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계약연장! 1년 더 프랑스에-

나도 모르는 새 진행 중이던 계약 연장

by 이확위

나는 오랫동안 우울해하며 아무것도 안 하고 낭비했던 시간들이 많기에 일상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일상에서 아무리 즐거움을 찾더라도 일하는데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내가 온전히 내 삶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큰 것 같다.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21년 11월 말부터 1년 반 계약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프로젝트를 부여받고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합성이 금세 끝날 거라 생각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것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합성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제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으면서 원하는 결과를 계속해서 얻지 못했다. 내 분자를 기다리고 있을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에게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계속해서 지체되면서 어느덧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만의 데드라인을 정하던 것도 계속해서 늦춰가며, 좋은 결과를 가지고 보스를 찾아가서 계약 연장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나의 목표는 계속해서 실천하지 못하고 미뤄지고만 있었다.


실험을 잘 마치고 계약연장까지 모든 게 다 잘 되어있을 거라 생각하고 몇 달 뒤 계획을 잡아뒀던 것들이 실험에서 아무런 진전 없었고 막상 닥쳐와서 버겁기만 했다. 국제장애인기능대회에서 통역사로 봉사활동을 1주일간 다녀오면서도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 데는 생각에 계속해서 사로잡혔었다. (봉사활동은 의미 깊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엄연히 나에게 직업이 있었고 그것이 마땅히 나의 우선순위여야 한다 생각한다.) 일주일 봉사활동을 가느라 일주일간 휴가를 신청한 상태로 행사가 있는 Metz로 떠났었다. 출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업무용 메일은 확인하지 않는 편이다.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메일함에 들어가 보니, 보스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나와 미팅을 하려 했는데 내가 휴가 중이었다고 했다. 돌아오면 얘기하자는 내용이었다. 마땅한 실험결과가 없어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당장 봉사를 위해 다른 도시에 와 있는 상태이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의 일에 집중하는 거라 생각해서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출근하고 주중에 언제일지 모를 교수와의 미팅을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출근 후, 연구소 오피스에서 워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의 비정규직 담당자가 내 오피스에 찾아왔다. 내게 계약종류 2달 전에는 새로운 계약 연장에 대해서 마쳐야 한다는 얘길 해줬다. 자기가 우리 보스에게서 전에 해 듣기는 했었다면서 나에게 계약 연장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아직 보스와 얘길 해보지 않은 상태라며 서둘러 얘기해 보고 찾아가겠다 말했다. 오피스에 조용히 앉아서 보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혼자 연습해 보았다. 함께 가지고 갈 좋은 결과는 없었다. 그저 내 의지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심호흡을 한 후, 오피스를 나서 보스의 오피스를 향해 복도를 나아간다. 보스 오피스의 문을 두드린다.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니 보스가 의자에서 뒤돌아 나를 쳐다본다. 무슨 일이냐 묻는다. 방금 담당자를 만났는데, 계약종료 2개월 전에는 계약연장여부를 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계약연장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보스가 무슨 계약연장이냐고 묻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나와 연장할 생각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과 지금까지 결과를 내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보스가 말한다. 이미 계약 연장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 중인데 무슨 소리냐는 거다. 지난번에 얘기하지 않았냐고 한다. 일단은 그러냐며 알겠다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에는 좋은 실험결과를 가지고 찾아오겠다고 말하고 문을 닫고 돌아온다.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언제 계약에 대한 얘기를 했는지. 4개월쯤 전에, 교수가 이곳 생활은 맘에 드는지. 혹시 실험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진 않을지에 대해 물었었다. 그때 나는 일하는 환경에 만족한다고 말했고, 시간이 있으면 당연히 더 좋겠다고 대답했었다. 그게 계약 연장에 대한 얘기였나 보다. 나는 그동안 연장 때문에 가슴 졸이며 지내왔다. 이곳에서의 실험이 더딘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프로젝트의 논문화도 계속해서 리젝(Reject)당하면서 마땅한 실적이 없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한 연구논문 1편, 리뷰논문 1편을 제1 저자로 발표한 게 전부였다. 연구논문을 낸 학술지의 IF가 그렇게 높은 저널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좋은 실적으로 인정받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포닥을 새로 구하거나 정규직으로 자리 잡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 보스가 과연 좋은 추천서를 써줄지도 의문이었다. (한국이라면 거의 좋은 추천서를 써줄 것 같지만, 해외에서는 무조건 좋게 써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기에 걱정이었다.) 결국 나 스스로도 내가 잘했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불안감이 매우 컸었다. 그러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걱정이 해결되었다. 계약연장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일단 다음 곳을 찾기까지의 시간을 벌었고, 이곳에서의 연구나 한국 연구실과 준비 중인 논문들을 낼 시간을 벌었다. 실적을 쌓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쓸 시간이 조금은 더 생겼다.


좋은 소식을 바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린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다시 내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다시 가질 수 있었다. 계약 연장에 대해 진행되면서 계약서 전에 먼저 서류를 받는다. 24년 3월 말까지였다. 일 년 더 지내는 거였다. 다른 포닥에게 듣기로 대부분 계약 연장은 일 년 단위로 진행된다고 했었다. 그 친구의 경우도 일 년씩 계약 연장을 했었다. 지난 일 년 반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난 간 것을 되새기면서 이번 일 년은 이제 결과 내기에 보다 더 집중해서 아쉬움을 전혀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지난 계약 기간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데, 이번 새로운 일 년은 실험실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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