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May 02. 2023

5. 삼겹살은 역시 한국인의 소울푸드였다

해외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구워 먹는 삼겹살 파티

나는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도 몇몇 한식당은 있지만, 한국에서의 가격에 비해 한식당은 턱없이 비싸게 느껴져서 (김치찌개가 18유로다) 이곳에서 한식당은 가지 않고 있다. 한국 요리는 주로 집에서 나를 위해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이 전부이다. 이곳에 와서 요리를 해 먹고는 인스타에 음식들을 포스팅하는데 이제 누적된 포스트가 260여 개가 넘어가는 것을 보아 제법 잘해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음식들이 크게 아쉬움 없이 만족스러운 편인데, 아쉬운 메뉴 하나가 바로 삼겹살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삼겹살 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 먹었고 쌈이나 채소나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상태로 푸짐하게 그릴에 직접 구워 먹는 진정한 K-바비큐였다면, 이곳에서는 혼자 그렇게 잘 차려먹기는 번거로워서 주로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는 쌈장과 상추 정도만 챙겨서 먹곤 했다. 차려진 사이드 메뉴들부터 아쉬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아쉬움은 감성이 부족한 거다.


삼겹살은 가장 흔한 회식 메뉴 중 하나이다. 회식하면, 1순위가 바로 삼겹살일 거다. 돈이 별로 없던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저렴한 삼겹살 집에서 김치며 콩나물이며 모두 얹어서 구워 먹으며 소주 한잔 곁들이던 시절이나, 함께 밴드 하는 친구들과 주말 점심 전국노래자랑을 배경으로 삼아 삼겹살을 시키면 오삼겹을 주는 정육식당에서 소맥과 함께 구워 먹던 삼겹살, 가족들과 집에서 파절이까지 모두 만들어가며 함께 먹던 삼겹살. 삼겹살은 단순히 삼겹살 그 고기 자체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깃들어진 음식이다.  


한국인으로 삼겹살을 먹으며 자라서인지 돼지의 지방에 큰 거부감이 없는 편이지만,  이곳에서 많은 프랑스인들이 삼겹살의 비계를 조금은 혐오하는 표정으로 떼어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있는 지역은 그래도 독일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많이들 돼지고기를 먹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돼지는 그리 선호하는 고기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일 년 반 프랑스 생활에서 내가 느낀 점이다. 어떤 고기를 먹더라도 삼겹살처럼 매우 기름진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 게 이곳의 거의 문화와 같았다. 다만, 같은 유럽이지만 동유럽 친구들의 경우 한국처럼 돼지고기를 아주 즐기고, 삼겹살도 잘 먹는 것 같았다. 일단 삼겹살을 여기 사람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으니, 아주 질 좋은 삼겹살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삼겹살 고기의 질도 한국보다 떨어지는데, 쌈에 곁들이 재료만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함께할  사람들이 없어 감성까지 부족하니, 이곳에서 혼자 먹는 삼겹살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글학교의 유아반에서 보조교사로 있게 되면서, 한글학교 선생님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고기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릴이 있다고 했다. 한국처럼 테이블 위에 그릴을 얹어서 바로 구워 먹는 바로 K-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거다. 이곳의 문화는 조금 다른 것이, 호스트로 모든 사람에게 대접하는 식사가 아니고서는 모두 각자 먹을 것들을 챙겨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각자 먹고 싶은 고기나, 채소가 있다면 챙겨 오라고 했다. 즐거울 것 같아 기대됐다.  


고기파티를 하기로 한 당일이 되었는데, 조금은 게으른 탓에 마트 가는 것을 미루다 마트를 못 갔다. 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가게들에서 고기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고기를 먹기 전 애피타이저처럼 먹을 뭔가를 준비하고자 내가 조금은 자신 있는 새우 스캄피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빵도 미리 사두었다. 새우스캄피, 빵과 함께 고기와 함께 먹기 좋은 쌈장과 고추냉이를 챙기고는 가는 길에 미니 마트에 들러 고기코너를 둘러보다가 소고기 스테이크용 두 덩어리를 골랐다. 그런 후, 함께 구워 먹을 파프리카를 골랐다.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가니, 식탁 위에 그릴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가웠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상태였다. 이곳에서는 항상 시간에 맞춰가면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집에 초대받았을 때 정시에 도착하는 게 예의가 아니란 말을 듣기는 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이니 한국 마인드로 왔더니 역시나 너무 제시간에 온 거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는데, 어찌 된 게 세 명이나 삼겹살을 사들고 왔다. 한 명은 심지어 삼겹살이 안 팔아서 마트 세 곳을 돌아다니며 삼겹살을 겨우 구해왔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이 모두 고기만 사 올 것 같아 새우를 사 왔다고 했다. 모두가 사 온 고기들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채소들을 다듬어 그릇에 넣고는 이제 고기 파티를 시작한다.

먼저, 내가 싸 온 새우스캄피에 바게트를 함께 먹으며, 가벼운 와인으로 시작하고 한 명이 사 온 새우도 그릴에 구우며 바비큐를 시작한다. 맨 처음으로는 기름기가 적은 내가 사 온 소고기로 시작을 하였다. 가지, 버섯, 파프리카도 곁들인다. 그러다가 이제 본격 삼겹살 타임이 되었다. 세 명이나 삼겹살을 사 와서 삼겹살이 넘치는데, 삼겹살을 굽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코리안 바비큐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에 채소들도 구워지니 채소도 더욱 맛있고, 지글거리는 소리는 정겨웠다. 내가 챙겨 온 쌈장과 고추냉이도 역시 삼겹살과 궁합이 최고였고, 이 날의 호스트가 집에서 키웠다는 귀한 깻잎을 인당 두 장씩이나 나눠줘서, 한국을 떠난 지 일 년 만에 깻잎을 맛볼 수 있었다. 한국 노래가 배경에 깔리고 한국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깻잎에 삼겹살 하나 올리고, 쌈장을 곁들여 먹으니 이곳은 거의 한국이었다. 지금까지 먹던 삼겹살의 아쉬움이 모두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삼겹살은 역시 앞에 그릴을 두고 구워 가위로 잘라서 하나하나 가져가서 먹는 그 감성이 있다.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구워 먹는 이것이 진정한 코리안 바비큐다. 이 함께하는 감성이 그리웠던 것 같다. 계속해서 마시는 와인도 좋고 모든 게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삼겹살은 역시 우리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매거진의 이전글 4.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한글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