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Apr 28. 2023

4.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한글학교

프랑스 한글학교의 일원이 되다

한인회 모임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있는 이 도시는 규모가 크지 않고 한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한글학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프랑스에 오기 전 어플을 통해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과 언어교환을 하고 친구가 되었다. 한국어 배움에 열정이 있는 친구라서, 그 친구에게 가르쳐주는 게 재밌어서 이것저것 한국어 자료들을 직접 만들어서 전해주곤 했었다. 그때의 즐거움이 생각나서 이곳에서 기회만 된다면 나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몇 주뒤, 한국인 커뮤니티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한글학교 유아반 보조교사를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 바른 한국어 사용, 아이들과 놀이를 좋아하고, 수업 외 회의, 행사에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원만한 대인관계, 그리고 체류증에 문제없는 사람을 요구했다. 게다가 행사를 준비하면서 음식을 해야 해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환영한다고 했다. 여러 조건에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학력은 됐고, 나름 바른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은 조카 5명과 잘 지내왔고, 일할 때 외에는 시간 많고, 대인관계 크게 문제없고, 체류증도 있고 무엇보다 요리를 좋아하니 지원 자격은 충분하다 느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게 그 꾸준함이 걱정되기는 했다. 주말에 여행이 가고 싶을 수동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이런 일을 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언니가 바로 재밌겠다며 지원해 보라고 북돋아 주었다. 언니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어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지원서를 내면서 조카가 5명이라 아이들과 지내는데 익숙하고, 요리를 좋아한다고 어필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언급했다.


지원서를 제출한 후, 하루쯤 지나서였을까 지원서를 잘 받았다고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 답장이 왔고, 임원들과 회의 후에 면접여부를 통보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고 날짜를 잡았다. 인터뷰는 조금 이상하게 바에서 했다. 처음 여기가 맞나? 하는 느낌으로 시끌시끌한 바로 들어갔더니, 교장선생님께서 주로 낮에만 와서 밤에 이런 분위기인 줄 몰랐다고 하셨다. 주변에 젊은 대학생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는 자리에서 조금은 가벼운 인터뷰를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함께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기 위한 자리라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셨다. 옆에는 한인모임에서 본 적 있는 분이 유아반 주교사로 함께 인터뷰에 참석해 있었다. 인터뷰임에도 와인, 맥주를 곁들이며 진행됐다.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는데,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요리를 잘한다는 것이 크게 어필이 된 것 같았다. 느낌이 좋았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후,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 느낌이 맞았다.


그렇게 2023년 1월부터 한글학교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보조교사로 유아반 주교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만 3-6세의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서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원은 6명이었는데, 아이들은 주로 세 경우 중 하나에 속했다. 우선, 두 부모가 모두 한국인으로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의 아이들은 주로 한국어에 능숙했다. 그다음으로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경우였고, 아이들에 따라서 한국말이 능숙하기도 서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입양아인 경우였다. 한국말을 못 하지만,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서 아이가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 경우였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주로 한국말을 거의 못 했다. 하지만 아이들 아니겠는가. 어른에 비해 배움의 속도가 빠르기에 얼마든지 잘하게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ㅏ


1월에 설날 행사가 있어서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번에는 함께 만두를 빚고 잡채를 한다고 했다. 이전에는 선생님들이 모두 요리를 준비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함께 요리를 할 테니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요리하기를 기대했는데 안 한다니 오히려 아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당일 행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학교 강당에서 진행하면서 조리할 수 있는 인덕션이 두 개뿐이었는데, 게다가 인덕션이 약해서 물조차 제대로 끓지 않았는데, 그걸로 50명의 사람들이 먹을 것을 요리하려다 보니 모든 게 더디게 진행되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어찌어찌 무사히 끝나긴 했지만, 좀 더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행사를 마친 후, 선생님들과 회식을 했다. 근처 바에서 맥주를 함께 했다. 처음으로 선생님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거였는데, 한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에 다들 애정과 열정이 있는 분들이었다. 한글학교 발전을 위해 모두 애쓰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조금은 감동적이었고, 그런 노력에 비해 오늘 행사진행이 부드럽지 못했던 것들이 안타까웠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모든 걸 잡아서 진행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한글학교의 일원이 된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던 때였는데, 선생님들의 열정뿐 아니라 설날행사에 한복을 입고 온 외국인들이나 한마디라도 더 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 자신은 한국어를 못 하지만 아이에게 한국어와 그 문화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한국 입양아 부모님들 등을 보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이곳의 일원으로 잘해나가야겠다 다짐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있다거나, 외국에서 한국어 공부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등의 기사를 접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외국에 나와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한국의 문화와 한국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한 새로운 생각들로 나는 조금 더 진정한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3. 한국어에 둘러싸여 느끼는 편안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