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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l 14. 2023

7. 포트락에서 한식 뽐내기 (1)

쌈장의 인기

일년 반이 조금 넘은 기간동안 프랑스에서 살고있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대학캠퍼스 내에 있는 연구소에서 일하다보니, 함께 일하는 대학원생들이 많다. 박사후연구원이나 대학원생들이나 가난하긴 매한가지 일거다. 외식이 비싸서인지, 모두 함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것은 연구실 돈으로 결제하는 단체 크리스마스 디너 외에는 그 동안 딱 두 번이었다. 저녁은 각자 알아서 먹고, 저녁 8시쯤 만나 맥주만 마시는 것만 종종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한 번씩, 한 친구(주로 호스트를 떠맡아서 하는)의 집에서 각자 요리를 해오는 포트럭파티를 하곤 한다. 아무래도 세계 각지에서 (그러기엔 대다수가 유럽...) 모여서인지 각자 자기 나라 요리를 해오는 편이다. 지금까지 이런 포트럭의 기회가 5번 있었다. 한국에서 포트락을 한다면 내가 한식만 하진 않겠지만, 해외에 나오니 ”나=한국인“이라서 매번 한식을 준비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이 인터네셔널 포트락을 하면서 각자 자기나라 요리를 해오길 보통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포트럭은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한 런치였다. (시작이 런치시간인 정오 12시일뿐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였다.) 첫 포트럭이고 대부분 한식을 모르는게 꽤나 분명했기에 메뉴를 엄청 고민했다. 그러다 역시 한식이면 불고기인가 싶어 불고기를 하기로 맘을 먹고 고기를 미리 사두었다. 포트럭 런치 당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불고기를 만들었다. 아침에 딱히 할 일이 없어 너무 빨리 불고기를 완성하고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뭔가 더 만들고 싶었다. 매운걸 좋아하는 애들이 제법 있는 걸 알아서, 조금은 매콤하게 빨간 제육볶음을 해보기로 한다. 이것또한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여전히 시간이 남았다. 한국하면 역시 김치인가 싶은데 그렇다고 생 김치를 가져갈 순 없어서 무난하게 접할 수 있도록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본다. 채식주의자인 인도 친구가 하나 있기에, 제육볶음 양념으로 채소들만 볶아 비건요리도 준비했다. 제육볶음에 함께 할 미니주먹밥도 만들고, 불고기를 싸먹을 상추와 함께 쌈장도 준비했다. 요리를 계속 하다보니 어느덧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마실 것도 챙겨가야 하기에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 맥주 한팩까지 챙겨 떠나본다.

12시에 모이기로 해서 12시에 맞춰가니 나밖에 안왔다. 다른 이들은 조금 늦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완전 늦는다. 처음에는 호스트인 루마니아 친구가 준비한 루마니아식 에피타이저를 맛보며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모두다 모이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 위에 하나 둘 올리기 시작한다. 인도 친구가 향신료를 넣은 바삭한 칩과 (큐민이 메인인 듯) 엄청 매운 이름을 발음 못할 요리를 가져왔다. 맛보니 바로 매운 맛이 확 올라왔다. 이탈리아 친구는 라자냐를 가져왔다. 라자냐는 당연히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였다. (라구소스가 고기도 듬뿍 있고 너무 좋았음)  일본 친구는 미트볼 같은 것을 시소잎으로 감싼 요리와 한국 달걀장조림 같은 반숙을 간장에 절인 요리와 일본 맥주, 사케를 가져왔다. 그리고 프랑스인 친구들의디저트인 타르트가 있었고, 나의 한국 요리들이 있었다.

일본인 친구는 바로 이거 불고기지?하며 능숙하게 불고기를 쌈으로 싸먹으며 자기는 한식을 좋아한다 말했고,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한식을 시도했다. 불고기도 좋아했지만, 매콤한 제육볶음이 인기가 더 높았다. 채식주의자인 인도친구는 고기없는 제육양념 채소볶음을 먹고는 인도와는 다른 매운맛이라며 달콤함이 들어간게 어색한데 맛있다며, 다른 요리도 궁금해서 오늘은 채식을 안한다며 고기도 맛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안 친구는 며칠전 한식당에 가봤는데 그것도 맛있었지만, 오늘 요리를 먹어보니 자기는 한식에 빠질것 같다며 엄지척을 해줬다. 성공적이었다. 내가 준비한 한식 메뉴중 가장 인기 있던 것은 의외로 쌈장이었다. 다들 이게 뭐냐며 너무 맛있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조금 더 매우면 더 좋겠다고 했고 쌈장만 다들 찍어먹었다.

