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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May 25. 2023

6. 외국인 30명에게 한식을 선보이다

연구원들을 위한 한국의 날 행사

이곳에서는 대학교의 후원을 받아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있다. 이 커뮤니티의 멤버가 되면 10유로를 내고 이후, 모든 행사가 공짜였고, 멤버가 아니면 3유로만 내면 참여할 수 있기에 매번 3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하곤 했다. 처음으로 갔던 날은 아제르바이잔의 날이었고, 4종류의 요리와 디저트까지 주는 행사였다. 제법 능숙하게 요리를 나눠주고, 조금은 생소한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각종 퀴즈들을 맞추면서 이 나라에 대해 배워나갔다. 이후에도 인도, 레바논 등 여러 나라들에 대한 행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의 날은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날 행사를 한다면, 내가 요리를 도맡아서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연구실 동기가 이곳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내 계약이 연장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두 달이면 난 이곳을 떠나는데, 그전에 한국의 날 행사를 한다면 내가 요리를 도맡아서 도울 수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러면 좋겠다며 바로 회장에게 나를 데려가서 내 인스타의 요리들을 보여주며 내가 요리를 도맡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바로 ok 사인이 떨어졌고, 바로 다음 달에 진행하자며 아주 빠르게 결정되었다. 조금은 얼떨떨했는데, 30명 분의 요리를 준비해야 하며, 보통 예산이 150유로로 주어진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설레기도 하고 너무 즐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컨디션이 좋던 때라서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만 같았지만, 막상 한 달 후 행사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감이 크게 들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맡아서 한다고 했고, 내가 요리를 해내지 못하면 이 행사자체가 취소되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책임감을 가지고 일어나서 일을 진행해야 했다. 우울과 불안증세로 제법 편치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약을 먹고 최대한 힘을 내어 예정된 일을 해내기 위해 애썼다. 먼저 행사 이틀 전에 장을 봤다. 연구실동료가 주최 측으로부터 카드를 받아와서, 장을 본 것을 결제해 줬다. 그런 후, 우리 집까지 짐들을 날라줬다. 대략 비용은 130유로 정도가 들었던 것 같다.


메뉴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미리 짜두었다.

찜닭- 닭고기 요리로 맵지 않은 간장소스의 찜닭. 누구나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라 생각했다.

비건잡채- 고기가 아닌 버섯을 넣어, 누구나 좋아하는 잡채를 준비하려 했다.

김치볶음밥- 한국 하면 김치니까 김치를 맛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치만 하면 허절할까 싶어, 베이컨을 넣은 김치볶음밥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제육볶음과 쌈- 미니 상추에 매콤한 제육볶음을 얹으면 한국의 매운맛과 쌈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좋은 메뉴라 생각했다.

호떡- 외국인들이 호떡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예전에 친언니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다들 호떡을 좋아했다고 전해 들었기에 코리안 디저트로 호떡을 하면 좋을 듯했다.


금요일 저녁에 행사인데, 금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고 퇴근을 조금 일찍 해서 준비한다 해도 미리 준비해 둬야 모든 게 수월할 것 같아서 요리의 시작은 목요일 저녁이라 해야겠다. 미리 메뉴를 모두 짜뒀고, 하나하나 순서대로 해야 할 일들을 문서로 작성해 두었다. 난 이렇게 모든 게 계획이 세워져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연구실 동료가 금요일에 함께 와서 요리를 도와준다고 했다. 사실 뭐든 혼자서 하는 게 편하지만, 도와준다고 하는데 거절하기가 애매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난 주방에서는 혼자가 편하다.) 금요일에 대략 3시간 정도의 시간만 있어서, 미리 목요일에 쌀 2kg로 밥을 해두고, 필요한 양파나 당근, 마늘 등을 준비해 뒀다. 양파와 마늘을 미리 까두고, 필요한 채소들을 미리 씻어 준비해 두었다. 금요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잡채를 위한 당면을 미리 물에 불려두었다. 냉동해 뒀던 미리 만든 호떡도 해동이 되도록 꺼내두었다.


출근을 해서 할 일을 하고, 도와주기로 한 연구실 동료와 함께 일찍 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계획한 대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찜닭을 큰 냄비에 끓이기 시작한다. 찜닭은 간단했다. 그저 물, 간장, 설탕을 기본 배합으로 해서 닭을 넣고 끓이다가, 감칠맛을 위해서 약간의 춘장을 넣어주고, 감자, 당근, 양파를 넣고는 마지막에 참기름으 넣어주면 된다. 찜닭이 요리되는 동안 잡채를 위한 재료들을 준비한다. 야채를 다듬는 건 도와준다는 동료를 시켰다. 잡채를 위해서는 그저 채 썰면 되기에 매우 간단했다. 그동안 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김치가 조금 적은 듯했지만, 최대한 김치볶음밥 맛이 나도록 조리했다. 그렇게 요리하는 동안 호떡은 오븐에 넣어 다시 데웠다. 제육볶음을 양념해서 익히기 시작한다. 이렇게 많은 양은 처음해봐서 양념이 조금 많아서 넘쳐났다. 김치볶음밥을 하면서 김치가 부족해서 남은 밥이 있었기에, 남은 제육 양념에 밥을 넣고, 김가루, 참기름을 섞어서 새로운 매콤한 볶음밥을 하나 더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잡채 재료들을 모두 볶고, 불려뒀던 당면을 살짝 익힌 후, 간장, 설탕에 버무리고 참기름도 넣어 완성했다. 모든 요리를 끝내니 딱 3시간이었다. 혼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채소를 썰어준 동료가 있었기에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것 같다. 도움이 있다면, 받는 게 좋긴 좋구나-하고 느낀 시간이었다.


