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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pr 25. 2023

1. 누군가의 관심사 하나쯤에는 이미 한국이 강국이다

문화 강국 코리아를 느끼다.

나는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업 연구소라기보다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프랑스국립연구소(CNRS)의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내 직장 동료들은 대다수가 아직 박사과정의 학생들이다. 한국에서는 박사과정이 보통 5년이지만, 이곳 프랑스에서 내 전공의 경우 박사과정이 3년으로 매우 짧다. 내가 박사과정을 늦게 시작했고, 한국에서의 박사과정이 길었던 탓에 나는 이곳에서 가장 어린 학생과는 열 살 가까이 차이 난다. 하지만 동양인이 기본적으로 서양인보다는 어려 보이기에 처음에 아무도 내 나이를 알지 못했다. 모두 박사 후연구원이나 막연하게 자기들보다 한 네 살 정도 많으려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서, 어린 학생들이 내 나이를 잘 몰라 조금 더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나이를 묻지 않고,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이곳의 문화 덕일 수도 있다. 해외에도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있는 연구소에는 내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동양인이 나를 포함해 한 두 명 정도 더 있는 정도였다. 밖으로 외출을 해도, 코로나 시즌이 한창이었을 때라, 아직 유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아 길거리에 동양인은 잘 보이지 않았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불어를 못하기도 하니 누가 봐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이방인이었고, 다들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자기소개는 향상 내 이름은 누구고, 한국에서 왔고,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한국이 문화 강국이라는 사실이 믿기게 뭔가 하나쯤은 누군가의 관심사에 한국이 제법 영향력이 있다. 연구실에서 가장 어린 친구를 만나고, 내 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 친구가 말했다. "한국! 한국이 e-스포츠 잘하잖아. 너도 게임 잘해?" 안타깝게도 내가 게임을 전혀 몰라서 그 친구가 관심 있어할 내용의 게임에 대해서는 대화를 더 해나가지 못했다. 같은 오피스 메이트의 경우, 핸드폰으로 항상 뭘 보고 있었다. 처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는 웹툰을 본다고 했다. 일본 망가는 안 보고 애니랑 "만화"를 본다고 했다. (정말 "만화"라고 했다. 망가와 만화를 구분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의 경우, 그때쯤 쏘니가 득점왕도 하고 워낙 유명한 선수가 되어, 손흥민이 한국 선수란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요즘이라면 이탈리아인에게는 김민재를 얘기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역사, 언어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한국이 여전히 분단국가라서, 북한에 대한 내용이라던가, 한 사람에 의해 창제된 한글과 같은 것은 모두 흥미로운 주제가 되어주었다. 현재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루마니아 친구의 경우, 한국 영화를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봉준호, 박찬욱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은 한국영화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가 강남스타일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들의 관심사 중 하나에 한국이 영향력이 있는 국가가 되어 있어서 나를 소개하는 게 무척 편했다. 이 모든 게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애써온 여러 한국인들 덕분일 거다.


이렇게 한국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아시아마켓을 가더라도 한국제품 섹션이 제법 컸다. 거의 일본 코너와 맞먹는 크기로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현지인들이 떡볶이 소스 같은 것을 사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이나 사갈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마트를 가다 보니 이렇게 한국 음식을 시도하고 즐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로 오기 전, 한국에서 언어교환을 처음 시작할 때 알게 된 파리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유튜브에서 일본 음식인 줄 알고 레시피등을 보며 관심을 가졌던 것들이나, 노래를 듣고 좋아서 계속 들었던 곡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졌다고 했다. 한국 문화가 어느새 전 세계에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 만난 프랑스인은 한국 화장품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이곳의 멀티화장품숍인 세포라에도 한국제품들이 많이 입점해 있다면서, 한국이 코스메틱 시장이 대단하지 않냐고 했다. 주말에 광장에 나가면, k-pop노래에 춤을 추는 크루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삼성이 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한국에서 연구나 기술이 훌륭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조그만 변방이 아니라, 첨단과 문화의 힘을 가진 인정받는 국가가 되어있었다.


이곳에서도 한국 하면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한 한국인 지인이 말했다. 프랑스에서도 세대가 둘로 나눠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모르는 옛 세대와, 한국을 알고 그 영향력을 느끼는 요즘 젊은 세대로 말이다. 요즘 시대에 한국을 모를 수가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만큼, 한국이 정말 큰 나라가 되었기에, 이를 모른다면 그 사람이 무지한 것이었다. 이곳에 와서 불어를 못하는 내가 영어로 얘기를 하면, 영어를 못하는 젊음 사람들은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자기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못하면 기분 나빠한다던 그런 얘기는 옛날 얘기였다. 글로벌 사회가 됨에 따라 이들도 영어의 필요성을 알게 되며 이들도 변한 것이다. 그렇게 이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이 무시할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만큼, 한국에서 온 나도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차별할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의 위상이 커지니, 해외에서 한국인인 나를 더 존중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나라를 위해 애써온 많은 사람들의 덕을 보며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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