퇴근 후 시간이 지나치게 많았다. 한국에서 대학교 연구실에 있을 때는 기본 오전 9시-오후 10시의 일과를 월-금까지 지내고 토요일은 그나마 빠른 5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뭔가 다른 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6시에는 거의 퇴근하는 일상이 되어버리자 갑자기 저녁 시간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게다가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지역에 살다 보니 근처에 식당이라던가 마땅한 곳이 없어 혼자 요리해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도 요리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좋아하던 일이라 그게 힘들지는 않다. 게다가 퇴근길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아시아마켓이 있다. 퇴근길에 들러서 한번 쓰윽 보며 그날 먹을 메뉴를 정한다. 나는 요리를 빠르고 쉽게 하는 편이라 어떤 메뉴라도 금세 만드는 편이다. 아마 내가 요리를 하지 못했다면, 한국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가 생각나면 나는 내가 다 만들어 먹기에 한국을 그리워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해오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에 난 익숙하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 외에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주로 음식이다. 프랑스 음식과 한식은 워낙 다르니까, 한식의 맛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내가 피곤했던 날마다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분이 안 좋은 날 나는 잡채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한식을 먹으면서 내가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요리는 거의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능숙하게 요리를 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위한 요리보다, 남을 위한 요리를 더 즐긴다. 내가 내 요리를 먹는 것보다 남들이 내 요리를 먹어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혼자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나는 요리해 줄 대상이 그리웠다. 그런 나에게 한식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은 나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내가 요리를 해주면 그들은 미안해했지만, 난 항상 말하곤 한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연구소의 유일한 한국인으로 지낸 지 서너 달 때쯤 지났을 때, 연구소 다른 그룹으로 한국에서 연구소 동기가 새로 박사 후연구원으로 왔다. 한국에서 인사하며 헤어질 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금세 다시 보게 될 줄은 우리 둘 다 몰랐었다. 처음 내가 혼자 이곳에 있을 때는 아무도 없어서 고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다. 초반에 이 친구는 상당히 어려워했다. 학교식당의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다 했고, 요리를 못해서 음식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고 했다. 게다가 외로움이 너무 커서, 항상 유튜브 등으로 한국 영상을 틀어두고 지낸다고 했다. 게다가 우리 연구실과 다르게 이 친구네 연구실은 사람들이 개인활동이 많고 함께하는 소셜 활동들이 별로 없었다. 나 말고는 딱히 대화하며 지낼 사람이 없어 보였다. 걱정이 되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친구의 생일이 다가왔다. 전날 생일날 미역국과 생일상을 도시락으로 챙겨주자고 생각했다. 조금은 따뜻한 밥을 잘 챙겨 먹으면 외로움이 가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전날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들고, 고기요리도 하면서 생일상처럼 생일 도시락을 만들었다. 꽤 잘 짜인 메뉴 같았다. 좋아하길 바라면서 모두 통에 담아 도시락을 챙겼다. 다음날 출근 후, 친구를 복도로 불러내었다. 생일 축하한다 말하며 도시락을 쌌으니 집에 가서 저녁으로 챙겨 먹으라 말했다. 친구는 조금은 감동한 듯했다. 성공이다. 퇴근 후, 저녁에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내가 준 도시락으로 한 상 가득히 차려서 먹을 준비를 했다고 했다. 다음에 말하길 감동에 눈물이 살짝 핑 돌았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어 나도 기뻤다.  


처음으로 갔던 한인회 모임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이곳에서 미술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뒤늦게 전공을 바꿔 대학교를 다시 들어가서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 중인 대학생이다. 처음 만난 후, 서로 인스타 아이디르 교환한 후에 언제나 친절하게 나에게 많은 하트를 눌러주는 착하고 따뜻한 친구이다. 나는 인스타포스트로 내가 이곳에서 만든 요리들만 올리는데, 어느 날 너무 맛있겠다며 초대해 달라고 우는 이모티콘은 잔뜩 올렸다. 그걸 보고는 초대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난 기뻐,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잠시 후, 디엠으로 메시지가 오면서 정말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말을 안 하면 안 하지 빈말은 잘 안 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괜찮다며 그 친구를 안심시켰다. 무엇이 먹고 싶냐는 질문에 짜장면과 떡볶이라고 했다. 너무 쉬운 메뉴들이라 조금 아쉬움이 들었다. 조금 더 거하게 한 상 차릴 명분으로 그런 요리들을 요구했다면 더 즐거울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친구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찾아왔고, 나는 준비한 짜장면과 떡볶이를 대접했다. 사전에 미리 그 친구의 취향을 물어봐서, 짜장면의 고명은 오이가 아니 완두콩을 얹었고, 떡볶이에도 양배추와 치즈를 추가했다. (안타깝게도 매운맛을 너무 오래 맛보지 못한 이 친구는 떡볶이가 매워 몇 입 먹지 못했지만 말이다.)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너무 지나치게 감동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심지어 완두콩도 평소보다 맛있다고 했다.) 양을 많이 줬음에도 모두 비우고는 너무 배불러서 돌아가는 길에 뒤뚱 걸어가기도 했다. 헤어질 때는 나를 안아주려고도 해서 바로 악수로 인사를 마쳤다. 이 친구는 유학생으로 지내면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대충 끼니를 때우곤 해서 한식이 너무 그리워서 인스타나 유튜브로 한식을 엄청 찾아본다고 했다. 그런 얘길 들으니 안타까워서,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놀러 오라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줄 때면, 내가 요리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한식을 할 줄 몰랐다면 나는 이곳에서 지금처럼 적응하고 지내지 못했을 것 같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마 향수병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직접 한식을 요리하면서 그런 그리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한식을 그리워하는 다른 주변 한국인들을 챙겨주면 선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고 즐겁다. 한국에서는 쉽게 배달시켜서 먹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니, 직접 요리를 하게 된다. 나는 내가 했던 요리들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는데, 이곳에 와서 일 년 반동안 240여 가지의 요리를 했단 것을 알았다. 포스팅하지 않은 것들까지 합친다면 더 많을 것이다. 그중 85% 정도가 한식일 거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식을 더 챙겨 먹고 있는 거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식이 아니더라도 한국을 느낄 것이 많았을 텐데, 이곳에 있게 되니 한식을 통해서 한국을 느낄 수 있어서인지 뭐 먹을까 고민할 때면 한식 메뉴들만이 떠오른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지내면서, 프랑스 음식이 아닌 한국 음식과 나는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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