*쌈장 > 제육볶음> 불고기 >김치볶음밥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렇게 첫 한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보스네

집에서 우리 그룹 바베큐를 열기로 했다. 코로나로 몇년간 이런걸 못했었다며 이제 드디어 단체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다들 들떴다. 이런 행사들을 주로 총괄하는 담당자에게 메일이 왔다. 보스네는 장소와 모두가 먹을 넉넉한 빵을 준비하니 각자 먹을걸 챙겨와야한다는 메일이었다. 단체 바베큐인데… 고기도 없고 빵만 준비한다니 결국 또다른 포트락이 되어버린 셈이다. 결국 참가자들로부터 10유로씩 걷어서 한명이 고기를 사오고 각자 자기가 가져올 요리나 음료를 공유 문서에 업로드하게 했다. 뭘 해가야할 지 몰라서 다른 사람들이 업로드하는 내용을 보다가, 탄산수 2리터와 전에 동료들이 잘 먹던 쌈장이 떠올라 Korean dipping sauce for BBQ라고 입력했다. (나의 실수였다…)


바베큐 당일이 되어 아침에 쌈장을 준비했다. 이곳 아시아마켓에서 파는 쌈장이 영 맛이 별로라 주로 이것저것 첨가해서 맛있게 만들곤 한다. 다진마늘, 다진파, 약간의 설탕, 참기름을 넣어 섞는다. 쌈장을 매운맛 버전으로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조금 섞어 준비해본다. 시간이 남아서 냉동실의 소고기를 꺼내 다진 후 소고기볶음고추장을 만든다. 3종 한국 디핑 소스 완성이다.

보스네 집은 교외지역이다. 기차를 타고 10분 정도 간 후 내려 30분을 걸어가야 했다. 연구실 동료부부와 함께 얘기하며 걸어가서 지루하진 않았지만, 뜨거운 햇볕에 조금 지쳤다. 12시부터라 했는데 10분 전에 도착했다. 다른 동료가 프랑스에서는 정시에 도착하는게 예의가 아니라며 조금 있다가 들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보스가 차를 타고 오다가 우릴 발견해서 들어오라 했다. 약간 프라이빗 빌라촌 같았다. 큰 게이트가 있고 그곳을 지나가니 빌라같은 집들이 몇개 모여 있었다. 보스네 집은 크고 모던했다. 테라스인가 하고 나가보니 바로 옆 넓은 잔디밭의 공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곳 사람들만 이용한다고 했다. 여기가 오늘의 바베큐 장소였다. 역시나 모든 사람이 늦었다. 모두 다 오는데 몇 시간이 걸렸고 늦어도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

바베큐를 위해 불을 지피는데도 오래걸렸고, 먼저 각자 가져온 요리들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누군가가 가져온 맥주, 와인들이 테이블 위를 채웠다. 술을 마시며 가져온 음식들을 먼저 먹었다. 고기가 없으니 쌈장과 소스들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기라고 굽기 시작하는 걸 봤는데, 소세지 두 종류와 양념됨 닭고기 꼬치였다. (나중에 얘기해보니 나만 당황한게 아니었다. 바베큐인데 “where is real meat?” 라고 생각한 다른 친구도 있었다.) 쌈장에 찍어먹을 마땅한 고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닭고기와 나의 3종 소스를 곁들여 먹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맙다 생각했는데 그들은 맛있어서 먹는 거였다. 볶음고추장이 인기가 가장 많았다. 뭘로 만든거냐며 궁금해해서 Korean chili paste인 고추장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고추장을 구할 수 있는 아시아마켓도 알려주었다.

내가 만든 3가지 소스들은 다 맛있었는데 곁들일 고기가 마땅치 않은 날이었다.

*볶음고추장을 제일 좋아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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