함께 요리들을 내가 미리 사둔 큰 통에 담아서 백에 담았다. 양손 가득 요리를 들고 트램을 타러 간다. 시간을 잘 맞췄다 생각했지만,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았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닐 듯했다. 지난번 인도의 날에서는 요리를 한 시간 넘게 기다렸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이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챙겨둘 거라 했으니, 사람들은 아마 그것들 먹으면서 담소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7시 시작이지만 약 20분 늦게 행사장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에상대로 다들 스낵에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미 조금 늦었다는 생각에 맘이 조급했지만, 이 공간에서 조급함을 느끼는 건 나뿐이었다. 이 나라는 모두가 조금 늦어지는 거에 익숙한 듯했다.

가져온 통들을 꺼내고 요리들을 세팅한다. 내가 생각한 순서대로 음식을 정렬한다. 맵지 않은 찜닭을 시작으로 점점 매워지게 순서를 갖췄다. 찜닭, 비건 잡채, 베이컨 김치볶음밥, 제육 양념 매운 볶음밥, 제육볶음 미니 쌈, 순서로 말이다. 음식을 차리니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미리 준비해 둔 요리에 대한 설명이 적힌 종이를 요리들 앞에 붙여두었지만, 다들 제대로 보지 않고 이건 뭐냐며 물어본다. 찜닭은 닭이 메인이고, 잡채는 미건이니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가는데, 김치볶음밥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나는 좀 더 맛있게 하기 위해 베이컨을 넣었던 건데, 그러다 보니 세 가지 요리가 돼지고기가 들어간 요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종교의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돼지고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돼지가 들어갔다 하니 받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장 흔하게 즐기는 요리가 돼지고기이며 여기서처럼 다양성을 고려할 환경이 아니다 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난 그저 단순히 매운 요리/맵지 않은 요리/비건 저오만 생각하고 요리를 했는데, 여기서 기본적으로 고려할 것은 종교의 다양성이었다. 닭요리조차도 할랄 고기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양성을 좀 더 신경 쓰지 못해서 모든 사람에게 요리를 다 맛보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그렇지만, 모두 자기가 가져간 요리를 즐기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몇 번이고 찾아와서 계속 리필해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게 찾아와 이걸 어떻게 혼자 다했냐며 너무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이 모두 한 바퀴 돌고 음식을 받아간 후에는 만들어 온 호떡 디저트를 꺼내두었다. 시나몬 설탕 맛과 단팥 맛 두 가지를 준비했었다. 단팥을 sweet red bean이라 하니, 이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콩이라는 사실에 다들 눈이 똥그래지면서 신기해했다. 무난하고 익숙한 시나몬 설탕을 더 선호할 줄 알았는데, 호기심 때문인지 단팥 맛이 먼저 동이 났다. 조금 후, 단팥 더 없냐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요리는 성공적이었다. 계속 리필해서 먹는 사람들 덕분에 모든 요리가 바닥을 보였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계속 칭찬을 해줘서 뿌듯했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약간의 볶음밥과 잡채만 먹고 주로 맥주를 마셨다. 다만 음료가 충분치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내가 미리 준비해 둔 K-Pop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나름 최신곡들을 직접 들어보면서, 내가 생각할 때 괜찮고, 좋은 곡들로 리스트를 짜두었었다. 식사를 마치니 퀴즈시간이 되었다. 다른 나라 테마의 행사에서도 항상 진행되는 건데 여러 항목에 문제 수준을 다르게 하여 각종 퀴즈가 준비되어 있다. 두 팀으로 나눠서, 문제를 맞히는 거다. 퀴즈는 내 연구실 동료와 같은 연구소에 있는 한국인 친구가 도와서 문제를 준비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보다 문제를 잘 맞혔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문제에서 내 옆쪽에 있던 한 독일인이 자기 저 올림픽 봤다면서 "Pyeong-Yang"과 "Pyeong-Chang"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아 뭔가 알긴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다. 나는 한국인이라 퀴즈에 참가할 수는 없으니, 그저 뒤에서 맥주나 홀짝거리며 구경했다. 퀴즈도 잘 마치고는 그냥 모두 음악에 음료들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강남스타일을 틀자고 했다. 그러면서 불도 어둡게 하고는 모두 즐겁게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강남스타일이 나오니 말춤을 추는 친구들도 있었고, 모두가 조금씩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20대의 어린 친구들이어서, 십여 년 전, 어린 시절 강남스타일의 인기시대를 모두 거쳐왔기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외국인이 다가와서, 대체 강남스타일 가사가 무슨 뜻이냐며 물었다. 따라 부를 순 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간단하게 한국에서 강남의 이미지가 어떤지 설명해 주며, 결국 자기는 강남 스타일의 남자라고 여자를 꼬시는 내용임을 설명했다. 그러니 바로 아~하며 알겠다고 돌아갔다. 몇몇 사람들이 다가오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 드라마들을 좋아한다는 중국인이 다가와서, 최근에 더 글로리를 봤다면서, 송혜교 얘기를 하다가 대체 송중기랑은 왜 이혼한 거냐며 물었다. 나도 모른다고, 모두가 궁금해하짐나 당사자들 외에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답했다. 한국의 문화의 힘이 얼마나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노래 속에서 즐기고 있을 때, 조금 피곤해지기에 짐들을 정리해서 자리를 떴다. 도와줬던 연구실 동료의 자전거가 우리 집에 있어서 함께 돌아갔다. 하필이면 파업의 여파로, 트램 운행간격도 길고 정차하지 않는 역도 많아서,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걸려 겨우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조금은 몸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행사를 잘 마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통해, 한국을 모르는 사람, 한국을 아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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