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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pr 26. 2023

3. 한국어에 둘러싸여 느끼는 편안함

한인회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유학생들이 왜 그렇게 한인회 모임이나 한국인들과 어울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해외에 나갔으니 현지인들과 어울려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막상 해외로 나와보니, 그들이 무엇 때문에 한국인들과 어울려 지냈는지 알 것 같다.


프랑스에서 대학교 캠퍼스 내에 있는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많은 박사과정 어린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딱히 나이에 상관없이 잘 어울리고 있다. 주말에도 종종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함께 맥주를 즐기기도 하고 여러 액티비티들도 하면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프랑스에 있지만 프랑스어를 못하는 나는 그들과 모두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데, 나는 내 영어가 완벽하다고는 절대 못 한다. 완벽은커녕 많이 부족하다. 아카데믹 영어는 내 분야의 논문을 많이 읽었고 논문도 써왔으니 그다지 문제가 없지만, 일상 영어는 한국에서 말할 기회가 그다지 없었기에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언제나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는,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열심히 여기저기 문법적인 오류를 체크하면서 문장을 완성시키고 그 이후에야 입 밖으로 말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경우,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넘기기도 하고 그저 간단히 얘기하고 넘기곤 한다. 그러니 아무리 친해졌다 한들, 내 모국어인 한국말로 한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는 정도로 깊이 있고 내 말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진다. 이게 모두 나의 영어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언어 장벽 때문이다.


그것만은 아니고, 가끔은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도 있는 것 같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나는 모를 때가 있고, 유럽에 있다 보니 모두 EU로 하나가 될 때, non-EU 사람인 나는 그들의 얘기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달까. 언어적 장벽 외에도 문화적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면,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다 한 들 내가 혼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한 명이지만 같은 연구소에 있는 옛 연구실 동기인 한국인의 존재가 위안이 된다. 그녀와 짧은 커피타임을 하면서 한국말을 실컷 내뱉고 나면 맘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작년에 프랑스에서 코로나가 정말 꺾인 이후, 이 도시의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오프라인 모임 공지가 떴다. 그전에 있던 모임에는 뭘 굳이 찾아가나 싶었는데, 시간이 더 지나고 이곳에서 한국인으로 조금은 외롭게 살다 보니 다른 한국인들이 궁금해졌다. 참가하겠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모임 당일이 되어 모임장소인 식당으로 향했다. 한쪽으로 안내를 받는데, 아주 큰 테이블들이 쫘악 연결되어 있었다. 이게 다 한국인들만을 위한 자리란 사실에 놀랐다. 그전 모임에 갔었던 한국인 친구 말에 따르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었다고 했는데, 대략 자리만 따져봐도 스무 명은 넘을 것 같았다. 모임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실제로 스무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유학생들이었고, 교환학생으로 온 몇몇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거의 반년만에 온 주변을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여 한국말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너무 편안했다. 머릿속이 편안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알아듣고, 모두가 이곳에서 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도 느끼는 점들이 비슷했다. 대부분이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 후 이곳에 온 사람들이어서 (외국에서 자란 사람도 몇 명 있긴 했다.) 같은 문화에서 자라다 보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편안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편안하게 느껴진 게 오랜만이었다. 이런 기분을 위해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같은 한국인들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온전히 나로 있기 위해서. 나를 보다 더 이해받고 싶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언어란 것이 내겐 중요했다. 생각을 언어로 하다 보니, 나의 모든 사고는 한국어가 기반이 된다. 노래를 들어도 팝송의 가사를 알아들을지언정 그렇게 깊이 있게 가슴에 와닿는다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노래의 멜로디가 가슴에 와닿기는 해도 가사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느낌은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이곳에서 외국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들에게서 느끼는 고마움이나 감정적인 것들은 와닿는다. 하지만 언어로 이뤄지는 그들과의 대화들은 모든 것들에서는 내게 모국어가 아니라서인지 깊이 있게 다가오는 느낌이 없다. 마음으로 와닿지 않고 그저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의 느낌이다. 내 영어가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영어를 아무리 공부한들 한국말처럼 내가 편안함을 느끼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한국어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외국에 나오고서야 나에게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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